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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26 15: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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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나 이승만 모두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 임시정부 계승한 정부 수립 주장
-의열투쟁을 중시한 김구, 외교활동 강조한 이승만 등 각각 중국과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
-갈등보다는 화합을 위해 광화문에 김구와 이승만이 서로 악수하는 동상이 세워지길 바란다


▲ 김구와 이승만은 모두 미국, 영국, 소련의 한반도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김구 선생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이승만 박사는 미국에서 놀고먹다가 왔으며 남북분단을 고착화하였으며 독재를 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반면 이승만 박사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김구 선생은 중국에서 아무 의미 없이 젊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김일성이 세운 북한의 단독정권을 정당화시켜준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적 인물들에게는 공도 있고 과도 있는 법이다. 김구 선생이나 이승만 박사 모두 일제의 식민통치 시절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김구 선생이 의열투쟁을 중시했다면 이승만 박사는 외교활동을 강조하였다. 김구 선생은 중국 국민당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냈으며 이승만 박사는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었다. 두 어른 모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1919년에는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김구 선생이 경무국장으로 1940년에는 이승만 박사가 주미외교위원장으로 김구 선생은 주석으로 활동하였다. 이렇게 독립운동기간 내내 일제에 항거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해 활동했다.


두 어른 모두 해방 이후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부를 세우기 위해 일심으로 노력하였다. 미국, 영국, 소련이 한반도를 5년간 신탁통치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정부 수립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가 국내 여러 단체들과 함께 과도정부를 세우고 그 과도정부를 정식정부로 세우는 것을 원했다. 반면 이승만 박사는 임시정부가 해방 이후 우리를 통치하고 있던 미군정을 인정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가 정식정부를 세울 때 임시정부 계승을 밝히기를 원했다. 두 어른 모두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부를 세우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정부의 형태를 놓고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하였다. 김구 선생은 통일정부를 세우기를 원했으며 이승만 박사는 단독정부를 세우기를 원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이 분열하면 결국 전쟁의 비극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3.8선을 넘어 김일성을 만났다. 반면 이승만 박사는 북한이 이미 1946년에 단독으로 공산주의 정부를 세웠기에 가만히 있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된다고 생각하여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했다.


필자는 이승만 박사의 노선이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김구 선생의 뜻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그분이 주장했던 통일정부 수립은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과업이다. 잘못이 있다면 김구 선생의 뜻을 악용한 김일성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과업인 통일의 길을 미리 걸어가서 좋은 길을 만들어주신 김구 선생과 공산화를 막아내고 정부수립의 큰 공로를 세운 이승만 박사 모두 소중하다. 이 소중함을 기억하면서 후세에게 전달한다면 갈등보다는 화합이 넘쳐날 것이다. 광화문에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서로 악수하는 동상이 세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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