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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독일의 뒤늦은 후회 - 독일 정치권 "푸틴 잘못 봤다" 후회 - 독일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량, 러 국방비의 57% - 독일의 방향전환, 러시아는 고립의 길로 갈 수밖에...
  • 기사등록 2022-04-21 14:08:36
  • 수정 2022-04-21 15: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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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권 "푸틴 잘못 봤다" 후회]


“우리가 푸틴을 너무 몰랐다!”


독일 정치권에서 최근 쏟아져 나오는 탄식이다. 영국의 BBC 방송이 18일(현지시간) “독일 정치권에서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 영국의 BBC 방송이 18일(현지시간) “독일 정치권에서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BBC는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에도 독일은 대러 제재에 발 벗고 나서지는 않는 듯한 행보를 고수했는데, 점점 이런 언행 불일치가 잘못된 것이라는 자아비판이 거세진다”고 했다.


BBC는 이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연방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지 방송에서 그간 러시아와 교역하고자 러시아산 에너지를 썼던 것이 실책이었다고 실토했다”고 했다.


특히 그동안 독일정부가 취해왔던 친(親)러시아, 친 푸틴 정책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대통령이 속한 연립여당인 사회민주당(SPD)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닐스 슈미트 SPD 외교정책 대변인은 “우리가 30년에 걸쳐 러시아와 대화, 협력을 강조했다는 걸 씁쓸한 심정으로 시인한다”면서 “이제 우리는 그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로운 유럽 안보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라고 BBC에 말했다.


슈미트 대변인은 이어 “당분간은 러시아를 상대로 협력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대신 억제, 저지가 늘어날 것이며, 필요하다면 러시아에 맞선 방위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그러면서 “러시아에 대한 이러한 분위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인 7주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면서 “러시아군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도시의 참상이 드러나고, 독일에 여성과 어린이 위주의 피란민 수십만명이 도착하면서 독일에서는 점점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을 피해 피란길에 올랐던 독일인의 모습으로 투영되면서 독일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푸틴을 사랑했던 독일의 원죄]


미국의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푸틴의 유용한 독일 바보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메르켈 전 총리를 포함해 ’오스트폴리틱(동방 정책)’이나 ‘교류를 통한 변화’ 같은 1970년대 데탕트 정책의 향수에 눈먼 그 세대의 모든 독일 정치인이 지금의 독일에 딜레마를 안겨다 주었다”고 꼬집었다.


다시말해 “구소련 공산권과의 대화·교류가 냉전 종식으로 이어졌다는 일종의 ‘전설’에 심취한 독일 엘리트들의 노스탤지어가 대러 정책을 그르치게 만들었다”는 것이 폴리티코의 분석이었다.


다시 말해 “독일과 러시아가 가스관으로 묶이면서 상호 의존도를 높이면 평화가 올 수 있다는 믿음, 대화와 교류로 적대적 상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메르켈을 포함한 독일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사실 지난해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연결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당시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는 독일과 이미 경제적 유대로 유럽국가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다”면서 “러시아로 인해 평화가 깨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독일이 이를 보장한다”고 설득해 바이든 대통령이 결국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연결에 동의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메르켈 전 총리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 무산시키기도 했다. 바로 러시아 푸틴의 강력한 반대에 그들이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의 반대 명분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런 메르켈과 사르코지를 향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3일 “이날은 나토 정상회의가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로 우크라이나에 퇴짜 놓은 지 14년째 되는 날”이라며 독일에 돌직구를 날리면서 “14년간 계속된 대러 양보 정책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메르켈과 사르코지를 민간인 대학살이 확인된 부차로 초청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실 독일은 그동안 러시아 푸틴의 속내를 깨닫고 친러시아 정책의 재검토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러 번 있었다. 지난 2008년에는 푸틴이 조지아를 침공했고, 2015년에는 우크라이나의 크름반도를 합병했으며, 때때로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나 화학무기 ‘노비촉’ 같은 것으로 정적(政敵) 제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은 러시아와 독일의 경제적 유대를 깊게 만든다는 노르트스트림2에 줄곧 반대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푸틴에 깊숙하게 빠진 독일 당국은 이들의 반대 의견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슈뢰더에 이어 메르켈까지 16년간이나 친 러시아, 친 푸틴 정책을 고수해 왔던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 탈원전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그리고 러시아산 가스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된 것이다. 또 이를 신속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무려 1225km에 이르는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를 완공하기에 이른 것이다.


[독일이 푸틴을 사랑한 결과는?]


그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독일이 올해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수입대금으로 거의 320억유로(약 43조원)를 지급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19일(현지시간)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추산한 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독일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대금은 전년 114억유로(약 15조3천억원)에서 올해 143억유로(약 19조1천억원)로 늘어난다.


여기에 독일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대금은 전년 88억유로(약 11조8천억원)에서 올해 176억유로(약 24조원)로 2배 가까이 확대된다.‘


이렇게 석유와 가스를 합치게 되면 독일이 러시아에 석유와 가스 수입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금액은 320억 유로로 늘어난다. 이렇게 독일이 러시아에 지급하는 금액은 가스의 경우 세계 1위고, 석유는 세계 2위다.


문제는 이 금액이 2020년을 기준했을 때 러시아 국방예산의 57%에 달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주 BBC 인터뷰에서 러시아 에너지 구매 대금이 ’피 묻은 돈‘이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도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는 데 독일이 걸림돌이 되어왔다”며 “베를린의 정치인들은 이제 독일 기업 총수나 억만장자들이 아니라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여성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독일이 “당장 대안이 없다”며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전면적 금수 조치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취해 온 것을 꼬집은 것이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명분으로 올 들어 푸틴 대통령과 10차례 이상 통화와 대면 협의를 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당신(마크롱 대통령)이 지금까지 푸틴과 협상해 이뤄 낸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며 “히틀러와 스탈린, 폴포트 같은 독재자들과도 협상할 것인가”라면서 쓴소리를 했다.


[독일 대통령, “우리가 잘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판단과 대러 정책에 오류와 실책이 있었음을 자인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메르켈 독일 총리 집권 당시 외무장관을, 슈뢰더 독일 총리 집권 당시 총리실에서 거의 15년간 독일 대러 정책을 책임진 바 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ZDF방송에 출연해 “푸틴 대통령 치하에서는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유럽 내에서 미래가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그러면서 “지난 20년간 러시아를 유럽 안보 체계 안에 편입시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길에 동행토록 하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전쟁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한탄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어 “독일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가스관인 노르드스트림-2의 강행을 고집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라며 “결과적으로 수십억 유로에 이르는 사업이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동유럽 협력 국가에 신용과 믿음을 많이 잃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에도 대통령궁에서 진행한 기자들과 대화에서 “나는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제국주의적 망상을 위해 조국의 완전한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 몰락을 감수하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난감한 독일, 탈 러시아 강조하지만...]


독일은 지금 그야말로 난감하다. 머리로는 탈 러시아에 적극 동조하면서도 현실이 뒤따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방언론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강경책을 예고했던 독일이 실제 행동은 미적거리고 있다”면서 “그동안 러시아 제재에 서방 동맹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았던 독일이 러시아 침공으로 급선회하는 듯했으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독일 정부 당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러시아군에 의한 대량 학살 의혹 등이 제기되었음에도 독일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즉각적인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금수 조치를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쾨르버 재단의 정치 과학자인 리아나 픽스는 “이것은 독일이 자초한 딜레마”라고 말했다.


이렇게 독일을 향한 비판이 서방세계에서 강해지자 독일은 더디고 조심스럽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부터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6일 연방하원 연설에서 “이런 전쟁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와 이를 명령한 이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EU의 새로운 제재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는 더 높아질 것이며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지속적 목표”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숄츠 총리는 “(독일의 '약점'인) 러시아에 대한 석유와 가스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그동안 러시아 에너지 제재 동참을 주저해온 독일의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실제로 독일은 최근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와 에너지 협정을 체결하는 등 러시아 의존을 줄이려는 노력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독일의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10일 숄츠 총리와 통화한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일의 입장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고립으로 가는 러시아]


독일의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러시아의 국가장기전략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유럽에서 독일이라는 지렛대를 잃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자 더 이상 유럽과 한 배를 탈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앞날은 결국 고립밖에 없다. 미국과 나토는 이미 러시아의 완전한 외교적 고립을 목표로 중장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가 17일(현지 시각) 보도한 내용이 그렇다.


이러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에 러시아가 과연 푸틴이라는 이름을 계속 내세우면서 국가 운영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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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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