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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10 04: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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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절인 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 무명용사의 묘 앞에 헌화 식에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는 9일 전승절 79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펼치고 마무리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의 항복 서명일(5월8일)을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부터 유럽 국가들과 다른 이름으로, 다른 날에 기념하고 있으며 그 기념의 강도는 유럽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그런 러시아 전승절의 위세가 또 몇 배나 세졌다.


푸틴은 4반세기에 가까운 집권 기간에 '나치 독일의 패망을 소련에 의한 나치 독일의 항복'으로 변용 윤색하면서 집권의 기둥으로 삼고 있다. 2년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다름아닌 나치 처단을 다른 나라 침입을 정당화하는 핵심 단어로 삼았다.


2차 대전의 군인 및 민간인 사망자 수는 확정된 것은 없으나 중국과 일본, 일본과 미국 간의 아시아 및 태평양 부문을 제외하고 유럽 전장에 국한할 경우 최소 5000만 명이 죽었으며 이 수치 기준으로 이 중 옛 소련에서 최소한 그 절반인 2500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소련은 지금의 러시아 외에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14개 공화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라는 단어가 소련인, 러시아인에게 던지는 역사적 울림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사망자 수다. 나치 독일에서는 모두 600만 명 정도가 죽었으며 미군은 40만 명 전사했다.


AP 통신은 1999년 마지막날 정권을 처음 잡았던 푸틴이 5월9일 전승절을 그의 정치적 어젠다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아 군사력 과시를 연출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1952년 생인 푸틴(71)는 자신의 가족사를 자주 입에 올렸으며 특히 고향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적인 나치 포위 당시 전선에 나가 중상을 입었던 아버지 이야기가 단골 주제였다.


푸틴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와 이름이 같은 그의 아버지는 전선서 부상해 군병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아내의 '시신'이 사람들에 의해 집 밖으로 끌어내지는 것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푸틴의 어머니 마리아가 굶어서 이미 죽은 것으로 사망 판정했다.


그러나 푸틴 아버지는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사람들에게 아내가 하도 굶주려서 기절해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부의 첫 아이 빅토르는 나치 레닌그라드 봉쇄 때 3살로 죽었다. 당시 나치가 레닌그라드를 872일 동안 사방에서 봉쇄하는 작전을 펴면서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죽었는데 대부분이 아사했다. 


푸틴은 집권 후 수 년 동안 전승절 행진 때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참여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랬는데 이 관행은 코로나 팬데믹과 이후 우크라 전쟁의 안보 위협 때문에 중단되었다. 


2022년 2월24일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우크라를 전면 침공하면서 침공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연설에서 푸틴은 2차 세계대전을 들고왔다. 서방은 침공이 우크라가 아무런 도발적 행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질러져 정당화할 수 없는 '푸틴의 전쟁'이라고 비난했다.


푸틴은 우크라 작전의 목표로 우크라의 '탈 나치화'를 명확히 제시했다. 우크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부를 '네오(신) 나치'라고 불렀는데 이는 완전한 허위 주장이다. 젤렌스키는 유대계이며 친척 여러 명이 나치 홀로코스트에 죽었다.    


AP 통신은 푸틴이 이미 지나간 과거인 2차 세계대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관련해 옛 소련의 권위와 명성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또 소비에트 방식 통치술에 대한 의지가 드러난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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