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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섭일 칼럼] 우크라이나, 유럽외교 3차대전 악몽해법성공할까 - 15만 러시아 정예부대로 우크라이나 동북남 완전포위 푸틴 - 바이든 마크롱 숄츠, NATO동방진출 불가 푸틴의 마지노선 - 푸틴의 전쟁불원 일부병력 철수, 믿을 수 없는 서방정상들
  • 기사등록 2022-02-17 22:35:57
  • 수정 2022-02-18 15: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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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위기 관련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러시아 푸틴대통령 [사진=러시아 대통령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예군대가 우크라이나의 동북남 3면의 국경을 포위하자 1990년 10월 독일통일 후 평화와 번영의 단꿈에 잠겼던 유럽의 정상들이 모스크바에 불티나게 전화를 걸며 군사행동 억제를 위한 정상외교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2월16일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자로 발표하면서 유럽은 1940년 나치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을 연상하고 3차 세계대전의 악몽으로 긴장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숄츠 독일 총리가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외교적 해결발언을 듣고도 계속 비상상태에 진입했다.


마크롱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숄츠는 NATO의 동방진출금지를 약속했다. 이날 푸틴이 일부군대를 원대 복귀했으나, 바이든-마크롱 정회회담에서 모스크바의 철수확인까지 대비태세를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푸틴 ‘전쟁? 당연히 원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는 서방진영]


아무튼 유럽은 일단 한숨을 돌렸으나, 언제 푸틴이 진격명령을 내릴 지 몰라 유럽대륙의 긴장상태는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공격일로 예정된 16일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외교적 대화국면에 들어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모스크바의 친 크렘린신문 브그리아드(Vzgliad)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미국과 위성국들의 고위당국자들이 러시아군 15만 명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하고 있다. 아마도 내일(16일), 아니면 내주에, 또는 내주 아니면 월말에 침공할 것이다. 황당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유럽 언론들이 작년 11월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보했고, 금년 초부터 러시아군 침공카드를 발행하여 침공설에 불을 당겼다. 15만여 명이라는 수치가 흥미롭다. 서방언론들은 철도상의 군사장비들과 길에 행진하는 군대를 보기만 해도 모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은 15일 러시아국영방송이 중계한 라브로프 외상이 푸틴에게 보고한 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라브로프는 서방과의 협상에 대해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푸틴은 “좋다”고 답했다고 한다.


유럽의 전쟁위기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은 우크라이나의 현법에 명시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거부로 애당초 힘든 외교적 사안이다. 30여년 전 동서독 통일시에도 NATO의 동독에 동진(東進)은 막판에 최후의 걸림돌로 작용했었다.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푸틴 동진 용납불가 당장 해결해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은 통일 독일이 중립으로 남기를 원했었다. 즉 통일독일의 NATO 가입불허 조건으로 통독을 수용한다는 것이 소련의 마지노선이었다.


1990년 7월 콜 당시 서독총리는 고르비의 고향에서 3일간 밤낮담판 끝에 묵인을 받아 통일했던 것이다. 그 때 40만 동독 주둔 소련군의 귀국 경비와 막사 건설비등 막대한 부담을 안는 대신 통일독일의 NATO 가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영토의 일부였다가 독립국이 된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NATO 가입에 문제가 없고 그래서 헌법에도 명시를 했던 것이다. 미 국무부가 라브로프 외상의 푸틴 보고에서 긴장완화에 대한 문제점을 간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월 16일 푸틴-독일 숄츠총리의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외교해법에 일단 합의한 점이 큰 성과이다. 그리고 이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군 일부를 철수해 성의를 표시했다.


푸틴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숄츠 총리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일부 철군한 것은 좋은 신호“라고 밝혀 외교적 해법에 동의했다. 푸틴도 ”전쟁? 당연히 원하지 않는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러나 푸틴은 ”서방의 태도에 따라 군대 철수를 계속할는지 여부를 정할 것이다“고 꼬리를 달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문제는 ”지금 당장 외교협상을 통해 결론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군사 행동의 이유가 이 문제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숄츠 총리는 “NATO의 확장 문제는 계획되지 않고 논의되지도 않고 있으며 현안에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가동 전망에 관한 문제는 “우크라이나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 가스관 가동전망은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군부대가 일부 철수했다는 소식은 ‘좋은 신호’다. 더 많은 철수소식을 바란다. 외교로 해결책을 찾는 일은 가능하다. 안보문제는 모든 유럽인에게 지속적인 안보가 러시아에 반해서가 아니라 함께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고 말했다.


이로써 폭발 직전의 우크라이나 위기는 일단 최대의 위기 국면에서 소강 상황으로 흘러갔다. 전쟁 발발 예고 시점에서 일단 군사행동은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앞으로 NATO의 동진 문제는 외교협상에 넘겨졌으나, 푸틴의 요구대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헌법 명시 사항을 완전히 삭제하지 아니하면 긴장은 재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는 러시아 안보의 사활문제로 군사행동을 좌우할 사활 문제로 남게 되었다. 아무튼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유럽의 빵 바구니’ 자연부국, 코사크전사들 비극적 수난의 옥토]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연방의 제일 서쪽에 있으면서도 영토가 가장 넓은 옥토의 나라로, 역사적으로 빈번한 외침을 당한 불행한 나라이다. 세계의 흑토지역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비옥한 옥토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며, 철광 석탄 망간 니켈 흑연 등 거의 모든 자원을 보유한 자원부국이다. 주변의 폴란드, 러시아 스웨덴과 각기 동맹을 맺으며 국가의 명맥을 유지해온 약소국이기도 했다.


18세기 중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동서로 분할됨으로서 오늘의 분할의 씨가 뿌려졌다. 러시아와 스웨덴이 격돌한 1720-1721년간 스웨덴과 동맹을 맺었으나 스웨덴이 패배하자 코사크 전사들과 농민들이 러시아의 노역 대수난을 당했다.


그리고 1914년 1차 세계대전 기간에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관할에서 동서동족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피를 흘리는 수난을 겪은 비극의 민족국가였다.


2차 대전 후 소련의 한 연방으로 편입되어 공산치하에서 신음한 후 1992년 고르바초프의 소련공산주의 해체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공산주의의 족쇄에서 풀려나면서 서방진영에 들어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살려고 했지만, 오늘 러시아의 영향과 간섭으로 계속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진영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NATO에 가입하려 하자 러시아 안보에 위협을 준다며 대규모의 군대를 푸틴이 파견함으로써 유럽대륙의 전쟁 위기를 부른 것이다. 특히 냉전시대 소련이 핵무장의 대서방 전진기지로 사용해 소련 해체시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진하여 미소 양국에 신고하고 자진 해체해 비핵국이 되었다. 지금 핵폐기를 후회하는 소리도 들린다.


오늘 유럽인들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3차 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푸틴의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일으키려 하는 것 자체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을 분할한 얄타회담의 결과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1938년 독일 히틀러와 뮌헨회담을 금방 연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뮌헨회담은 히틀러가 영국의 챔벌린, 프랑스의 달라디에 수상을 초청해 2차 대전의 전주곡으로 평화를 사기친 역사적 과오의 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영토 확장을 위해 히틀러는 체코병합을 찬성해주면 유럽에 항구적 평화를 보장한다고 허풍을 떨었다. 영불 정상은 히틀러의 요구대로 체코병합을 유럽평화 유지조건으로 허용해 주었으나, 히틀러는 1940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서 2차대전을 폭발시켰다. 뮌헨회담의 평화는 2차대전 전주곡이었고, 오늘 푸틴의 군사행동이 3차대전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푸틴의 전략적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기점으로 옛 소련 연방의 동구위성국을 포함하는 대러시아 제국 건설에 있다고 영국언론 가디언지는 보도했다.


1944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수상, 소련공산당 두목 스탈린이 결정한 얄타회담 합의는 2차 대전 후 동유럽을 소련지배의 공산주의 세계와 서유럽의 자유민주-시장경제로 나눠지게 했다.


[서방의 NATO의 동진, 푸틴의 러시아제국 구상실현 장애물]


1945년 5월 나치 제3제국 멸망 후 소련공산주의가 동유럽을, 미국 영국 프랑스군이 점령한 서유럽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치, 경제체제로 하는 정치체제로 분할했다.


여기서 소련을 우두머리로 하는 공산주의 제국은 라인강부터 캄차카 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땅을 점유했다. 그리고 서방은 군사적으로 NATO가 안보를, EU(유럽연합)가 시장경제체제를 담당한 거대한 공동체를 구성했다.


냉전체제로 불렸던 유럽의 동서분할 체제는 동에 공산주의가, 서에 자유민주-시장경제가 정착했던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붕괴를 계기로 냉전체제로 호칭되었던 동서의 이념적 양대 세계는 1991년 12월 소련의 세계 공산주의 체제가 해체됨으로서 유럽전체가 자유민주-시장경제체제로 통합되었다.


이로써 라인강에서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거대한 슬라브족 지배의 소련 공산주의 세계가 소멸된 것이다.


보리스 엘친 대통령은 구소련의 중심 러시아를 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여 일단 성공했다. 그리고 푸틴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된 러시아 영토를 냉전체제 시대의 동구와 러시아를 통합하여 대러시아제국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2008년 이후 푸틴의 제국 구상은 2014년까지 조지아(Georgie)와 크림반도를 장악했고 계속해서 외교적 방법과 무력적, 전쟁방식을 동원해 대러시아 제국의 건설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푸틴의 구상이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오히려 외교적 방법으로 러시아가 보다 더 자유민주주의에 접근하는 것이 정도라는 것이다. 현재 유럽에는 유럽 안보를 위한 유럽안보협력회의(OSCE)와 NATO와 EU 등 외교적 협의기구가 포진해 있다.


유럽안보협력회의(OSCE)는 냉전시대 동서유럽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헬싱키 모델이 있다. 1975년 8월 헬싱키의 OSCE 정상회담에서 동서유럽의 공산주의 체제와 자유민주 체제의 국경선을 인정해 상호 불가침조약을 적용하고 둘째, 동서간 관광 등 인적교류와 경제협력을 단행하며, 셋째, 인권존중문제를 공유하는 3대 협정을 체결했다. 헬싱키 헌장은 동서양 대륙이 개별국가승인 이전의 상태로 공동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마크롱, 숄츠 외교해법 성공, 대만, 북핵문제에 반면교사 될 수도]


결론적으로 푸틴은 마크롱과 숄츠 등 서구 정상들과 회담을 통해 외교방식으로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21세기 세계대전 위기를 외교적 대화로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 준 셈이다.


헬싱키 헌장은 유사한 갈등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대만문제와 한반도의 북핵문제 등에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외교적 해법의 성공은 그래서 국제사회의 기대를 모은다.


*필자: 주섭일(언론인 전 중앙일보 국제문제대기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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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학 박사
    전 중앙일보 파리특파원-국제문제대기자

    저서: 사회민주주의의 길(사회와 연대, 2008) 등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 (사회와 연대, 2017)
    특파원이 추적힌 북한 핵(사회와 연대, 2016)
    한반도 통일대박과 1990 독일통일 (사회와 연대, 2014)
    북의 3대 세습과 평양의 봄(사회와 연대, 2011)
    정치변화와 사회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02)
    김정일과 부시의 대타협(두리미디어, 2008)
    새정치와 이원적 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12)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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