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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25 22: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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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체 인구는 5,000만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요즈음 사회에서는 100세 시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수명이 길어졌다. 그런데 발표된 통계 숫자를 보면 남녀 평균수명은 82.7세로 아직은 100세 시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남자 평균수명이 79.7세이며, 여자 평균 수명은 85.7세라 여성이 남성보다 5~6년 더 오래 산다.


이 같은 평균수명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몇 살까지 생존하는가를 계산한 것이고, 생활에 지장을 주는 질병이나 부상기간을 평균 수명에서 제외한 실제적인 건강수명은 평균 수명보다 10년 정도 짧아서 여성의 경우 건강수명은 75세 전후가 된다. 질병이나 부상, 정서적 불안, 우울증 등에 시달리면서 10여 년을 고통 수명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뜻한다.


집사람이 금년에 만으로 78세가 되었으니 평균수명으로 보면 앞으로 10년을 더 살 수는 없다고 보이지만 건강 수명으로 보면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섰다. 200510월에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고, 201010월 처방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4년이 지난 2014년부터 가정의 모든 살림에서 손을 떼었으니 벌써 8년이 흘렀다. 처방한 약을 복용한 것이 2010년이니 이미 건강수명을 다 한지 12년이 흘렀다.


치매는 뇌 손상으로 지능, 학습, 언어 등 전반적인 인지기능 저하와 정신기능이 저하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70만 명이 넘는 치매환자가 있고, 불과 2~3년 후부터는 치매인구 100만 명 시대를 맞는다.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로 고생하고 있다는 통계다. 치매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로 대별되는데,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80%, 혈관성 치매가 20% 정도를 차지한다. 치매환자에 대한 대처로 전국적으로 256개 지역에 치매안심센터를 설립하여 관리하고 있다.


집사람도 이 센터에 등록하였고 지문을 등록하고, 보호자 핸드폰과 연결되어 있는 위치추적기와 옷에 부착하는 인식표 등도 수령하여 잘 활용하고 있다. 주간보호센터에 등록하여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귀가하는 생활을 번복하고 있다.


집사람은 진단결과 인지기능, 특히 기억력이 저하되어 있으나, 알츠하이머 증상과는 무관한 단순 혈관성치매이며, 증상이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예단이다. 그러나 단기기억이 매우 저하되어 있으며, 치매와는 무관한 빈뇨증이 심한 편이다. 그렇지만 오래된 시절에 대한 장기기억에는 특별한 장애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다.


기기억 저하로 시공간 능력이 저하돼 날짜 개념이 약하고 지리나 위치파악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시내 위치를 인지하지 못하며 아파트 정문을 벗어나면 혼자 귀가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옷 입기와 소변 통제 등 혼자 할 수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 약간의 도움을 주면 크게 어려운 것은 없어서 다행이다.


서울로 이사한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는데, 오래된 과거를 제외하면 자꾸만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 서울로 이사 오기 1년 전까지 함께 지냈던 친구들에 대해 물어 보면 다 모른다고 편하게 말하지만,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기억의 암흑세계에서 갈피를 못 잡고 어느 한 모퉁이에서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 처량한 느낌에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암흑의 기억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라도 켜 놓고 기억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등불을 밝혀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얼마 전에 주말을 택해서 어린 시절 살았던 친정집과 결혼 후 셋집을 얻어 살았던 신혼집, 그리고 1973년에 처음으로 집을 마련하여 1980년에 광주로 이사를 할 때까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던 청량리와 제기동 일대에 대한 기억 되살리기 여행을 나섰다. 50여 년 전 기억을 살릴까 해서 옛적에 다녔던 골목을 회상하며 걸어 다녔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서 나 역시 옛 기억을 찾는 데 실패했다. 집에 와서도 옛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상당히 섭섭하다고 한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과거 기억도 한 번 회상도 해 볼 겸 해서 지루했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추억 여행을 떠났다. 첫 목적지로는 김천 구미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광주에서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여고 동창생이 살고 있는 아늑한 전원지 거창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김천 구미역까지는 1시간 30여 분만에 도착했고, 동창 부부가 차를 가지고 배웅을 나왔다. 집사람은 동창을 알아보았고 반갑게 동창과 거창 집으로 향했다. 차창 밖 사과나무에는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 여행을 더 아름답게 하였다. 가막산 정상도 올라보고, 기념으로 송이버섯도 사들고 아름다운 추억을 쌓고 다시 광주로 향했다.


서울로 이사 오기 1년 전까지도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책을 하던 정든 저수지를 끼고 있는 아파트 앞에서 1년 전에 살던 집이라고 말해 줬는데도 전혀 모르겠다고 한다. 밤이어서 지리적 파악이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기억 상실이라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늘 함께 했던 이웃 선배 부부와 함께 동네 자주 다니던 단골 식당에 가니 선배 부부도 식당도 모두 잘 기억하였다.


기억의 흔적을 되살릴 수 있을까 하면서 일주일 동안 피곤한 여행을 강행하였다. 한 끼도 빠짐없이 하루 세 끼 모두 집사람 친구들과 만나는 일정이었다. 아침 식사 때마다 나의 친구 부부가 매일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와서 화순에 자리하고 있는 부페 식당까지 함께 동행해 주어서 감사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 친구 부인은 날씨가 춥다면서 두툼한 코트 옷까지 준비해 주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다시 한 번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더더욱 감사한 마음은 집사람의 옛 친구들 모임에 갔더니 날씨가 추워졌다면서 백화점으로 가서 쉐타와 외투까지도 새로 사서 입혀주고 얼굴에 화장도 화사하게 꾸며 주었다. 입은 옷보다 친구들의 따듯한 우정을 입게 되는 또 다른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는 계기기 되었다.


옛 친구들에 대한 장기 기억력과 현실적 대화능력은 80% 이상으로 비교적 정상적이었지만 지리, 공간, 시간에 대한 개념, 특히 대부분 단기 기억에 있어서는 여전히 20%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거에서 헤매고 있었다. 장기 기억의 단서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여행은 짐작한 바와 같이 현실적인 대화, 사람에 대한 장기기억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일상 단기기억, 시간과 위치, 지리에 대한 기억력은 크게 상실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여행이었다.


이번 기억 찾기 여행에 흔쾌하게 시간을 내주어서 기억의 단서들을 되찾으려는 집사람의 노력과 반갑게 함께 해준 친구 분들, 그리고 나에게 아낌없는 편의를 제공한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비록 기억 되살리기 단서는 찾지 못하였지만 변함없는 우정과 따듯한 정감을 느끼게 했던 여행이었다. 상경하는 길에 막둥이 학교와 연구실을 둘러보고 일주일간의 긴 여행을 마무리 했다.


지금은 그런 여행을 한 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변함없이 오전에 주간보호센터에 갔다 오후에 귀가한다. 집에 귀가해도 목걸이에 걸어준 원터치 열쇠로 문을 열지도 못해 열어주어야 한다. 그런지 오래 되었다. 아침에는 과일, 우유, 떡, 계란 프라이를 먹고, 점심은 센터에서 해결하고 온다.


저녁 한 끼는 함께 밥을 먹는다. 국을 좋아해 메뉴를 바꿔가며 준비해 주면 아직 식사량은 괜찮은 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식사 후에 양치질과 세수하기를 싫어하고, 매 시간 화장실에 가도록 해야 하고, 시간에 맞춰서 약을 먹여야 한다. 이제는 여행도 할 수 없고 옷 입고 세수하고 화장실에 가고 약 먹고 센터에 가는 일을 모두 옆에서 도와야 하지만,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힘든 일을 저지르고 물건을 감추거나 혼자서 외출하거나 아무데나 실례를 하지도 않는, 아주 조용하고 마음씨 착한 예쁜 치매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정말로 다행스럽다. 그러기에 나도 또한 열심히 성의를 다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는 생활에 아무런 불편 없이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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