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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미국이 러시아를 전쟁범죄로 몰아붙이는 이유? - 바이든, 러시아 군 만행을 제노사이드로 규정 - 정작 미 국무부는 제노사이드 규정 아직 안해 - 美, 러시아군 행위 제노사이드 규정하게 되면 참전해야
  • 기사등록 2022-04-18 23:09:59
  • 수정 2022-04-19 08: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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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러의 민간인 학살은 제노사이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특정 국민, 민족, 인종, 종교집단 등을 절멸할 목적으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전쟁 범죄’라는 말은 사용해 왔으나 ‘제노사이드’로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특정 국민, 민족, 인종, 종교집단 등을 절멸할 목적으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했다.[사진=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푸틴이 우크라이나인의 사상을 말살하려는 시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기에 나는 이를 제노사이드로 부른다”며 “그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행위가 국제 기준상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는 법조계가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나에게는 확실하게 (제노사이드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편,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도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이 제기된 우크라이나 부차를 방문한 후 “범죄 현장”이라고 지목했다. 칸 검사장은 이어 “우리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면서 “우리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군에 의한 제노사이드를 수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지방 검사 세르히 루제츠키는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자에게 “많은 유럽 사람이 제노사이드를 부정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그간 살인사건 수사를 담당해왔지만 이렇게 많은 시신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폭발이나 포격으로 죽은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총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총격이 이뤄진 곳은 머리·전신 등 시신별로 다르긴 해도 대부분 팔과 다리가 신체 뒤쪽에서 묶여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잔학한 전쟁범죄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제노사이드 규정'의 의미]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행위를 직격하면서 표현한 제노사이드(Genocide)란 무슨 의미일까?


우선 국제법상 제노사이드란 1948년 제정돼 1951년 발효된 '제노사이드 범죄 예방 협약'에 처음으로 법적으로 규정된 것으로 “국가나 민족, 인종, 종교 집단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할 의도를 가진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더불어 제노사이드 행위에는 살인,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 출산을 막기 위한 조치, 아이들을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강제로 옮기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규정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제노사이드에 대한 사건 기소는 쉽지가 않다. 제노사이드 협약이 국가·민족·인종·종교 등 4개 집단을 대상으로 한 파괴 행위에 제노사이드를 적용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이런 행위가 언제부터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노사이드 기소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행위의 '의도'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럿거스대 제노사이드와 인권 연구센터 알렉산더 힌튼 소장은 “모든 것은 정말로 '의도'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며 “집단학살 정권이나 지도자들은 재판 서류를 남기지 않는 경향이 있어 기소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의도가 무엇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며 “수사관들은 명확한 의도가 드러난 문서를 찾으려 하겠지만 결국 의도는 상황과 폭력 성향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제노사이드나 전쟁범죄, 또는 반인륜범죄 혐의로 누군가를 기소한다고 해도 국제형사재판소(ICC) 같은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려면 피고인이 구속돼야만 한다는 것도 제노사이드 처벌이 어려운 이유다.


국제 법정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한 첫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은 제노사이드 협약이 채택된 뒤 50년이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 르완다 타바 마을의 후투족 출신 시장이 1994년 투치족 등 수십만 명이 집단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제노사이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에서 과연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우크라이나의 부차시에서 일어난 러시아군에 의한 잔학한 행위들은 충분히 제노사이드로 규정될 가능성은 있다. 그래서 러시아군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는 민간인을 공격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면서 부차에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반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국제 법률전문가들은 “부차나 보로단카, 마리우폴 등에서 전쟁범죄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하지만 제노사이드가 발생했는지 판단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긍정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인들을 탈 나치화 해야 한다거나 우크라이나라는 국가 실체를 부인하는 말들을 했다는 점이다. 그 발언들이 특정 집단 파괴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제노사이드 전문가인 유진 핀켈 교수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제노사이드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푸틴 대통령이 말했듯이 러시아가 국가 집단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도'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의 발언이 처음에는 '탈 나치화'에 초점을 뒀으나 이후 '탈 우크라이나화'로 바뀌었다며 이를 우크라이나 제거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미 국무부는 아직 제노사이드 표현 명시 안해]


이렇게 상당수의 전문가들도 러시아군의 만행에 대해 ‘제노사이드’ 가능성을 말하고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도 제노사이드라고 발언을 했지만 정작 미 국무부는 “러시아의 행위가 제노사이드에 대한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국제 변호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힐 뿐 공식적으로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지 않고 있다.


사실 미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게 되면 엄청난 파장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1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지만 많은 나라 정상들은 아직 이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형제 같은 사이이므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가장 잔혹한 전쟁을 일으켰고, 러시아군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인됐으며 이제 책임자를 찾아 처벌해야 한다”면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미친 짓이며, 믿을 수 없이 잔인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군 만행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게 되면?]


그렇다면 마크롱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나라가 러시아군의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다시말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했지만 정작 미 국무부는 공식 규정을 피하고 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아직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특히 마크롱은 바이든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발언에 대해 ‘구두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라고 비판까지 했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정치적 요인’ 때문이다. 미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러시아군의 만행에 대해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게 되면 그 다음 곧바로 군사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유엔협약은 제노사이드라고 판단될 경우 국제사회의 개입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나 미군이 당연히 참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미 국무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발언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삼가고 있는 것이다. 미 국무부가 러시아의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려면 최소 나토 동맹국들과 조율을 해야 하고, 러시아와 대항하여 전쟁을 직접적으로 행사할 주요 우방국들과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취하고 사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옹호했다.


그러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쓰는 데 주의해야 한다’라며 반발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한 라디오에 출연해 ‘끔찍한 전쟁’, ‘전쟁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제노사이드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왜 성급하다고 할 정도로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아마도 러시아의 폭압적 행위에 대해 제동을 걸 필요가 있어서 그러한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말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 범죄 자체가 앞으로 제노사이드로 규정될 수도 있으니 민간인 살상 등의 행위를 자제하라는 경고성 차원에서 그러한 발언을 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와 관련해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정무 담당 차관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결국 제노사이드라고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측한다”면서도 “그렇게 규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발언의 또다른 의미로는 러시아의 잔학성을 부각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국제적 동조를 끌어내기 위함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세 번째 의도로 결국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전쟁범죄자로 국제적 심판대에 세우게 될 것임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더 이상 전쟁범죄 행위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군에 의한 행동 자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게 되면 이 전쟁에 참여한 군부의 주요 지휘관들도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서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군 지휘부의 행동 억제 효과도 노리는 것이고, 더불어 푸틴의 지위를 흔들어 러시아내부에서의 혼란을 유도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가 화학무기 또는 핵무기 사용한다면...]


물론 러시아군의 행위에 대해 제노사이드로 규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금지된 화학무기 사용은 최악의 비인도적 군사행동의 하나로 실제로 확인되면 서방이 설정한 '레드라인'(한계선)을 넘게 된다는 점에서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될 경우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병력이 직접 전쟁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우크라이나측의 주장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 마리우폴에 대해 국제적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확인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지에서 확보한 샘플을 다른 국가에서 조사해야 하지만 이러한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으로 점점 더 흘러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푸틴이 자신이 뜻한 바대로 전장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시 한시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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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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