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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03 12: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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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실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햇볕만 밝다. 헌데 저건 뭘까. 나무와 건물을 연결하는 은빛 가느다란 줄이 햇빛을 받아 빛난다. 가까이 가보니 거미줄이다. 건물과 맞닿아 그물망을 내렸는데 나비 한 마리가 거기에 걸려 꿈틀대고 있다. 어쩌다 걸렸을까. 옭매어 잡혀있는 모습이 내 마음만 같아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간다.


현대는 무수한 얽매임의 삶이란다. 알게 모르게 걸리고 묶인 것들, 그 속에서 나는 또 무엇에 얼마나 얽매어 살고 있을까. 문득 나를 붙잡고 있는 것들로부터 훌훌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막상 나를 붙잡고 있는 것들이 무얼까 생각해 보니 그들을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침, 일어나라고 소리하는 탁상시계의 알람, 핸드폰에서 울려나는 모닝콜, 혹시 그것도 놓칠까봐 10분 후로 맞춰 둔 전화기 알람까지, 그 모든 것이 다 내가 나를 위한답시고 그렇게 해놓은 것들이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밥을 먹으면서 신문의 큰 제목만 훑는가 하면, 소리로만 듣는 T.V의 뉴스, 숟가락 놓기 바쁘게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속도에 신경을 쓰는 출근 풍경도 바로 내 모습이다.


그런데 얼마 전 퇴직 후를 위한 쉬는 연습의 날을 가져 보았다. 어쩌다 하루 쉬는 게 아니라 계속 집에 있게 될 경우를 가정한 하루 살아보기’, ‘이틀간 살아보기였다. 헌데 그게 만만치 않았다. 지금 밀려 있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하고 퇴직 후의 일상처럼 하루를 살아보니 하루 24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바쁘게바쁘게 수 십 여 년 동안 길들여진 일상이었으니 갑자기 여유를 부리며 새로운 생활을 해 본다는 게 분명 대단히 어려울 터였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러면 안 되는데, 물론 닥치면 그에 맞는 할 거리가 생길 수 있겠지만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 리듬이 깨어지게 되면 균형을 잃을 거고 자칫 정체성까지 잃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내 딴엔 연습을 해 두자는 것이었다. 곧 다가올 생활의 변화에 대한 적응 훈련을 이렇게라도 해서 충격을 줄여보자는 것이지만 부담이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또 하나는 자유로움,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로부터의 벗어남이다. 그러나 그 또한 내가 먼저 놓거나 풀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끊는 연습, 버리는 연습, 안 듣고 안 보는 연습, 해서 신문구독부터 끊어 보았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야 어디 신문에서만 보고 듣겠는가마는 안 듣고 안 보면 과연 얼마나 못 견딜 만큼 답답하고 불편할까. 헌데 의외로 불편함보다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그 바쁜 시간에 안 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대충이라도 훑어봐야 했던 신문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지고 거기다 두툼하게 끼워오던 광고지들로부터도 해방이었다. 한 가지 일은 줄였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까지 일게 한다.


그 다음 핸드폰을 안 써보기로 했다. 없으면 불안해지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늘 가지고 다니다 보니 이젠 주머니에 없으면 그냥 불안해진다. 가지고 가도 별로 쓰지 않는데도 막상 그걸 놔두고 가면 귀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걸 집에 두고 나와 보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구속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대부분 내가 나에게 쳐놓은 그물이요 올무였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하나보다. 가진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 바쁜 일상의 틀에서 떠나는 연습, 내가 가진 것도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른다.


언젠가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산을 보며 그림같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내 산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가 누리는 평안함과 내 것을 보며 얻는 느낌은 사뭇 다를 것 같았다.


반백년을 넘은 삶을 살아오며 나는 일이라는 강물 위에 띄워진 작은 배의 존재였다. 헌데 어느 날 강물이 흐름을 멈춘다. 이젠 노를 저어가야 한다. 노가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자연 앞에 맡기고 그의 힘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사람의 길인 것이다.


퇴직을 앞두고 퇴직 후를 대비한 살아보는 연습을 해 봤었다. 그러면서 내가 새롭게 해야 할 일거리도 찾아보았었다. 헌데 하루는 잘 보냈는데 이틀째가 되니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불안했다. 하던 일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오랫동안의 삶에서 옆길로 벗어난 느낌이 들게 했을 것이다. 퇴직을 하면 더 바빠질 수도 있다. 진정한 내 정체성을 위해 살아볼 수도 있다. 나다운 모습으로 보다 멋지고 아름답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법을 찾는 것도 내 숙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퇴직을 하고 10년이 되어간다. 우려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기까지 하면서 연습해 보았던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삶의 연습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연습도 하고 준비도 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보다 안전한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거미줄에 잡힌 나비가 움직이질 않고 있다. 이제는 거미의 먹이일 뿐이다. 나도 여전히 거미가 되어야 하리라. 어떻게 새 삶의 거미줄을 치고 멋지고 아름답고 보람 있는 삶의 먹이감을 붙잡을 것인가보다는 최소한의 내 삶을 위한 투자와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훈련도 필요했던 것이다. 삶은 일회성이요 그렇기에 남은 삶은 더욱 더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결코 섣불리 살 수 없다. 진정한 내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심스럽게 좀 더 차근차근 새로운 변화도 수용해야 한다.


살아보기 연습은 내게 큰 의미였다. 지금의 내 모습도 멋진 삶의 한마당 속 주인공이다. 서녘 일몰은 정말 순간이지 않던가. 내 남은 삶을 위해 무엇을 더 준비하고 서둘러 해야 할 것인지 괜시리 마음이 급해진다. 어느새 살아보기 연습을 해 볼 시간도 없으니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급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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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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