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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필리핀 대선 마르코스 당선, 위기의 미국 포위망 - 필리핀 대선, 독재자의 후예 마르코스의 당선 - 마르코스, 탈미친중 아닌 교묘한 줄타기 외교 예상 - 필리핀내 반중정서가 외교노선에 영향 끼칠수도
  • 기사등록 2022-05-10 15:00:15
  • 수정 2022-05-11 0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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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대선, 독재자의 후예 마르코스의 당선]


9일 치러진 필리핀의 대통령 선거에서 36년 전인 1986년 반정부 시위로 권좌에서 쫓겨난 마르코스-이멜다 마르코스 부부의 장남 마르코스 주니어(64·봉봉) 전 상원의원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현지 ABS-CBN 방송은 10일 현재 개표율 95.8% 기준으로, 전체 6700만명 유권자 가운데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이 약 3048만표를 얻어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약 1452만표)을 두 배 이상 앞선 것으로 비공식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유명 복싱 챔피언 출신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매니 파퀴아오 후보는 350만표 안팎의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날 현지 방송이 집계한 숫자는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부분적으로 취합한 비공식 집계다. 공식 집계는 좀 더 걸려야 나올 예정이며 이달 말 의회의 인증을 거쳐서 확정된다. 7641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는 2016년 대선 당시 선거 이후 3주가 지나서야 공식 결과가 나왔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당선될 경우 오는 6월 30일에 두테르테의 뒤를 이어 6년 단임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마르코스 주니어(봉봉)는 지난 1965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을 장기 통치한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시민들이 일으킨 ‘피플 파워’ 물결에 굴복해 하야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고, 3년 후 사망했다.


아버지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해 기업, 언론 등을 장악했으며, 군과 경찰은 수천명의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버지 마르코스의 부패는 심각했다. 그와 그의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는 약 100억 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바른정부위원회(PCGG)가 환수한 것은 34억 달러(4조3435억원)에 불과했다. 아직도 여전히 환수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대통령 당선 배경]


그럼에도 마르코스 주니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우선 젊은 세대의 전적인 지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의 젊은 세대는 아버지 마르코스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무관심한 반면 마르코스 주니어의 젊은 세대 친화적 선거운동 방식이 큰 인기를 끌면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마르코스는 특히 아버지와의 차별화를 통해 과거 아버지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또한 아버지 시대의 부패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특히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마르코스 일가의 범죄가 정적에 의해 부풀려진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과거 흑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층 표심을 겨냥한 것들이다.


여기에 필리핀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 오히려 아버지 마르코스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선택적 왜곡으로 인한 기억도 문제였다.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은 아버지 마르코스가 집권했을 시기 부채 급증 등의 부작용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 병원, 도로 등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가 실시된 진보와 평화, 번영의 시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횡령 등으로 부를 축적해온 이멜다는 올해 92세임에도 가는 곳마다 지갑을 열어 돈을 건네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명망가 집안을 유독 선호하는 필리핀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도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은 7600개 섬으로 이뤄져 있으며, 사용하는 언어도 80개가 넘는다. 그렇다보니 필리핀에서의 정치는 늘 소수 족벌 엘리트 정치가문들의 전유물이었다.


지금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통치 시절 땅을 얻어 부를 축적한 400여 개의 크고 작은 가문이 족벌로서 필리핀의 크고 작은 섬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선거때만 되면 이른바 ‘3G(Guns, Goons, Gold; 총, 깡패, 황금)’가 동원되어 선거의 판도를 뒤흔들기도 한더.


그러다보니 민주주의적 지배 형태보다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훨씬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민주화운동의 시도는 있었지만 그 민주화에 대한 성과도 빛이 바래지면서 다시 스트롱맨에 의한 권위주의로 필리핀이 흘러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외신은 “필리핀은 포퓰리스트로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린 두테르테의 철권통치에 이어 권위주의 회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부통령 선거는 마르코스와 러닝 메이트를 이룬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 사라(43) 다바오 시장이 3066만9569표를 받아 승리했다.


[주목받는 이멜다 마르코스]


마르코스 주니어(봉봉)의 대통령 당선으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바로 봉봉의 어머니이자 독재자의 아내였던 이멜다다. 1986년 민주화 운동으로 사실상 남편과 함께 미국 하와이로 쫓겨나다시피 한 이멜다는 남편 마르코스의 통치 기간 동안에 역사에 길이 남을 사치를 부려 이름을 알렸다. 이멜다는 계엄령 선포기간 동안 복지부 장관과 마닐라 시장도 역임했는데 이때 필리핀 국가재정을 횡령해 사치를 부렸다.


그의 전기를 담은 영화 ‘이멜다’에는 8년 동안 매일 구두를 갈아 신었으며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는 내용도 나온다.


실제로 마르코스 부부가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이들이 살던 대통령궁 지하에 있는 커다란 방에는 최소 1220켤레의 구두와 세계 최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핸드백, 장신구들이 발견되어 세인들을 경악시킨 바 있다.


심지어 이멜다가 지냈던 궁의 바닥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천장은 수정 샹들리에로 장식돼 있었고 욕실에는 100% 황금으로 꾸며진 세면대가 발견되기도 해 이목을 끌었었다.


그러나 필리핀 대법원은 1991년 이멜다를 사면했고 다시 필리핀에 귀국해 정치적 기반을 쌓아 왔다. 그러다가 지난 1992년에는 직접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234만표를 득표해 건재함을 과시했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2010년부터 다시 하원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마르코스 당선자에 대한 우려]


어머니 이멜다의 존재는 마르코스 봉봉에게도 상당한 부담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대선도 모친인 이멜다의 권유로 출마했다고 실토할 정도로 어머니 이멜다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거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코스가 취임하면 권력욕의 화신인 이멜다가 아흔살을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국정 주요 현안과 관련해 아들에게 훈수를 두려고 할 가능성이 많다고 다수의 정치 애널리스트들은 내다보고 있다.


남편 마르코스 시절을 추억하는 이멜다가 당연히 아들 마로코스를 통해 과거 남편이 대통령직을 수행했을 때의 영화를 다시 누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강한 권력에 대한 의지와 애착으로 봉봉 당선인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변수는 봉봉의 아내 리자(62)다. 퍼스트 레이디로서 리자는 이멜다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어서 이러한 노선이 과연 이멜다와 어떤 충돌을 빚게 될지도 주목거리다.


[위기의 미국, 필리핀의 친중노선]


문제는 봉봉의 외교 정책이다. CNN과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봉봉이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중 행보를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필리핀이 친중국 정책을 펼칠 경우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중국 해상 포위망’에 구멍이 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CNN은 그러면서도 “봉봉이 집권해도 필리핀에서 반중 정서가 커진 만큼 친중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분석은 현재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는 철저한 친중 행보를 보였지만 중국의 배신으로 인해 나중에는 친중행보에서 발을 빼면서 다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분명한 것은 마르코스 당선인이 근본적으로 미국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에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 및 러시아와 더 긴밀한 관계를 모색하는 것에 대해 선견지명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행스런 것은 그러면서도 미국을 완전히 제외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중간에 교묘한 줄타기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에서는 두테르테 현 대통령보다 마르코스 당선인과 외교관계를 구축해 가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르코스 당선인아 두테르테 대통령보다 실용적이고 보안과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의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필리핀이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봉봉 마르코스가 경제 회복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특히 국제적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등지는 정책을 구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변수는 있다. 봉봉 마르코스는 대선 기간 동안 사회기반시설의 대대적 확충을 공약했는데 이러한 공약 수행에 중국의 자본들이 거대 유입된다면 봉봉 마르코스도 다시 탈미친중(脫美親中) 정책을 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두테르테도 집권 초반 봉봉 마르코스가 구상하는 중국 자본 유입을 통해 사회기반 시설 확충을 노렸으나 중국의 부도수표로 실패한 바 있어서 봉봉의 선택이 주목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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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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