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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15 07: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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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청년을 대학에 보내는 대한민국이 ‘교육과 노동시간당 생산성은 관계 없다’ 입증
–교육의 주요한 기능은 성실성과 지능 등 인재의 우수성을 구별해서 사회에 알려주는 ‘신호’
-블라인드 채용? 인재의 선별이 정보 비대칭성과 불확실성에 기초한다는 엄연한 현실 부정


▲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진행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현장 간담회에 참석하여 채용 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교육에 의한 투자가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원천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경제학의 ‘지혜’에 해당한다. 국가의 평균 교육연한과 국민소득을 보면 명백하게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교육이 국민소득을 견인한 것인가 아니면 높은 소득이 높은 교육을 견인하는가 즉 인과관계에 대해 회의가 강해지고 있다. 대한민국만 해도 최근에는 대부분의 청년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지만 경제성장과 생산성은 낮아지고 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Lant Pritchett 교수의 연구논문 <교육효과는 어디로 갔는가?(Where Has All the Education Gone?)>은 국가간 비교 연구에서 교육과 노동시간당 생산성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장하준 교수의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에서 대부분의 교육은 생산성과 큰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교육에 투자하는가?


미국의 자료를 보면 학력 수준에 따라 고용률과 평균 임금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고학력이 취업도 쉽고 평균 임금도 크게 높다. 이는 선진국 모두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적어도 생산성과 상관없이 교육의 투자는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역할을 무엇인가? 교육의 주요한 기능은 사실 인재의 우수성을 구별해서 사회에 알려주는 신호(Signaling) 기능이라는 것이다. 80% 이상의 기능이 바로 이런 신호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이 인터뷰와 입시 시험만으로 하버드를 입학할 만큼 성실하고 머리 좋은 사람을 판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적어도 10~20년의 성실한 노력과 두뇌의 우수함의 결과다. 그래서 어느 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우리가 겪어보기 전에는 좀처럼 알 수 없는 노동(인재)의 우수성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신호이다.


물론 명문대학에 들어가면 비슷하게 성공한 동문의 네트워크로부터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도 덤으로 제공된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블라인드 채용은 이 신호 효과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신학교를 가리고 입사 시험이나 면접만으로 그 조직에 필요한 최고의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인재의 선별이 엄청나게 극복하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성과 불확실성에 기초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은 입사 시험을 치르는 나라는 별로 없다. 대학에서 배운 과목들을 달달 외우는 시험들이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속성을 가려줄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그런 환상을 우리는 객관적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짓을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세상이 부정으로 가득하다는 전제 위에서 전 세계에 없는 우매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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