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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03 12: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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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 [사진=Why Times]


전 세계 국기 중 80%는 붉은색이 들어있다. 오늘 날에도 중국인들은 붉은색을 유난스레 좋아한다. 붉은 도장의 인주도 중국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갓난아이를 예뻐하듯 백성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백성을 적자(赤子), 여성의 화려한 치장을 홍장(紅装), 아름다운 미인을 홍안(紅颜), 중책을 맡은 사람을 홍인(紅人), 연예계의 인기 스타를 홍성(紅星)이라 부른다.


향을 피울 때 붉은 향을 피우고, 설날에는 빨간 판에 황금 글씨로 행운을 비는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붉은 봉투 홍빠오(紅包)를 건네고, 사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어린 아이에게 붉은 옷을 즐겨 입힌다. 결혼식장 안쪽은 온통 붉은색 천지이고, 결혼식장 밖에서 귀신을 쫓는다고 터뜨리는 폭죽의 색깔도 붉은 색이다. 중국인들은 이 처럼 붉은색을 강인함, 희망, 부귀, 올바름, 복 등의 좋은 의미로 인식해 왔다. 


부적에 붉은색 글자를 쓰는 것도 붉은색이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양(隂陽)이론에 의하면 귀신의 세계는 음의 세계에 속하고, 현실의 세계는 양의 세계에 있다고 본다. 귀신은 음에 속하므로 밝은 대낮을 가장 싫어하는데, 낮을 밝혀주는 것이 태양이다. 그런데 태양이 바로 양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 같이 귀신은 낮에는 활동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태양의 색인 붉은색을 쓰면 귀신이 제일 무서워 한다는 논리다. 우리 문화에서도 붉은색이 귀신을 물리치는 색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동짓날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있다.


고고학자에 의하면, 1만 8천 년 전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처음 사용한 색깔이 붉은색과 검은색이라 하는데, 그 중 붉은색을 먼저 사용했다고 한다. 북경원인들은 적색의 철광석 가루로 물들인 붉은 돌보석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원시시대에는 태양, 불, 생명(피)이 살아가는 데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낮에 태양이 없으면 활동할 수가 없었고, 불이 없으면 체온을 녹이고 요리를 할 수 없었고, 생명(피)은 오늘날처럼 늘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의 공통점은 붉은색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 중국 고대 주(周)나라 시대에는 빨간색이 행운의 기운이 있어서 나쁜 괴물을 물리쳐 주고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며 운이 좋은 일을 가져다주는 색으로 여겼다. 전쟁터에 나갈 때 붉은 털을 하고 토끼처럼 날쌔게 달린다는 빨간색 말, 즉 적토마(赤兔馬)를 애마로 소중히 다루었으며, 궁전도 온통 빨간색으로 만들었다.


중국인들이 빨간색을 선호하는 또 다른 근거로 한(漢)나라 한고조 유방(劉邦)의 이야기를 들기도 한다. 별로 내세울 것 없이 미천했던 골목대장 출신의 유방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 붉은 황제의 아들인 적제지자(赤帝之子)라 불렀는데, 당시 붉은색은 일정 계급(3품급)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 후부터 중국 왕조에서는 늘 붉은색 의상과 붉은 신을 신었는데, 일반인들도 빨간색을 특별한 색으로 여기고 결혼식장과 신혼 방을 온통 붉은색으로 꾸미는 등 일상생활에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붉은색을 좋아하는 습관은 주(周), 한(漢), 수(隋), 당(唐), 송(宋), 명(明) 등으로 이어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영어의 “Red” 라는 말은 라틴어의 “붉은”을 뜻하는 “Ruber”에서 왔는데, 이는 보석을 의미하는 “Ruby”와 어원이 같다. 한 인류학자에 의하면 인간은 첫 번째로 낮을 뜻하는 하얀 빛을 인식할 수 있었고, 두 번째로는 붉은색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지구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원시 작품이나 동굴 벽화에서 쉽게 빨간색을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이후부터 진화과정을 통해 빨간색의 의미가 새롭게 부여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고대 로마인은 붉은색은 몸에 흐르는 피와 같다고 생각하여 빨간색을 건강미가 돋보이는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이유로 육체적인 강인함을 강조하기 위해 검투사나 군인들 몸에 붉은 황토나 염료를 바르는 습관이 생기게 됐다. 


이런 연장선에서 빨간색은 “승리”의 의미를 상징하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을 축하하는 개선문 행사에서도 빨간색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런 군인을 축하하기 위해 내걸던 빨간 천을 현대식 레드 카펫의 시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군인들도 기념할 일이 있으면 눈에 잘 띄는 빨간색 띠를 두른 로마 전통 의상인 토가(Toga)를 입기도 했고, 왕이나 귀족들의 궁전이나 성전을 지을 때 빨간색이 자주 사용되면서, 이 때부터 빨간색이 권위를 뜻하는 색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중세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톨릭교회에서 붉은색을 권위의 의미에서 새로운 의미를 다시 추가하게 된다. 빨간색은 예수와 순교자들의 피인 “성혈(聖血)”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권위의 상징에 신성함이 추가된 것이다. 


중세 시대 그림에서 예수를 비롯한 성인들이 빨간 옷을 입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르네상스와 성서 역사 이야기를 넘어 새로운 내용들이 작품에 담기기 시작했다. 권위와 신성성 이외에 감상주의적 주의를 끌기 위한 용도로 빨간색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같은 흐름은 유럽에 코치닐(Cochneal)이라는 새로운 염료가 소개되면서 부터다. 스페인 몰락 귀족인 코르테스(Hernandes Cortes)는 스페인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남미의 쿠바로 진출한 후 금을 찾아 아즈텍(Aztec) 문명을 정복하고,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코치닐(Cochneal)을 유럽에 소개하게 된다. 이 염료는 유럽에서 기존에 쓰던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질이 높아서 화가와 의상 제작자들 사이에서 코치닐 염료를 선호하게 되었다.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Rembrandt)는 코치닐을 사용해 특유의 빨간색을 표현했다.


1789년부터 1794년까지 5년에 걸쳐 프랑스 시민 혁명이 일어난다. 이 때 혁명 급진파들이 붉은 깃발을 자유의 깃발이라는 의미와 저항의 상징이면서 혁명의 깃발로 사용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사회주의 움직임과 맞물려서 붉은색이 더욱 사랑을 받게 된다. 붉은색은 각양각색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때문에 이후 붉은색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의 상징색이 되었다. 적화 통일(赤化统一)이라는 말의 뜻은 그래서 사회주의식으로 통일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 오성홍기(五星红旗)의 탄생이다. 오성홍기는 중국인이 오랜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붉은색 바탕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상징하고, 왼쪽 상단의 노란색 별은 황인종을 의미한다. 한 개의 큰 별은 공산당을 나타내고, 작은 별 4개는 노동자(工), 농민(農), 지식계급(士), 애국적 자본가(商)를 상징한다. 1949년 7월에 공모전을 통해 모두 3,012점의 도안이 접수되었고, 그 중에서 바탕색이 모두 붉은색으로 된 38개의 안이 1차로 선정되었다. 


그 중에서 모택동(毛澤東)은 황색 가로 줄에 왼쪽 상단에 황색 별이 있는 도안을 선택하기를 원했지만 최종적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 1차 선정에서 탈락한 상해(上海)의 주민 쩡렌쑹(曾聯松)이 제출했던 도안이 재추천 되고, 그의 도안에 그려진 낫과 망치가 소련 국기를 연상시킬 수 있다고 하여 이를 없애버린 후 1949년 9월 27일 전체 회의에서 오성홍기(五星红旗)로 명명되면서 국기로 최종 선정되었다. 쩡렌쑹(曾聯松)이 공모전에서 최종 선정되어 받은 상금은 총 500위안(元)이었다. 이를 오늘 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0만 위안(元)으로 한화로는 8억 5천만 원에 상당한다.


붉은색은 원시 초기에 밝음과 양(陽)을 의미하면서 점차 의미하는 상징성이 다양하게 진화한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강인함, 건강과 승리, 귀함을 상징하면서 진화되었고,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성혈(聖血)을 상징하는 신성함이 추가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서는 급진파의 시민운동 영향으로 혁명, 저항, 자유의 상징으로 진화되었고, 이후 미술계와 정신분석학계에 의해 숨겨진 감정과 소통의 상징으로 또 다시 진화하게 된다. 예를 들면, 화가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용도로 적극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체계적 색상이론이 탄생하게 된다. 고호의 “밤의 카페”는 색상이론에 대해 실험을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빨간색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초록색을 활용함으로써 심리적인 불안함을 담아내고 있다. 


정신분석 분야에서는 1921년에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로르샤하(Hermann Rorschach)가 색채와 형태 기법을 이용한 심리검사를 개발한다. 일명 잉크반점 검사(Ink-blot test)라고도 하는 이 검사는 잉크를 떨어뜨려 대칭 형태로 접어서 만든 5장의 무채색 카드와 5장의 유채색 카드 등 총 10장의 카드에 대한 반응을 분석하여 정신과적인 심리상태를 평가하는 임상목적의 투사검사로 개발되었으나 이듬해에 로르샤하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프로이트 등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이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계에서는 형태의 대상을 넘어 “색” 그 자체에 집중하는 활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색채 마술사라 불리는 프랑스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빨간색을 애용했는데, 그는 “카드뮴 레드”라는 염료를 활용해 차별화된 빨간색을 새로 선보였다. 색을 통해 감정적 변동을 표현하게 되었고, 색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추상적인 표현주의까지도 연구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빨간색은 특유의 느낌으로 다양한 상징과 감정을 표현하는 용도로 계속 진화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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