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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16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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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장학금 주고 수능 1% 인재에게 금융 가르쳐 봐야, 국가가 그의 장래에 걸림돌이 되는 판국
–채권 수익률 계산하고, 금융노조와 진입 장벽 보호 속에 지대 수익이나 따먹는 팩맨 역할만 요구
–공공부문 확대로 만드는 일자리는 ‘복지수단’에 불과할 뿐, 절대 경제적 의미의 일자리가 아니다

◊이 글은 2018년 4월 14일 [제3의길]과 정치미래연합, 사회디자인연구소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공동 주최한 [21세기 대한민국 위기와 활로 토론회 :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한다] 연속 토론회 첫번째 순서 ‘청년 일자리와 최저임금 이대로 좋은가’의 패널 토론 발제문입니다.


▲ 현행 법으로 집합투자업이나, 투자일임업은 금융감독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재학 중인 학과의 동갑내기 1년 후배는 참으로 유능한 친구였다. 연극영화과에 다니다가, 금융 공부를 하고 싶어 다시 치른 입시에 성공했다는 것부터 보통내기는 아니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다른 대학에 재학 중인 자신의 친구들과 우리 학과의 학생들을 모아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라 까마득하지만, 당시 그 펀드는 시장 수익률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여 나를 놀라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달 뒤 펀드 운용 회의에 소속돼있던 후배에게 펀드의 근황을 물었더니, 더 이상 투자금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자가 잘 안 되나보다 하고 이야기를 넘기려던 차에 그 후배는 ‘자본시장법’을 이야기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펀드를 설정하는 집합투자업이나, 고객의 돈을 받아 대신 운용해주는 투자일임업은 금융감독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기 위해선 수 억 원의 자본금이 필요한데, 대학생 펀드가 그런 자본금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나.

그 펀드는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로 포트폴리오의 수익률만 공시하고 있다.


규제의 명분에는 수긍이 간다.

아무나 사람들의 돈을 모아 투자할 수 있도록 할 경우, 금융 사기단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꼭 자본금 기준을 높게 설정하여 사기단을 걸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모두에게 투자업을 허용하고, 투자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소비자 보호가 중요해지면 금융감독원이 규모 별 차등 감독에 나서면 된다.


자본시장법은 금융에 대한 열거주의 규제에서 탈피해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포괄주의 규제로의 전환을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여전히 그 실제 내용은 열거주의 규제에 가깝다.


취업난의 핵심은 인문 계열 대학 졸업자들의 일자리 부족에 있고, 그들이 현실적으로 노릴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일자리 중 하나가 금융 부문이다.


그러나 서울의 유명 사립대가 4년 장학금을 주고 수능 1%의 인재를 데려다 금융을 가르쳐 봐야, 국가가 그의 장래에 걸림돌이 되는 판국이다.


결국 모두가 재무 계산기로 채권 수익률이나 계산하고, 증권사와 은행에 들어가 금융노조와 진입장벽의 안락한 보호 속에 지대 수익이나 따먹는 팩맨이 되길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혁신이 없으니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고, 실물의 성장 기회를 찾아 지원한다는 금융의 역할에도 발전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인문 계열 학생들이 노릴 만한 또 다른 고부가가치 일자리는 광고 부문이다.


해마다 대기업 광고 회사의 입사 경쟁률은 수십 대 일을 자랑한다.


하지만 광고 산업에서도 혁신과 발전을 막는 규제는 첩첩산중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옥외 광고에 대한 규제다.


2016년 디지털 광고물의 설치 지역·종류·크기 등을 대폭 완화하는 옥외광고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규제가 많아 현장에선 규제 완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디지털 디스플레이, 빔 프로젝트, 홀로그램, 드론 등 관련 신기술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를 옥외광고에 거의 활용할 수 없어, 혁신 기술들은 해외에서나 실현된다.


하드웨어는 우리 손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위에 입히는 콘텐츠는 모두 해외에서 만들어지는 셈이다.

광고 산업의 일자리가 늘어날 계기 자체가 없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눈물겹다.

그러나 기업 부문에서 투자와 생산이 일어나지 않으면 일자리는 조금도 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한 진실이다.


경제적 의미에서의 일자리는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팔아 소득을 얻고, 그 소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구매하는 일자리다.


정부가 공공부문 확대를 통해 만들겠다는 일자리는 민간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배분받는 ‘복지 수단’에 불과할 뿐, 절대로 경제적 의미의 일자리가 아니다.


게다가 공공부문 일자리에 부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민간 부문의 생산 동기는 떨어진다.

공공부문 일자리로부터 나오는 소비는 그래서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100만 원을 삥 뜯기고 80만 원을 받는데 돈 벌었다고 좋아할 바보가 어디에 있나.

투자와 생산 동기를 늘려 부가가치 창출력을 늘리는 것만이 적정 소득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고정관념이 아닌 만고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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