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최근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세부 지원안을 놓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정부에 기업 재정 여력과 현금 흐름 등 내부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예민한 정보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는 것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반도체지원법상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 세부 지원안을 공고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 반도체지원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한 527억 달러(약 69조원)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담은 법안이다. 이에 따르면 시설 투자 인센티브 중 제조시설 지원 대상은 미국에서 최첨단·현세대·성숙노드 반도체의 전체 공정이나, 패키징 등 후공정 제조시설의 건축·확장·현대화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이다.
문제는 미 정부가 투자를 원하는 기업에게 예상 현금 흐름, 수익률, 고용 계획, 미래 투자 계획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국가안보 차원에서 미국 내 상업생산시설에서 제조된 안전한 최첨단 로직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도 갖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과 경쟁 중인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민감한 정보를 미국 정부에 넘길 경우 자칫 우려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공정 정보가 핵심"이라며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한 상황에서 인텔, 마이크론 등에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미국이 원하는 내부 정보가 어느 선까지인지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요구할 수 있어 부담스럽다"며 "단순히 미국 정부 내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업체들을 키우는 데 활용될 수도 있어 그 부분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초과 이익 공유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 상무부는 1억5000만 달러(약 1962억원) 이상을 지원받는 기업은 예상했던 사업 이익을 초과할 경우 미국 정부와 초과분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초과 수익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 지 미정이지만 그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면 황당하다"며 "자유시장 경제 개념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 등 우려 국가에 10년간 투자를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감안하면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에서 만든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정부와 가드레일 세부규정과 관련해 한국 기업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인데 경우에 따라 미 보조금 없이 사업을 하거나 중국 공장 철수 같은 극단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국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미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받으려면 재무 상태와 실적 전망치, 영업 기밀인 생산장비 및 원료명 등을 내야 하는 것은 물론 군사용 반도체 제공 협력, 보육 서비스 제공, 인력개발, 지역사회 공헌 등도 필수 조건으로 담았다"며 "이건 보조금 지원정책이 아니라 족쇄 수준의 규제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hytimes.kr/news/view.php?idx=14359-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