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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20 00: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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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인 1932년은 1차세계대전의 혼란, 볼셰비키 혁명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시기
–감독이자 각본을 쓴 웨스 앤더슨이 엔딩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 얻었다” 밝혀
–유럽의 파괴 보며 느꼈던, 찬란했던 문화 예술에 대한 향수와 비애, 패러독스, 절망 등 묻어나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포스터


약 10년 기간 동안 내가 본 영화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이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전제 한 가지.
나는 일반인 기준으로 치면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축에 속한다. 시간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꼭 끌리는 영화, 이 영화만큼은 봐야지 하는 작품이 있다.


그게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두 번씩이나 감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를 최근 들어 다시 본 이유는 더 세심하게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감독이자 각본을 쓴 웨스 앤더슨이 엔딩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대목이 나를 영화로 이끌었다. 츠바이크의 흔적을 더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이 영화에 끌린 가장 큰 이유였다.


약 4년 전, 국내 개봉되어 흥행에도 선전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대한 리뷰는 꽤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시기에 대한 오류는 자못 심각하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리뷰들의 인트로는 “1927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또는 “1932년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인 경우가 많다. 또 다른 리뷰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대부분 이렇게 쓰고 있다. 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이야기 시작은 1932년부터이다.


영화는 허구적 창작과 상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해도 인류가 경험한 역사적 사실은 정확한 팩트라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1918년이었고, 2차 세계대전은 1939년~1945년이다. 따라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야기 시점인 1932년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인 전간기(戰間期)에 해당한다.


영화의 배경인 1932년은 그 전에 벌어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의 파괴와 혼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터져나온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혁명이 유럽을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하던 시기이다. 공산주의가 유럽을 휘감은 데 이어서 파시즘의 등장은 마르크스주의자와 파시스트와의 대립, 파시즘이 우파인지 좌파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권력을 잡은 세력이 다른 진영을 숙청하기에 혈안이 된 엄청난 혼란기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나오는 대화 “유럽은 도살장처럼 변해버린…”이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영화의 배경인 1932년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총선에서 승리, 대거 독일 의회에 진출하며 승승장구, 권력을 쥐었던 시기이다. 이듬해인 1933년 히틀러는 총통에 취임, 2차 세계대전의 서곡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는 1932년 도살장 같은 유럽 문화의 중심지를 무대로 벌어지는 미스터리, 모험 등을 감독의 익살스럽기까지 한 연출과 동화 같은 영상과 예술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이다.


나는 본격 예술영화에는 흥미가 없다. 예술을 위한 예술, 과도한 예술 집착을 보이는 영화는 싫어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런 면에서 감독의 영리한 접근 방식이 돋보인다. 게다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서 영감을 얻은 바, 곳곳에서 츠바이크의 문학이 가진 영향력이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대사 곳곳에서 당시 츠바이크가 유럽의 파괴를 보며 느꼈던, 과거 찬란했던 문화예술에 대한 향수와 비애, 패러독스, 절망 등이 묻어나온다. 그럼에도 영화 중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욕심은 독처럼 퍼져나가 절제를 모르는 그런 상황들이 시니컬하지만 독특한 아트 형식으로 제시되곤 한다. 영화감독이 츠바이크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당시로는 최고의 호텔에서 호텔 관리인, 즉 콘시어즈와 로비 보이의 기묘한 모험이다. 츠바이크 문학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잊지 못할 영화이며, 반가운 그런 작품이다. 츠바이크는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했을 당시 오스트리아를 떠나 스위스에 머물기도 했다.


영화 서두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장면은 츠바이크 소설 중 한 부분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한다. 배역에 상관없이 내로라는 배우들이 저마다 명연기를 하는 씬을 다시 찾아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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