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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쿵이지'로 살아가는 中청년의 슬픈 자화상 - “학벌 좋아서 불행하다”는 중국 청년들 - 중국의 젊은 구직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중국 기성세대, “허세 벗어나 일단 일해라”
  • 기사등록 2023-04-27 1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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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좋아서 불행하다”는 중국 청년들]


중국 청년들 사이에 최악의 취업난으로 힘겹게 살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이러려고 공부했나”라며 가슴을 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쿵이지’에 빗대 자조한다. 도대체 지금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그러는 것일까?


중국 청년들이 정말 공감하는 말이 있다.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공부를 하는 바람에···”라는 말이 그것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공장에 취직해서 일이나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자조섞인 말들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학교 다닐 때는 쿵이지를 비웃었는데, 오늘날 '장삼을 못 벗는 쿵이지'가 내 자신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로 이어진다.


도대체 여기서 나오는 ‘쿵이지’란 무엇일까? ‘쿵이지(孔乙己 공을기)란 중국 근현대 작가 루쉰(魯迅)이 1918년에 쓴 동명 소설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쿵이지는 높은 계급의 상징인 장삼(長衫)을 걸쳐 입고 허름한 선술집에서 선 채로 술을 마신다. 여기서 서서 술을 마신다는 건 돈이 없다는 뜻이고, 그런 주제에 장삼씩이나 걸쳤다는 것은 지식인으로의 체면만은 포기하기 어려운 ’쿵이지‘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쿵이지의 모습은 중국 최고학부의 학위를 따고도 번듯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렇다고 저임금 일자리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청년들의 답답함을 쿵이지에 투사시켜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동안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네이쥐안(內卷·질적 성장 없는 소모적인 경쟁), 탕핑(躺平·의욕을 잃고 드러눕다), 룬쉐(潤學·탈중국 연구) 등의 용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빗대 왔는데, 최근들어 높은 스펙을 가졌음에도 최악의 취업난을 겪자 스스로를 쿵이지에 빗댄 글을 쓰거나, 노래를 만들어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판 유튜브인 비리비리(bilibili, 哔哩哔哩)에 ‘밝고 명랑한 쿵이지’라는 제목의 창작자 미상 노래가 올라왔다. “람보르기니를 운전하는 그대여, 열심히 살라고 내게 조언하지 마. 나는 밝고 명랑한 쿵이지(孔乙己), 힘없고 가난해 아등바등 살지.”라는 가사였는데, 4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자 중국 당국이 개입하면서 곧바로 삭제됐다.


이렇게 경기 부진과 치열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중국 청년들의 무기력감과 불안감을 반영하는 ‘쿵이지’ 문화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면서 쿵이지 문학이라는 장르까지 탄생했다. 그러다보니 ‘쿵이지 문학’은 중국판 검색엔진인 바이두에서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대학까지 나왔는데 출세를 못 했느냐’며 우리를 조롱한다” 등의 글이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한 매체에 의하면, 상하이에서 취업 준비 중인 장모(22)씨는 “중국 대학생들은 코로나 봉쇄 기간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미친 문학(논리에 맞지 않는 감정 해소 글)’을 쓰거나 ‘탕핑’(躺平·드러누워 포기한다는 뜻)을 택해야 했고, 졸업 후엔 쿵이지로 전락했다”고 했다.


[도대체 청년 일자리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실제로 최근 중국 관영매체까지 나서서 ‘쿵이지 문학’을 경계할 정도로, 청년들의 고용 불안감은 심각하다. 중국 경제가 ‘위드 코로나’ 효과에 1분기 깜짝 성장을 기록했지만, 3월 청년 실업률은 오히려 더 올랐다. 특히 중국의 취업난은 제로 코로나를 겪으면서 몇 년째 이어지는데다, 그럼에도 계속 대학 졸업자들이 배출되는 바람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중국어판은 지난 3월 1일, “난징의 한 대학이 5대보험을 뺀 실수령 월급 1800위안(약 35만원)의 사서 2명을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무려 2000명이 몰리는 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지난해 11월 22일, “대학을 졸업한 22세의 탄(Tan)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틱톡의 중국어 버전인 더우인(Douyin)에 충칭시의 공동묘지에 취업했다는 사실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면서 “그녀는 약 4000위안(약 77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주 6일 근무한다고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고 보도했다.


SCMP의 이러한 보도는 중국 청년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보니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자리까지도 귀하게 여기는 풍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러한 묘지지기를 ‘평화로운 일자리’로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전한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의 젊은 구직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으로 일자리가 얼마나 개선될지, 또 정말 일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조차 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중국의 대학 졸업자수는 지난해에 처음으로 1천만명을 넘어섰다. 2013년만해도 699만 명이었던 것이 10년만에 400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기존의 미취업자까지 포함한다면 대졸 구직자수는 최소 16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중에서 3분의 1, 많아야 약 40% 내외 정도만 취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조차 지난해 10월 배출한 졸업생 8000여 명 가운데 62%만 취업에 성공했다. 중국 전역에 올해 사상 최대인 1158만 명의 대졸자와 100만 명의 하이구이(海歸·유학 후 귀국자)가 공급과잉 상태인 노동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 누적된 실업자들도 취업 시장에 쏟아진다. 이러니 중국 청년들이 “열심히 공부한 끝에 쿵이지 신세가 됐다”고 한탄하게 된 것이다.


[중국 기성세대, “허세 벗어나 일단 일해라”]


그런데 이러한 쿵이지 현상을 기성세대들은 마뜩찮은 듯이 바라본다. 그러다보니 중국 정부는 쿵이지 문학에 반영된 청년들의 애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또한 쿵이지 문학을 놓고 세대 갈등도 벌어진다.


한마디로 청년들의 눈높이가 문제라고 나무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불만만 품지 말고, 대학을 나왔건 대학원을 나왔건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다그치지만, 청년들은 “사회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책임”이라고 항변하고 또 반박한다.


중국 정부는 ‘안티 쿵이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CC)TV와 공산주의청년단은 지난달 “쿵이지의 장삼에 갇히지 말라”는 제목의 공동 논평을 내고 “젊은 졸업생들이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는 일’을 거부한다”고 비난하면서 “양복을 벗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농촌으로 가라”는 글을 올렸다.


또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청년층이 눈만 높아서 일을 가린다”는 글도 올라왔다. 중국 최대 자동차 유리 업체 푸야오그룹의 차오더왕 회장도 홍콩 봉황TV와의 인터뷰에서 "고학력자라는 허세에서 벗어나 제조업이든 자영업이든 일단 일을 하라"고 다그쳤다.


이러한 훈계에 청년들은 고개를 흔든다. 중국 청년들은 “장삼을 벗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처우가 보장된 직장을 원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요즘 중국 인터넷에선 ‘장삼은 벗었다, 내 일자리는 어디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 관점 하나, 고용의 위기는 당연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게 될 것이고, 이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되면서 중국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체제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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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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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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