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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러시아가 美 WSJ 기자를 간첩혐의로 체포한 이유? - 미국 기자 체포로 또다시 금기 깬 푸틴 - 서방기자의 스파이 혐의 체포, 냉전 이후 처음 - 금기깬 푸틴, 소통 창구 닫고 고립 강화
  • 기사등록 2023-04-02 05: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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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자 체포로 또다시 금기 깬 푸틴]


러시아 수사 당국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를 간첩 혐의로 체포해 파문이 일고 있디. WSJ과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 등의 현지 언론들은 30일(현지 시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이날 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의 미국 국적 에반 게르시코비치(32) 특파원을 간첩 혐의로 러시아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와 관련해 FSB는 “게르시코비치는 미국의 지시에 따라 러시아 군산 복합 기업 중 한 곳의 활동에 대한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며 “미국 정부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게르시코비치의 불법 활동이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의 혐의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이번 사안은 FSB 소관”이라면서도 “우리가 아는 한 그 기자는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밝혔다.


그는 WSJ 모스크바 지국의 업무에 대해선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수행하는 WSJ 직원들의 업무 지속에는 아무 장애물이 없다”며 “허가 받은 기자들은 계속 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자국 내 러시아 매체를 상대로 보복을 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도 텔레그램을 통해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이 저널리즘이 아닌 활동을 은폐하기 위해 외국 특파원 신분, 취재 비자 및 허가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주요 서방인이 현행범으로 적발된 것 역시 처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WSJ 기자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저지른 일은 저널리즘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매체 코메르산트는 “게르시코비치가 모스크바로 이송, FSB 미결수 구금시설인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라고 전했다. 모스크바 법원은 그를 5월 29일까지 두 달 간 미결 구금하라고 판결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잔재라고도 볼 수 있는 레포르토보 교도소는 1900년대부터 정치적 탄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881년 모스크바 동부에 군사 교도소로 처음 설립돼 주로 단기수들이 수감돼왔으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기점으로 옛 소련 비밀경찰 산하의 수용시설로 탈바꿈했다.


대숙청 시대를 담은 '수용소군도'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1974년 레포르토보를 거쳤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집권 당시 반체제 인사 블라디미르 부콥스키와 나탄 샤란스키 역시 이곳에 머문 바 있다.


[체포된 WSJ 기자는?]


2017년부터 러시아를 취재한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러시아 출신으로, WSJ 합류 전 AFP 모스크바 지국에서 활동했으며, 이전에는 영어 뉴스 웹사이트인 더 모스크바 타임스의 기자였다.


최근 들어 그는 러시아 정치 및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로 취재했고, 지난 28일 송고된 그의 마지막 기사는 “러시아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제목으로 “전쟁이 계속되고 서방의 제재가 강해지면서 경제가 저성장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전에는 바그너 그룹 창시자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러시아 기존 엘리트 간 갈등을 보도했다.


체포되기 이전 게르시코비치는 러시아 보안요원들의 미행이나 휴대전화 감시 등을 느꼈고, 누군가 자신을 촬영하고 있다는 점도 감지했다고 WSJ은 전했다.


WSJ은 “냉전 막바지부터 러시아를 취재해온 베테랑 특파원인 모스크바 지국장도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체포 이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는 취재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방기자의 체포, 냉전 이후 처음]


자유유럽방송(RFE) 등에 따르면, 냉전 이후 미국인 기자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건 게르시코비치가 처음이다. AP통신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2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성명을 내고 “회사는 FSB가 제기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우리의 믿음직하고 헌신적인 기자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안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게르시코비치 기자 및 그의 가족과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망명 러시아 언론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트위터에서 이번 사건을 “러시아에서 일하는 모든 외신 특파원에 대한 전면 공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정부, “러 WSJ 기자 억류 규탄”]


러시아 정부에 의한 WSJ 기자의 억류에 대해 미국 정부는 30일 강력하게 규탄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 시민인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러시아에 억류됐다는 불편한(troubling)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어젯밤 백악관과 국무부 관리들은 게르시코비치가 소속된 WSJ와 통화했고, 그의 가족들과도 연락을 취했다”면서 “국무부는 그에 대한 영사 접근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이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와 직접 접촉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잔피에어 대변인은 이어 “러시아 정부가 미국 시민을 표적 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러시아가) 그를 구금한 것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한다”면서 “또한 러시아 정부가 언론인들과 언론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겨냥하고 억압하는 것을 비난한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별도의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미국 시민을 체포했다”면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푸틴은 왜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지금 상황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언론의 기자를 왜 스파이 혐의를 씌워 구금했을까 하는 점이다. 당연히 외교적 파장은 물론이고 국가적 위신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데,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미국 NBC 방송은 31일 러시아 당국이 WSJ 기자를 체포한 배경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이번 사건이 최근 러시아 스파이들이 서방에서 줄줄이 붙잡히면서 러시아 정보당국이 궁지에 몰린 상황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유럽에서는 러시아 스파이들의 정체가 탄로 나 당국에 붙잡히는 일이 잇따랐다.


지난 16일 폴란드 정부는 철도와 공항에서 파괴 공작을 준비해온 혐의를 받는 러시아 간첩단을 일망타진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러시아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는 주요 환승 지점인 폴란드 제슈프 인근 공항 등에 비밀 카메라를 설치하고 감시 활동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뿐 아니다.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정보기관은 가짜 신분을 이용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잠입하려 한 러시아 스파이를 붙잡았는데, 이 스파이가 이전까지 13년 동안이나 가짜 신분으로 살면서 미국에서 정계 동향을 수집해 왔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NBC는 미 정보당국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유럽 당국이 근래 이례적으로 많은 러시아 스파이를 체포하는 데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이 도움을 줬다”면서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러시아 정보당국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직 CIA 고위 관리 출신인 존 사이퍼는 “러시아 정보기관은 압박을 느끼는 상황이고,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면서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러시아를 약화하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해외에서 체포된 러시아인들의 석방을 포함해 서방의 양보를 얻어낼 협상 카드를 찾으려 시도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미국과의 죄수 교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지 질문에 대해 “그런 정보는 없다. 그 주제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와 ‘죄수 교환’ 협상을 통해 지난해 12월 여자 프로농구 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석방시켰다. 하지만 지난 2018년 간첩 혐의로 구금된 미 해병대원 출신 기업 보안 책임자 폴 휠런은 아직 러시아에 구금돼 있다.


러시아에 의한 미국 언론인의 체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 모스크바 특파원 니콜라스 다닐로프는 1986년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가 20일 만에 미국에 구금된 소련 간첩 혐의자와 맞교환됐다.


WSJ도 CIA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냈던 다니엘 호프만의 견해를 인용해 “푸틴이 반서방 히스테리를 부추기고 러시아 내 자유 언론이 반 러시아적 보도를 막기 위한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게르시코비치 체포를 명령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WSJ기자 체포 시점을 보면 죄수교환을 위한 지렛대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 중 한 곳에 소속돼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가장 유명한 서방 기자 중 한 명을 체포한다는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러시아와 서방의 단절을 더욱 강화한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이라며 “게르시코비치 기자를 체포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서방과 소통 창구를 닫음으로써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결별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푸틴은 또 금기를 깼고, 또 완전한 고립의 길로 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야비한 짓을 또 한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 당국의 만행을 정말 용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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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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