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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6-25 05: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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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뉴시스】


한국현대사의 3김 중 마지막 생존자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이하 JP)가 2018년 6월 23일 92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5.16군사정변을 시작으로 10월유신, 3당합당, DJP연합, 대통령탄핵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한국현대사의 주인공들 옆에는 늘 JP가 있었다.


특히 JP는 적절한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수사적 표현을 잘했다.

‘춘래불사춘(봄이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필자는 이 표현이 특별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했다. 18년 장기집권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박정희가 죽으니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의 총재는 JP가 되었다. 이때가 11월 12일이었다.

그리고 12월 6일 대통령에는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되었다.

대통령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에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규하는 박정희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리더십이었다.

바로 이런 허점을 파고든 것이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었다.


이들은 1979년 12월 12일 하극상을 일으킨다.

자신들의 상관인 육군참모총장을 대통령 재가도 없이 마음대로 체포하였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도 자신들이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전두환, 노태우등 신군부는 대놓고 대통령 앞에서 국정농단을 하였다.

최규하 대통령 재임 시 국무회의는 딱 한번 밖에 없었다.

미스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에 대한 대책회의가 유일했다.


사실상 전두환, 노태우가 실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규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JP는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라는 말로써 당시 상황의 불안함을 표현했다.


분명 최규하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여 개헌을 하고 남은 임기에 상관없이 정부를 평화적으로 이양한다고 했다.

하지만 JP는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미 전두환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두환은 1980년 5월 17일 부분적인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5.17 쿠테타이었다.


상황을 혼란스러운 것처럼 만들고 자신이 마치 구원자인 것처럼 하려고 한 것이다.

이 때 JP는 전두환에 의해 보안사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언론에 의해 부정축재자가 되었다.

이후 1980년 6월 24일 공화당 총재 등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정계은퇴를 한 것이다.

또한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다.

JP가 말했던 꽃샘추위와 같던 봄이 종말을 고하고 다시 겨울로 돌아간 것이다.


이 때의 악연 때문에 JP는 전두환을 많이 미워했다.

1987년 1월 1일 관훈토론회에서 JP는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면 고약한 아우를 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2016년 1월 자신의 90번째 생일축하연에서는 “구십이 되었는데도 미운 사람이 한명 있다”라고 말하면서 전두환에 대한 미움을 드러냈다.

JP는 끝내 전두환과 화해하지 않았다.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40 년이 다되어 가는 2018년의 어느 날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은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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