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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집권뒤 돌변한 시진핑, ‘포스트 시진핑’ 시대 준비해야 한다! - 前 주중 일본대사가 본 시진핑, “집권뒤 돌변했다!” - 시진핑의 돌변, 권력 불안정성 때문, 최대 명제는 ‘국가안보’ - 포스트 시진핑 시대 준비해야 한다!
  • 기사등록 2024-02-27 11: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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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주중 일본대사가 본 시진핑, “집권뒤 돌변했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중국이 초위기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왜 지금의 이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의 정통 종합 월간지인 문예춘추 2월호는 2020년부터 작년 말까지 3년 동안 주중 일본 대사를 지내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다루미 히데오(垂秀夫) 전 대사가 재임 시절을 담은 회고록을 전격 게재했는데, 이 글에서 그는 마치 탐사보도 기자가 취재를 하듯 시진핑의 임기 초반부터 중국의 정치와 경제 등 전반적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또한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서 있었던 다양한 일들을 상세하게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다루미 히데오 대사는 사실 난징대에 유학해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 내 인맥도 풍부할 정도로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물론 대사로서는 3년의 임기를 보냈지만 천안문사태가 발발한 직후인 1989년 6월, 주중 일본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부임한 바 있고, 이후로도 네 차례에 걸쳐 10년가량 중국에서 근무했다. 또한 홍콩, 대만 등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그만큼 중국을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의 강력한 외교적 압박에도 그에 걸맞게 잘 대응을 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그러다보니 日中관계가 순탄치는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서 다루미 히데오 대사 이임 이후 일본은 7년만에 非중국통 주중대사를 임명했다. 이러한 조치는 대중국 강경파로 분류되는 다루미 히데오 대사의 교체를 계기로 악화된 일관계 개선을 추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최근 일중관계는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 대해 너무나도 속속들이 알고 있고, 또한 일본의 국익을 위해 중국과 당당히 맞섰던 그이기에 귀국하자마자 중국의 속살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으면서 시진핑의 실체를 서방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스스로 감당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문예춘추에 게재한 기고 글에서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의 변화, 일본 외교관에 대한 구금과 도청, 협박 등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을 가했다.


다루미 히데오 전 대사는 시진핑 주석에 대해 한마디로 “집권 후 전혀 딴 사람처럼 변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시진핑 주석은 사실 주석으로 선임될 당시 상당히 온화하고 권력을 탐할 정도의 위인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다시말해 중국의 파벌들이 돌아가면서 주석직을 맡는 관례에 따르면, 시진핑보다 리커창이 주석직에 더 가까이 있었는데 당시 주석이었던 장쩌민에 의해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받은 시진핑이 어부지리로 주석직에 앉을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성격이 온화하고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다.


다루미 히데오 전 대사도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시 주석은 부주석 시절이던 2009년 일본을 방문해 아키히토 일왕을 면담한 적이 있었다. 당시 다루미 전 대사는 외무성 중국몽골과장으로 안내를 맡았는데, 접견 인사가 70명이나 돼 시 주석이 장시간 대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만이나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부드럽고 겸허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주석직을 3연임하면서 보여주는 행태를 보면 과거의 그가 아니라는 것이 다루미 전 대사의 평가다. 실제로 다루미 전 대사가 시 주석 집권 뒤인 2015년 일본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총무회장을 수행하고 시 주석을 예방했는데, 그때 이미 시진핑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고 평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주변에 경호원이 진을 치고 있어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경계가 삼엄했는데, 그러한 경호와 보안 수준이 전임인 후진타오 주석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왜 돌변했을까?]


그렇다면 시진핑은 주석직 취임 이후에 왜 180도 태도를 바꿔 돌변하게 되었을까? 다루미 전 대사는 그 원인에 대해 시진핑의 권력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짚었다.


다시말해 시 주석 집권 직후 중국은 30년 고도성장에 따른 부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고, 경제난으로 실업률도 높았다. 특히 부(富)의 편중도 심각했는데, 경제성장에 대한 과실들을 전 국민이 나눠 갖는게 아니고, 공산당의 주요 요직들을 중심으로 관료사회 전체가 독점하다시피 소유하는 바람에 인민들의 불만이 팽배했다.


이 문제는 곧바로 인민들 사이에서 공산당 집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으로 번져갔고, 자칫 민심 이반의 확산으로 공산당 통치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터져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시진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샤오핑의 고도성장 노선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마오쩌둥식 강국 노선을 택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는데, 시진핑은 결국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루미 전 대사의 판단이다.


결국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을 포기하고 마오쩌둥의 권력 집중을 위한 공산당 체제 강화를 통해 집권 정통성에 대한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진핑의 위상도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잔임 후진타오 시절만 해도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회를 구성하는 7명의 상무위원은 당 총서기인 후 주석과 사실상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보장받았지만, 시진핑이 집권하면서부터 상무위원들과 총서기와 서열을 분명히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다시말해 시진핑 집권 이후 상무위원들은 총서기의 부하로 편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 집권 이후 상무위원들은 매년 말 당 총서기인 시 주석에게 업무 보고를 하도록 했고, 전용열차나 전용기를 이용할 때도 과거와는 달리 총서기 판공실의 심사를 받도록 조치했다. 서열 관계를 확실하게 수직적으로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시진핑의 위상을 강화한 것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최대 명제는 ‘국가안보’]


이러한 시진핑의 위상 강화는 결국 중국의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보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안정성 유지라는 쪽에 훨씬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음을 말해준다. 다시말해 시진핑 주석의 생각은 중국 공산당 체제의 강력한 유지를 방해하는 어떠한 요소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라면 경제발전은 뒤로 미뤄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시진핑의 확고한 통치이념을 생각한다면, 지금 중국이 경제성장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앞에 두고도 반간첩법 같은 국가안보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루미 전 대사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 대사들을 만났을 때, “시 주석이 국가 안보를 위해 경제는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한 시진핑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나왔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우리 신문도 지속적으로 중국 경제가 날이 갈수록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경제 회생은 이룰 수 없는 숙제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외교사절까지 거침없이 감시했던 중국]


사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로 통하는 다루미 전 대사는 주중 대사 근무시절 미행과 도청 등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등 중국 당국의 끊임없는 감시에 시달렸다는 말도 했다.


다루미 전 대사에 의하면 심지어 일본 외교관들이 자주 찾는 베이징의 한 일본식당에는 도청기까지 설치돼 있었기 때문에, 베이징 주재 일본 기자들과 만나 식사를 할 때 도청을 우려해 민감한 정치 문제는 언급을 피했다고 한다.


다루미 전 대사는 이어 중국 당국의 거친 외교 비화도 공개했다. 지난 2022년 2월 중국 국가안전부(국정원 격)는 공산당 기관지 광명일보의 평론부 부주임인 동위위를 베이징 신차오호텔에서 체포했는데, 당시 그와 함께 점심을 먹었던 일본 외교관도 함께 체포해 구금했다.


이에 다루미 전 대사는 즉각 중국 당국에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 위반”이라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외교관으로서 신분에 맞지 않는 활동에 종사한 만큼, 관계기관이 법에 근거해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13개국 대사가 연합으로 중국 외교부에 항의하자 그제야 석방했다고 회고했다.


다루미 전 대사는 일본과 중국이 외교적으로 정면 충돌했던 예화도 소개했다. 지난 2021년 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대만 국책연구원 주최 포럼 화상 연설에서 “대만의 비상사태는 일본의 비상사태이기도 하다”고 발언한 바 있었는데, 중국 외교부가 이 발언을 인지한 후 즉각 일본 대사를 호출했다. 그 시간이 저녁이라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앞으로 다루미 대사의 면담 요청을 모두 보이콧하겠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늦은 시간에 외교부를 찾아 호되게 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전랑 외교관으로 유명한 대변인 출신의 화춘잉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다루미 전 대사를 맞았는데, 30분 동안 아베 전 총리 발언에 대한 항의문을 줄줄이 읽어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다루미 전 대사가 “우리가 면담을 요청할 때는 차일피일 일정을 미루다가 중국 측이 필요할 때는 ‘당장 오라’고 호출하는데, 이것이 귀국의 예의냐”고 반박하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다루미 전 대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중국 외교가 이렇게 안하무인이고, 더불어 겉으로 내보이는 외교를 중시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포스트 시진핑 시대 준비해야 한다!]


다루미 전 대사는 그러면서 “시 주석이 일흔을 넘은 고령인 만큼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론 시진핑 주석이 당장 사망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권력을 지속할지라도 서방국가들은 ‘시진핑 이후’의 중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루미 전 대사는 비록 “시 주석 사망 이후 중국 정국이 안정을 유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웃 국가로서 정책 변화에 대한 대응책은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의 속뜻은 지금의 중국 상황을 볼 때, 시진핑 정권이 계속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고, 중국에서 어떤 사변이 일어날지 모르니 그런 측면에서 ‘포스트 시진핑’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사실 다루미 전 대사가 그동안 중국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해 왔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포스트 시진핑’에 대한 속뜻을 돌려서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루미 전 대사의 중국 평가, 특히 시진핑 주석에 대한 분석은 한국 외교에도 상당히 중요한 단서를 던져 준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중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일단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한 대로 대국(大國)이라는 전제를 깔고 고개부터 숙이고 본다. 그것이 사대주의이고 그동안 중국의 실체를 잘못 이해한 탓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은 결코 대국이 아니다. 스스로 가운데 중(中)을 쓰는 나라 아닌가? 우리가 중국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판단하는 순간부터 중국을 제대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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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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