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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05 00: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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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이라 부르는 일본의 전설적인 기업인 마쓰시다 고노스께. 94세까지 살면서 수많은 성공신화를 이루었는데 그 비결은 ‘덕분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갖가지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저는 허약한 아이였던 ‘덕분에’ 운동을 시작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덕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저의 선생이어서 모르면 묻고 배우면서 익혔습니다.”


마쓰시다 고노스께는 얼마든지 ‘때문에’를 부르짖을 수 있었다. “그것 ‘ 때문에’ 못했고, 저것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노라”라고 얼마든지 핑계를 대며 인생을 회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문에’를 말했더라면 마쓰시다 고노스께가 저렇게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더럽고 지저분한 말들이 나왔을 것이고 그의 마음도 흙탕물같이 지저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그러나 마쓰시다 고노스께는 과감히 ‘때문에’를 털어 버리고 ‘덕분에’를 내세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그의 탁월한 선택이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들 ‘때문에’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 ‘때문에’ 때문에 인생이 함몰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듯싶다. 모든 사람은 순간 순간 ‘때문에’를 선택할 수도 있고 ‘덕분에’를 따를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 중요한 것은 어느 사건이나 어느 현상에 대해서 ‘ 때문에’에 함몰되면 결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에 대한 비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때문에’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반드시 상처가 생겨나게 되고 누군가에 대한 흠집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때문에’는 또 편을 가르게 된다. 그래서 평화나 화합은 이미 물 건너 가 버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무슨 무슨 사건 ‘때문에’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 사건 ‘덕분에’ 나라가 개혁되고 그래서 반듯한 나라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때문에’를 외치면 누군가를 비판하고 짓눌러야만 한다. 그래서 논쟁이 가열될 수밖에 없고 그로인해 ‘편가르기’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진영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를 생각하게 되면 진정한 해결방법을 찾게 된다. ‘때문에’는 사람을 보지만 ‘덕분에’는 시스템을 바라 본다.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때문에’와 ‘덕분에’의 차이다.


양극화 현상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가 양극화를 찬성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양극화’ 아니겠는가? 그러한 ‘양극화’를 진정으로 해결할 의사가 있다면 ‘때문에’를 바라보지 말고 ‘덕분에’의 가치관으로 접근해야 한다. ‘때문에’의 관점으로 양극화를 바라보면 당연히 분배가 논제의 중심이 된다. 부자들 때문에 양극화가 일어났기에 그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몰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부의 편중을 줄여보자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의 관점은 오히려 시스템을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경제의 성장과 생산성 증대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때문에’와 ‘덕분에’는 접근 방식도 다르게 되고 가치관도 현저하게 차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인가? ‘때문에’와 ‘덕분에’는 어떤 쪽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사고(思考)의 체계도 달라진다. ‘때문에’ 지향파는 부정적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된다. 비판과 비난, 내 편과 네 편이 그 사람의 머리와 심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지향파는 긍정적 가치관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때문에’는 자신의 책임을 당연히 면제시키지만 ‘덕분에’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누군가에 대한 감사가 있고, 또 자신의 역할을 더욱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 그 마음 가운데 행복이 자리잡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난했던 부모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힘들게 사셨던 부모 ‘덕분에’ 자신의 인생을 강하게 채찍질하면서 긍정적 인생을 펼쳐 나갈 수 있을 수도 있다.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다.


오늘 자신을 묵상해 보라. 나는 누군가에 대해 원망하는 ‘때문에’의 인생인가? 아니면 ‘덕분에’를 누리는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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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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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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