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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29 15: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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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고 말하고 ‘혼란’과 ‘퇴행’이라고 듣는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람’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아예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지난 대선에서는 정식 슬로건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선거 전후로 ‘사람이 먼저다’는 명제를 자신의 정치철학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문재인이라는 정치인 개인의 성향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친노와 깨시민, 좌파 진영에서 ‘사람’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만든 홈페이지 이름이자 그의 자살 이후 노무현재단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사람 사는 세상’이 쓰인 것을 봐도 이 사람이라는 어휘는 친노 좌파 친문 깨시민들 사이에서 사전적인 의미보다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뉘앙스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라는 개념은 문재인과 그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어떤 핵심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권여당 세력이 강조하는 ‘사람’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국정에서 어떤 정치철학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의미일까요?


‘사람’은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널리 알려진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에서도 인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람의 본성이 착한지 아니면 악한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사람’을 최고의 국정목표로 내세웁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 즉 현재 대한민국의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집권세력의 철학은 그들의 언행 즉 말과 행동을 보면서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트위터에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의 의미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념보다, 성공보다, 권력보다, 개발보다, 성장보다, 집안보다,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하면서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슬로건이 우리를 이끌고, 시대를 이끌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라고 기대와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글쎄요, 이념이나 성공, 권력, 개발, 성장, 집안, 학력 등이 그렇게 배척해야 할 가치일까요? 어쩐지 매우 얄팍한, 과학적이지도 못하고 근거도 없는, 감상주의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한 이후 친노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에 노무현의 죽음을 적극적 계획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런 행태를 일러 심지어 관 장사를 한다 시체 장사를 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른바 관 장사나 시체 장사가 모두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입니다. 친노좌파 진영의 그런 이미지 정치의 집약이 ‘사람이 먼저다’는 주장 아닌가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설명을 보면 ‘사람’이란 이념, 성공, 권력, 개발, 성장, 집안, 학력 등과 반대되는 가치입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라면 한번 표현을 바꿔보죠. 이념도 없는 정치. 어떻습니까? 말이 됩니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념을 앞세워 부정적인 기능을 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념이라는 개념에 부정적인 인상이 짙은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정치하는 사람에게 이념이 없다는 것은 세계관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세계와 역사를 움직이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 아무 인식도 없는 세력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입니다.


더 살펴봅시다. 성공이 싫다면 이 나라가 실패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야 하나요? 개발이 싫다면 저개발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이거 점점 어이가 없어집니다. 성장이 싫다면 경제가 추락하고 우리나라가 과거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나요? 


학력이 문제다? 배운 자들이 횡포를 저지르는 일도 많지만 그렇다고 무식한 자들이 더 착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무엇보다 배우지 않고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국정을 운영하면 갈수록 복잡해지고 고도화되고 전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 세계의 환경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부정적인 예로 든 것 가운데 권력이나 집안 배경 등도 그것이 악용되는 것이 문제이지 그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저런 모든 긍정적인 가치에 대조적이고 상반되는 가치로서 ‘사람’을 강조하고, 그것이 자신의 체제와 시대를 이끌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문재인의 정치적 가치관은 매우 퇴행적이고 부정적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정치를 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이거나 또는 정치를 하더라도 국회의원 정도로 그쳤다면 그의 사고방식이 매우 부정적이라 해도 국가나 민족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어찌됐건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성공과 발전이 아니라 후퇴와 퇴행을 가치관으로 삼는 대통령이 우리 대한민국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억측이나 단어 몇 개를 꼬투리삼아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4월 총선이 끝난 후 부탄으로 트레킹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부탄을 방문한 후 문재인 대통령은 부탄을 배우자, 부탄처럼 국민행복지수를 만들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탄 국민이 정말 행복하고 부탄은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나라일까요?


부탄에서는 의료 혜택이 무상 제공되지만 영아(嬰兒) 사망률이 26.9%에 이르고 평균수명은 65세 정도입니다. 무상 교육이라지만 부탄 사람들의 문맹률은 40%에 이르고, 1인당 국민소득은 2천달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객관적인 여건에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나라인 부탄을 한국이 배워야 한다? 


부탄은 여행지로서는 나름 매력적입니다. 도시화된 환경, 복잡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선진국 시민들에게 그렇게 개발되지 않은, 원시 상태에 가까운 자연은 본능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 선진국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문명화된 사회를 버리고 부탄처럼 개발되지 않은 곳에 가서 계속 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가령 부탄 국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자유롭게 두 나라 가운데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게 한다면 부탄에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사람이 많을까요 반대로 대한민국에서 부탄으로 가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그런 사회적 실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실험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은 있습니다. 즉, 부탄이나 네팔 청년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부탄이나 네팔에 일하러 가기 위해 그 나라 말을 배우는 청년이 있나요? 저는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부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외국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부탄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객관적인 현실이라기보다 주관적인 것입니다. 잔인한 진실을 말하자면, 마약 중독자들이 약에 취해서 느끼는 행복감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부탄에 인터넷과 핸드폰이 공급되면서 부탄 국민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감이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나라를 찬양하고, 대한민국이 배워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얄팍한 감상주의가 그냥 선거의 득표 전략으로만 쓰이고 만다면 좋겠는데 현실은 문재인과 집권세력의 저런 얄팍한 감상주의가 실제 국정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나 공무원 등 공공부문 일자리 대폭 증원, 탈원전, 비정규직 제로화, 문재인케어 등 경제 사회적인 정책 전반에 걸쳐 ‘사람이 먼저다’는 관점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론적 근거나 현실적 판단 이런 것 다 필요 없고, 그냥 사람이 좋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과연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가 만들어질까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 실패하는 정권도 실패하는 정책도 없을 것입니다.


최저임금 대폭인상도 사람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취지였지만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원래의 정책 목표와는 정반대입니다.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취업자 증가수는 역대 최악의 상태입니다.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가시화된 지난해 연말부터 자영업자들은 고용을 줄여가면서 버텨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버틸 수 있는 업자들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가장 열악하고 어려운 처지의 밑바닥 업자들부터 사업을 포기하며 무너지고 있고 그 속도도 점차 빨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혜택을 보는 것은 대기업 종사자와 공공부문 인력들 그리고 엉뚱하게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최근 코레일과 SR의 통합 문제로 시끄러운 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태도는 친노와 좌파 성향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철도가 민영화될 경우 이용객이 적은 적자노선을 대폭 정리, 오지 주민 등의 철도 이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명분을 대곤 합니다. 


이것도 ‘사람이 먼저’라는 좌파 철학의 발로입니다. 경제성이나 합리성은 따지지 말고 소수라도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입니다. 벽지 주민들의 철도 이용 편의를 위해 경제성을 무시하고 적자 노선을 유지하면 결과적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사람이 먼저라면서 소수의 사람만 앞세우고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뒤로 밀어내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철도는 민영화 논의는 말도 꺼낼 수 없게 되었고 그나마 최소한의 합리성 추구를 위해서 이루어졌던 코레일과 수서고속철 운영사인 SR의 분리도 문재인 정권 들어오면서 결국 뒤집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온갖 명분을 들이대지만 조직 통합의 가장 분명한 결과는 코레일 노동자들의 철밥통이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입니다. 


이게 ‘사람이 먼저’인 겁니까? 결국 문재인 정권 입맛에 맞는 소수의 사람만이 사람 취급받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오히려 사람 취급도 못받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먼저다’는 주장은 ‘우리들만 사람이다’ 또는 ‘누가 사람인지는 우리만 판단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무섭고 끔찍한 철학입니다.


털고 또 털고 지난 4년 동안 수십 수백번 털어댔던 세월호를 또다시 털어서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무지막지한 발상에도 결국 ‘사람이 먼저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습니다. 아무리 뒤져봐도 그동안 세월호 장사하는 사람들이 창작해냈던 공상과학만화 수준의 루머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뇌내망상 희망고문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내겠다는 겁니다. 


그들의 태도를 보면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하겠다는 의지 같습니다. 안되면 될 때까지,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쑤시고 들이파라는 겁니다. 옆에서 지켜보기가 너무 답답해서 차라리 없는 증거라도 만들어 드려서 알아서 분풀이하시라고 해드리고 싶지만 그것도 마땅한 답이 없습니다. 


세월호 루머나 유언비어 종류가 너무 많고 서로 모순되는 것들도 많아서 어느 분들 취향에 맞춰드려야 할지 그것부터가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자, 세월호를 국정원이 침몰시킨 것으로 할까요, 미군 잠수함이 들이받은 것으로 할까요? 해경이 밧줄로 묶어 잡아당겨서 침몰시켰다는 얘기는 또 어떻게 만족시켜드려야 하나요? 박근혜가 미국 대통령에게 지시를 내려서 미군 잠수함 동원하고, 또 국정원을 통해서 유병언을 움직이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스스로 배를 침몰시키게 만들고 또 해경에게는 별도로 세월호에 밧줄 걸어서 넘어뜨린 것으로 할까요?


과학적 근거나 논리 따위는 필요없고 그냥 ‘사람이 먼저’라는 사고방식이 깔려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문재인이 앞세우는 ‘사람’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좌파들의 관념 속에서 멋대로 꾸며낸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가공의 존재를 대상으로 경제나 사회 정책을 수립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문재인이 말하는 ‘사람’은 사실 진짜 현실 속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명분일 뿐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문제를 다룰 경우 그것은 다수 국민들의 이익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과 코드를 맞추는 거대 노조와 공무원 집단 등 상위 10%의 사람들 그리고 광장 정치를 추구하는, 목소리 큰 전문 시위꾼들의 이익을 반영합니다.


문재인 정권을 만들어낸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촛불시위에서도 사실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전교조나 민노총 등이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과오를 반성하고 정책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닌 막연한 이미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실천에 대한 피드백이 없고, 피드백이 없으면 평가와 반성도 불가능합니다. 


이 나라가 계속 이렇게 가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 사회적 무기력과 혼란이 커지고 이런 내적 취약성이 외부의 위협과 결합하게 되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서 돌이키기 어려운, 정말 치명적인 선택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실수를 만회하려면 어마어마한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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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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