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3-04-18 05:19:17
기사수정



몇 번을 망설였다. ‘가면 뭐하나, 사람도 못 알아본다는데.’ 그런데도 마음은 자꾸만 가봐야 한다는 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퇴직 후 1년 반이나 지난 직장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내가 다시 출근을 하게 된 후 좀처럼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아내의 시간보다 내 시간을 맞추기가 더 어려운 것이었지만 여하튼 아내의 직장생활과 맞물려 어지간히 둘 다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하다 보니 남들 그리 쉽게들 잘 가는 단풍구경이나 가까운 곳 나들이조차 둘이 가본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났다.


해서 큰 맘 먹고 시간을 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겨우 시간을 맞췄다.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 말고 일단 집을 나선 후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여보자고 했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밤 아내가 이모님을 찾아뵙는 게 어떠냐고 했다. 둘이 가는 여행인데 목적지만 그곳으로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야 고맙기 그지없지만 얼마 만에 또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낸 시간인데 아내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해도 난 못 이기는 척 그것도 시큰둥하게 그렇게 하자고 했다. 순간 가슴을 누르고 있던 커다란 돌 하나가 스르르 치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모님을 뵈러 가는 길, 내려가겠다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힘들게 왜 차를 가지고 오려느냐고 했다. 이모님을 뵌 후 아내와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었는데 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우등고속버스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났다. 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이모의 둘째아들인 이종동생이 우릴 위해 하루 시간을 빼놓겠다고 했다.


동생의 안내로 이모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갔다. 옛 방직공장 기숙사를 병원으로 전용했다는데 참 잘 해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요양병원이라 해서 불안하던 마음이 슬며시 내려졌다.


이윽고 찾아든 병실, 이모를 보는 게 얼마만인가. 체구는 예전의 반도 안 되게 작아져 있고 온통 하얀 머리의 이모는 세 살짜리 아이 같은 눈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모!” 목소리는 처음부터 잠겨버렸고 내 눈에선 눈물이 둑 터진 저수지인 듯 흘러넘쳤다.


이모! 원현이야!” 눈과 눈이 마주쳤다. 이모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겼을 텐데도 이모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이모의 손을 잡았다. 차갑다. 너무 차갑다. 추운 날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건만 어찌 이리도 손이 차가운가. 다시 이모!” 하고 불러 봐도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하다가 옆의 동생에게로 눈이 간다. 동생이 나 누구요?” 하자 몰라라우하며 고개를 젓는다. 아들도 못 알아보다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이모. 나야. 원현이야. 이모가 업어서 키운 원현이 몰라?”


이년 전만 해도 전화를 하면 신기할 만큼 나는 잘 알아보던 이모였다. 그런데 오늘 이모는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옆의 동생과 눈이 마주치는가싶더니 누구시오한다.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어머니를 보며 동생이 -” 웃어버린다. 창밖의 하늘엔 구름도 한 점 없다.


그런 이모를 뒤로 하고 떠나오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비로소 알 것 같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임도 알게 되었다. 안 본 것만 못 하다는 마음이 아니 든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모를 만나 차가운 손이지만 잡아보았고 온기가 있는 얼굴에 내 얼굴도 대 보고 어머니 대신에 이모를 불러볼 수 있었던 것이 내겐 큰 선물이 되었다. 가물가물 희미해져 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라도 이모를 보았으니 얼마큼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아내의 선물이다. 그럼에도 가슴 한가득 고여 오는 이 슬픔과 안타까움은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또 뵈러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는 방정맞은 생각은 뭔가.


이모의 병실에서 내다보이던 하늘 저편으로 어디서 왔는지 조각구름 하나가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도 없다는 듯 씩씩하고 바쁘게 흘러간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1475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