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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백지시위 1년, 폭풍 전야의 중국 민심 - 中 백지시위 1주년, “여전히 숨막힌다!” - 백지시위의 불꽃,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 시위를 두려워 하는 중국 당국
  • 기사등록 2023-11-27 12: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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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백지시위 1주년, “여전히 숨막힌다!”]


지난해 11월 26일 밤, 정치적 동기를 지닌 대규모 시위가 중국내 수십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중국 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로인해 시진핑 주석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스스로 자랑했던 ‘제로코로나’ 정책을 결국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아직도 숨이 막히고 젊은 층들은 속으로 부글부글 들끓고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미국의소리(VOA)는 26일, “제로코로나 폐지를 요구하며 지난해 봉기했던 베이징과 상하이의 시위대는 ‘자유, 민주주의, 법치’, ‘시진핑의 문화대혁명, 더 이상 개혁은 없다’, ‘더 이상 독재, 더 이상 인격 숭배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면서 “‘공산당은 물러나라’ 및 기타 정치 구호, 강력한 항의 속에서 중국 공산당 당국은 며칠 후 서둘러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26일 밤 상하이 우루무치 중루에는 수백∼수천 명이 거리로 몰려 나와 '우루무치 참사'에 항의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상하이 우루무치 중루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위구르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다.


해당 시위는 이틀 전인 24일 우루무치에서 아파트 화재로 10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도화선이 됐다. 당시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제로 코로나 봉쇄를 위해 주택 현관문을 바깥에서 쇠사슬로 묶어놓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는데, 이 설치물들이 신속한 진화를 방해하면서 피해가 컸다는 주장이 퍼져나갔다. 이후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거의 동시에 열렸다.


그 무렵 난징 미디어대학의 한 여학생이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는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사진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상하이 우루무치 중로에서 열린 항의 시위 현장의 이미지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흰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언론 봉쇄를 암시하는 듯했다. 시위대의 손에 들린 흰 종이는 미묘한 반항의 표시가 되었다.


이렇게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의 거리에서 열린 집회가 대규모 시위로 변해갔다. 주로 젊은이들로 구성된 군중은 경비를 서는 수백 명의 경찰 앞에서 ‘공산당 퇴진’, ‘시진핑 퇴진’ 등의 정치적 구호를 외쳤다. 중국 공산당과 최고 지도자를 직접 겨냥한 정치적 구호를 집단적으로 외친 것은 시진핑 행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한 이후 거의 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세 번째 5년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34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특히 상하이, 베이징, 난징, 광저우, 톈진, 충칭, 청두, 우한, 선전, 항저우, 란저우, 정저우, 지난, 칭다오, 주저우 및 기타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 극단적인 방역 정책과 주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각종 봉쇄 및 통제 조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이와 함께 베이징대학교, 칭화대학교, 난징미디어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학생 시위가 열렸으며, 일부 시위대는 18세기 미국 정치인이 외쳤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백지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확산되는 동안 유럽, 미국, 호주에 흩어져 있던 중국인 유학생들도 이에 호응했고, 일부 화교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VOA는 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이 건국 이후, 중국 정부가 대중의 항의에 직면하여 강제 정책을 변경해야 했던 것은 처음이었다”면서 “많은 시위대가 당국의 언론 통제에 항의하는 상징으로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였고, 중국과 해외를 뒤흔든 이 대중 운동은 '백지 운동' 또는 '백지 혁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백지시위의 불꽃,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AFP 통신은 “중국에서 가혹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한 '백지 시위'가 26일로 1주년을 맞은 가운데 많은 시위 참가자는 여전히 당시 기억에 숨이 막힌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작년 우루무치 중루 시위에 참여했던 20대 리모 씨는 AFP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폐지된 직후 모두가 바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며 “모두가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도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리씨 같은 이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경찰이 리씨를 찾아와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AFP에 따르면, 리씨는 “작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여전히 숨이 막힌다”며 “경찰이 한 소녀를 경찰차로 끌고 갔는데 매우 폭력적이었다. 난 계속해서 그 이미지에 대해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인권단체 '중국인권옹호자들'의 윌리엄 니 분석가는 “작년 시위로 100여명이 연행되거나 구금된 것으로 추산한다”고 밝혔고, 리씨는 친구들 일부가 중국을 떠났고, 다시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난해 시위 주동자들을 비롯해 핵심 참가자들이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을 향한 저항의 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VOA는 “올해 10월 말 상하이의 할로윈 파티에서 상하이의 젊은 세대들은 현실과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표출하고 반영했다”면서 “인터넷에 퍼진 분장쇼 영상과 이미지를 보면, 온몸에 흰 종이를 붙인 여성, 핵산, 루쉰, 곰돌이 푸 등 만화 캐릭터의 풍자 퍼포먼스를 통해 시진핑이나 중국 공산당 당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또한 상하이 백지 운동에 대한 경험에 대해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 국제 언론 매체와 인터뷰한 베이징대 졸업생 황이청은 미국 온라인 잡지 더럼퍼스(The Rumpus)에 “2023년 상하이에서 열린 할로윈 퍼레이드는 2022년 우루무치 중로에서 열린 '백지 운동' 이후 상하이에서 가장 큰 사회 운동으로 수천 명이 참가했다”면서 “각 활동가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신만의 '놀이'를 현장에 가져와 상하이 거리를 이동식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베이징의 백지시위 운동에 참여한 ‘한윈’은 백지 시위에 대한 잔인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백지 운동의 영혼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백지 시위 운동 이후 사람들은 점차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면서 “어떤 사람들은 리커창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꽃을 보내러 갔고, 어떤 사람들은 상하이의 할로윈에 온몸에 흰 종이를 칠했다. 이제 사람들은 거리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베이징대학에 재학 중인 한 대학생도 “백지 시위에 참여한 일부 청소년들이 희생양이 되어 자유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백지 시위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체포되고 박해를 받으며, 우리 모두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이 젊은이들을 잊지 말아줄 것을 모두에게 호소한다”고 VOA에 말했다.


현재 대학생인 그는 또한 “수많은 2차 재앙을 초래한 미친 폐쇄와 통제 조치는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학자이자 천안문 운동의 전 지도자 중 한 명인 왕단은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시위 운동이 매우 고무적이었다”면서 “특히 많은 젊은 세대가 나서기 시작했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발전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경제 침체, 폭압적인 방역 정책, 젊은이들의 실업으로 인해 중국 내 대중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왕단은 이어 “중국내에서의 시위는 펑자이저우(또는 펑리파)의 시통차오 현수막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지와 일부 대학에서 시위대는 베이징 시통차오에서 펑리파(필명 펑자이저우)와 비슷한 구호를 외쳤다”고 지적했다. 이 시위에서 나온 구호가 바로 “독재자 시진핑을 제거하라”, “공산당 해체”, “시진핑 퇴진” 등이었다.


펑리파는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교통량이 많은 베이징의 시통교에 이러한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시진핑이 무기한 연임을 위해 조성한 '제20차 전국대표대회 환영' 축하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깨뜨린 첫 번째 인물이 되었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후 소식이 끊겼다.


[시위를 두려워 하는 중국 당국]


VOA는 “최소 21개 성, 207개 고등 교육 기관의 학생들이 화북, 화동, 화중, 화남, 서북, 동북 등 중국의 모든 주요 지역에서 관련 시위를 했다”면서 “젊은 학생들이 집단적이고 자발적으로 당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이러한 상황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깊은 위협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실 백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을 때인 11월 2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코로나 예방 및 통제 정책이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오피니언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날 새벽 신화통신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확고히 이행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시국 관련 논평을 세 차례 연속으로 게재했다.


그리고 11월 28일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법무위원회 서기 천원칭은 회의를 주재하며 적대 세력의 침투 및 방해 활동에 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 및 범죄 행위에 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여 사회 전체의 안정을 효과적으로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끝까지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도 결국 수많은 젊은이들의 시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만큼 그들의 시위가 두려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로 그러한 젊은이들의 시진핑 정권에 대한 불만과 자유를 향한 갈망은 백지 시위 1주년이 되는 지금도 휴화산이 되어 분출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시진핑 주석이 국가 경제보다 공산당을 지키는 안보가 우선이라고 말했겠는가? 이것이 지금의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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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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