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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러 헤르손 철수 후폭풍, 강경파-푸틴친위파 대충돌 - 헤르손 굴욕적 퇴각에 러시아 내부 대충돌 - 러시아군 헤르손 퇴각에 푸틴 판단 작용, 파문 일파만파 -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가 겪은 최대의 지정학적 패배" 지적도
  • 기사등록 2022-11-13 06:31:31
  • 수정 2022-11-13 07: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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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 우크라 남부 최대도시 헤르손 전격 철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우크라이나의 점령지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결국 전격 철수를 단행하면서 러시아 내부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TV로 방영된 회의에서 세르게이 수로비킨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으로부터 “헤르손에 계속 군(軍)물자를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합리적 선택은 드니프로 강을 따라 동쪽에 방어선을 구축해야 러시아군의 희생을 줄이고 전투 태세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를 받고, “병력과 무기의 안전한 도하(渡河) 조치를 취하며 계획대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헤르손은 러시아군이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크름 반도에서 치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전쟁 초기인 3월 2일에 장악한 우크라이나 남부 최대 도시다.


특히 헤르손은 동남부 4개 주(州)와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직접 육로로 연결하는 핵심 고리일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최대 무역항인 오데사를 장악하기 위한 또다른 거점 도시라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이런 중요성 탓에 지난 9월 23일 러시아군 사령관들이 ‘헤르손 철수’ 요청을 했지만, 푸틴이 거절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실 러시아로선 헤르손 주 전체를 잃으면, 크름 반도는 전쟁 전처럼 육지와의 연결 고리가 없어진다. 푸틴은 이 고립을 막기 위해 지난 2018년에 40억 달러를 들여 크름 반도의 동쪽과 러시아를 잇는 다리를 건설했지만 지난 10월 8일 우크라이나 군의 작전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일부 파괴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헤르손은 또한 우크라이나군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탈환해야만 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헤르손에서 크름반도까지는 소련 시절에 건설된 운하가 연결돼, 드니프로 강물을 공급한다. 드니프로 강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주의 주도(州都)인 헤르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강이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름 반도를 점령하자 이 운하를 막았고, 러시아는 지난 2월 침공 이후 이 운하를 재개했다.


그런데 러시아군이 드니프로 강에서 유일하게 강 서쪽에 장악하고 있던 핵심 도시인 헤르손에서 전격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러시아 군부는 물론이고 러시아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는 사실상 강 동쪽으로 진격할 교두보를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흑해 곡물협정 재개, 우크라이나의 흑해함대 드론 공격에 따른 러시아의 대규모 보복 국면에서 이뤄진 헤르손 철수 결정은 푸틴 대통령의 현실적이며 실용적 판단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헤르손 굴욕적 퇴각에 러시아 내부 대충돌]


중요한 것은 헤르손에서의 철수 결정에 푸틴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흑해 곡물협정 재개, 우크라이나의 흑해함대 드론 공격에 따른 러시아의 대규모 보복 국면에서 이뤄진 헤르손 철수 결정은 푸틴 대통령의 현실적이며 실용적 판단이 깔려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 결정은 군부의 결정이지만 미국이 비밀리에 우크라이나에 평화 협상을 촉구하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휴전 협상의 진정성을 국제사회에 확인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푸틴을 분석해 온 러시아 정치컨설팅 회사 폴리티크 설립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헤르손 철수 명령에 관해서는 침묵하면서, 오직 국방부와 총사령관 등 군부를 통해 발표하도록 했다”며 “푸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미치지 않았다. 헤르손에서의 철수는 푸틴이 얼마나 실용적인지 확인시켜 준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분석은 헤르손 철수를 군부의 결정으로 미루면서 최근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정치적 목적을 푸틴 대통령이 달성하려 했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작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헤르손에서 철수하게 되었다는 서방진영의 해석과는 결이 다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헤르손 철군은 러시아 내부에 상상할 수 없는 파문을 던지면서 그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NYT의 보도에 따르면, 영향력 있는 군사 블로거인 유리 코티요노크는 “헤르손 철수 결정은 러시아를 위해 싸우고, 러시아를 위해 죽고, 러시아를 믿고, 러시아 세계의 신념을 공유하는 수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다”고 썼다.


러시아 군사 분석가인 보리스 로진도 텔레그램에 “헤르손에서의 후퇴는 러시아 연방이 결성된 1991년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패배”라면서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겨울 공세 동안 진격이 없다면, 일련의 군사적 좌절이 제재보다 훨씬 더 큰 내부 불만을 축적하게 만들 것”이라고 썼다.


이러한 불만들이 러시아 내부에서 터져 나오자 친 푸틴 논평가들은 대중을 달래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NYT는 “러시아군의 헤르손 퇴각 결정이 푸틴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우크라이나 및 서방의 평가와 달리 국영 언론과 친크렘린 평론자들은 ‘강한 국가만 감당할 수 있는 불가피한 딸꾹질(hiccup)’로 규정하면서 적극적으로 푸틴 옹호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AFP통신도 “러시아 국영 언론들이 헤르손 퇴각을 '후퇴'가 아닌 '기동' 또는 '재배치'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면서 “파문을 축소하는데 급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의 심복들이 “용감하고 현명한 결정”, “책임 있는 자세”라고 추켜세우며 ‘내부 총질’을 단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관영매체들은 이번 철수가 전열재편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안드레이 투르착 러시아 상원 부의장은 19세기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한 문장을 발췌해 “요새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군사작전에서 이기는 것은 어렵다”면서 철수를 두둔했다. 그는 이어 “헤르손 근처에 있는 우리 병사들에게 위험이 컸다”며 “언제라도 보급이 차단되거나 방어를 하기에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몰려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타스통신은 10일(현지 시각),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이 러시아 자유민주당(LDPR) 대표단과 러시아가 임명한 블라디미르 살도 친러 헤르손 행정부 수반의 회담 자리에서 “헤르손에서 군대를 철수한 것은 군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옳은 결정”이라며 “우리는 반드시 헤르손으로 돌아올 것이며 가까운 장래에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푸틴 친위대들이 헤르손에서의 철수 결정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자, 이번에는 러시아내 강경파들이 들고 일어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서 철수가 합리적 판단이라는 러시아 정부의 견해에 대한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서 철수가 합리적 판단이라는 러시아 정부의 견해에 대한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전쟁 전문 기자인 로만 사폰코프는 “이건 전쟁에서 실제로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헤르손 공공기관에서 러시아 국기가 철거되는 모습을 전하며 “영리한 작전일 뿐 철수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끝까지 기대했지만 결과는 있는 그대로”라면서 울분을 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는 다른 기자인 안나 돌가레바는 “헤르손에서 철수하는 데에는 변명이 아예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요한 것은 이번 헤르손에서의 철수가 푸틴에 대한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면서 후유증도 갈수록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러시아 지도부는 전적이 부진할 때마다 매파들의 신랄한 비판을 일부 허용하되 졸전 책임을 푸틴 대통령과 이너서클이 아닌 현장 전투 지휘관들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되풀이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푸틴은 지난 9월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자주, 헤르손주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영원히 러시아 국민이 됐다”고 선포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약속을 한 지 채 두달도 되지 않아 굴욕적 철수를 함으로써 점령지 주민들에게는 물론이고, 러시아 국민들에게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친정부 성향의 러시아 싱크탱크인 정치학연구소의 세르게이 마르코프 소장은 “헤르손 주민들로서는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는 러시아의 약속을 거짓말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코프 소장은 이어 “이번 철수가 러시아가 다른 병합지 주민들도 버릴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 러시아와 점령지의 협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이번 헤르손 철수는 러시아 국영TV로 중계되는 가운데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푸틴 정권의 신뢰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서 한 친(親)정부 러시아 평론가는 텔레그램에 이렇게 정리했다. “중요한 전쟁 수행 결정이 늘 지연되면서,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가 겪은 최대의 지정학적 패배다.”


이렇게 매파들의 비판, 전문가들의 부정적 진단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은 헤르손 철수에 대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과연 러시아 내부의 충돌이 어떻게 번져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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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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