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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페론주의의 몰락, ‘남미 좌파’ 붕괴 시작됐다! - 페로니즘 정권 몰아낸 아르헨티나 우파 후보 밀레이 - 좌파 포퓰리즘에 신물난 아르헨티나 - 중남미 핑크타이트 붕괴 신호탄 될 듯, 탈중국 선언도 관심거리
  • 기사등록 2023-11-22 00:49:09
  • 수정 2023-11-22 07: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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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니즘 정권 몰아낸 우파 후보 밀레이]


페론주의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에서 “차라리 정부가 없는 것이 국민에게 더 이롭다”며 그동안 아르헨티나를 병들게 만들었던 페로니즘(대중영합주의)의 전면적 폐기와 대대적 개혁을 주창했던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중남미 정치 구도에 대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자(현지시간) 지면을 통해 “아르헨티나는 이제 무정부주의자 대통령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밀레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를 최악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임무를 맡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초선 의원인 밀레이는 지난 19일 승리 연설에서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면서 정부와 경제를 개편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자칭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인 그는 경제학자 출신 방송인이었다. 지난 2021년 아르헨티나 하원 입성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대통령직까지 오르게 됐다.


[좌파 포퓰리즘에 신물난 아르헨티나]


밀레이 당선자가 이렇게 전면적 개혁을 주창하는 것은 지금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너무나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NYT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퍼주기식 과잉 지출, 지나친 보호주의 무역 조치, 국가 부채의 대대적 증가와 이를 갚기 위한 페소의 무한정 발행 등 실패한 경제 정책으로 인해 4,600만 명의 인구가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다.


아르헨티나가 이렇게 최악의 인플레이션, 빈곤, 치안 불안 등에 허덕이는 것은 수십년간 이어진 페로니즘 때문이다. 그레서 밀레이 당선자는 “그들(현 집권 페로니스트)은 초인플레이션으로 향하는 파괴된 경제를 우리에게 남겨뒀다”며 “부채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아르헨티나를 다시 일으키고 앞으로 나아갈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공공 부문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돈 찍기’로 대응했고, 이에 아르헨티나 통화(페소화) 가치는 같은 기간 90% 이상 하락했다. 연간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기준 142%에 달했고, 외화보유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현 정부는 4년의 집권 기간 동안 민간 일자리를 늘리는 데 실패하면서 빈곤율이 35%에서 40%로 올라갔다


[밀레이 당선자, 어떻게 개혁할까?]


이제 관심의 초점은 밀레이 당선자가 아르헨티나를 어떻게 개혁해 나갈지의 여부다. 일단 밀레이 당선자는 정부 부처 수를 줄이고,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며 대부분의 세금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18개 연방 부처 중 10개 부처를 없애며, 공립학교를 바우처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공공 의료 시스템을 보험 기반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통해 현재 연간 GDP의 40% 수준인 보조금 및 복지 등 공공지출을 15%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또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자국 통화인 페소화 대신 미국 달러화를 채택하겠다고 공약했다. 한마디로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초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것으로, 브라질과 멕시코에 이은 라틴아메리카 3위 경제 대국 아르헨티나처럼 경제 규모가 큰 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획기적인 일이다.


미국 달러가 공용화폐가 되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결정권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넘겨주고 화폐 발권 능력도 박탈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미 달러화로의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밀레이 당선자는 “저는 약속을 이행하고 사유 재산과 자유 무역을 존중하는 정부를 원한다”며 “빈곤한 모델은 이제 그만”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밀레이 당선자의 공약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급진적이다. 그럼에도 밀레이는 지금 아르헨티나에겐 그러한 급진적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상황은 극적이다. 점진주의나 절반 정도의 조치를 취할 여지는 없다”면서 “35년 후에 아르헨티나가 세계 강국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밀레이 당선자 앞에 놓인 과제들]


그러나 밀레이 당선자 앞에 커다란 벽도 놓여 있다. 밀레이가 정치에 입문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의회나 지방 정부 장악이 힘들다는 점에서 그가 말한 대로 급진적 국정 운영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밀레이는 다른 세력과 정치인들에게도 문을 열어놓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본선투표에서 탈락한 이후 밀레이 지지를 선언한 중도우파 제1야당 ‘변화를 위해 함께’의 파트리시아 불리치와 2015년 집권했던 유일한 중도우파 출신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연대의사를 비치기도 했다.


이날 승리한 밀레이는 별도의 대통령직 인수 준비 기간 없이 3주 뒤인 다음달 10일 취임해 곧바로 국정 운영을 시작한다. 정권을 내준 현직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국민이 투표로 향후 4년 동안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다”며 당장 다음날부터 정권 이양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남미 핑크타이트 붕괴 신호탄 되나?]


이번 밀레이의 대통령 당선으로 말미암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핑크 타이드(pink tide·분홍 물결, 중남미 좌파 연쇄 집권)가 퇴조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콜롬비아 대선에서 첫 좌파 후보(구스타보 페트로)가 당선됐고, 넉 달 뒤 브라질 대선에서 ‘중남미 좌파의 대부(代父)’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12년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중남미 6대 경제 대국(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페루) 모두 좌파가 집권하는 초유의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좌파의 페루 대통령이 탄핵으로 축출된 데 이어 중남미 좌파의 적자(嫡子) 격인 아르헨티나의 페로니즘(대중 영합주의) 집권 세력까지 정권을 내주며 ‘핑크 타이드 6강’ 체제가 허물어졌다.


이에 대해 영국 더타임스는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이 ‘2차 핑크 타이드’에 종말을 고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남미를 장악해 왔던 온건 사회주의 정권들, 곧 공산주의의 유행을 뜻하는 ‘붉은 물결(red tide)’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은 ‘분홍 물결’이 이번 아르헨티나의 우파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퇴조의 흐름으로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더타임스가 이렇게 예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좌파가 집권한 나라들에서 포퓰리즘으로 인한 폐해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만성적인 경제난과 사회 혼란 속에 유권자들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좌파 정당에 매력을 느껴 표를 던지면서 핑크 타이드가 전성기를 맞았으나 이들도 결국 부패와 무능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페루다. 청렴 이미지를 앞세워 집권한 교사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측근 부패 연루 의혹과 설익은 급진 좌파 정책에 따른 국정 혼란으로 집권 동력을 상실해 지난해 12월 의회에서 결국 탄핵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남미 주요국 좌파 정권인 칠레도 삐걱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해 36세의 나이로 ‘칠레 역사상 가장 젊고 급진적인 대통령’으로 주목받으며 집권한 가브리엘 보리치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1973~1990)을 무리하게 청산하려다 역풍에 직면했다.


지난해 9월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세력이 주도한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62%라는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다. 이 헌법 개정안에는 정부와 공기업 내 성평등, 노동조합 권리 강화, 성 정체성 선택 권리 등 급진적 내용이 대거 담기면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결국, 지난 5월 새 헌법을 제정할 헌법위원회 선거에서 우파 야당에 완패하면서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도 완전히 상실하면서 지난 8일 제안한 개헌안에는 집권세력의 뜻이 아닌 우파 세력이 요구하는 내용들만 담기는 수모를 당했다.


콜롬비아에서도 지난달 29일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완패하면서 좌파의 득세가 한풀 꺾였다. 심지어 수도 보고타 시장 선거에서 페드로 대통령의 최측근 구스타보 볼리바르 후보가 집권당 프리미엄을 갖고도 18.7%로 3위에 그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의 승리는 확실해 보인다.


여기에 주요국은 아니지만 에콰도르 대통령 보궐선거에서도 우파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면서 파란이 일었다. 또한 남미의 유일한 대만 수교국 파라과이가 지난 4월 치른 대선에서 집권 여당 소속 산티아고 페냐 후보가 친중국 성향의 좌파 후보에게 15%포인트 차의 압승을 거뒀다.


[아르헨티나의 탈중국 선언도 관심거리]


이런 가운데 이번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당선된 밀레이는 “미국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중국과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어 외교의 흐름도 눈여겨 볼만하다.


밀레이 당선인은 중국, 브라질, 메르코수르(MERCOSUR·공동시장을 추진하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 등과의 교역에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선 “공산주의자들과 거래하지 않을 계획”이라고도 했고, “중국에는 자유가 없고, 누군가 원하는 걸 하려 할 때 그를 살해한다”고 언급하는 등 공개적으로 반중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후보 시절 몇 차례 인터뷰에서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협력 체계를 더 공고히 다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들로 미루어 봤을 때, 아르헨티나의 외교 노선에는 대변화가 예상된다. 우선적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협력 등 전임 정부의 방침에 재조정이 있을 것이며, 지난 8월 승인을 받아둔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내년 1월)도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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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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