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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북한通의 눈에 잡힌 "김여정의 미소, 김영남의 눈물" 재미동포 박성훈 교수의 글 2018-03-14
이영일 rh201@hanmail.net
-재미동포인 박성훈 교수가 재미있는 글을 보내왔다. 박성훈 교수는 전주고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나와 호원대 초빙교수/통일교육원장, 통일부 정책실장, 청와대 통일비서관등을 역임했다.


삼수 끝에 따낸 평창 동계올림픽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재미와 스릴을 가져다주었다. 참 다행이다.


지난 수년간 거듭되어온 북핵 미사일 도발과 유엔 제재,
미국을 향한 핵미사일공격 위협과 북미 국가원수 상호간의 도를 넘는 모독적 비난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극도로 격앙되어 참수작전이니 코피작전이니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 속에
이번 올림픽이 열렸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았던 북한의 참가가 요란하게 제기되고,
얼어 붙어있던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은 환각이 들 정도로
남북회담이 다급하게 열리고, 이어서 대규모 공연단 선수단 응원단 대표단 등이 전격 파견되고,
개막식 공동입장이 숨 가쁘게 성사되었다.


과거 남북관계의 속도에 비해 이번의 대반전은 초음속으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마치 오래 전에 물샐 틈 없는 합의를 이루어 놓았던 것처럼.
그만큼 급박한 사정이 있었거나, 김정은이 머리회전이 빠르거나,
​통이 크고 자신감이 넘치거나. 변덕이 죽 끓듯 하거나 여러 이유가 있으리라.


이 모든 것이 교활한 전략전술이나 쇼가 아니고 진실한 동포애나 통일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싶지만, 과거 경험으로 보아, 남북관계 정치학은 언제나 별도의 진실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한참 지나봐야 알 수 있으리라.


▲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린 2월 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북측대표단의 구성이 참 특이하다.
워낙이 북한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언행을 하나의 방책으로 쓰기는 하지만,
노회한 90세 노인과 순진한 30세 손녀딸 같은 여성을 함께 대표단으로 보낸 것은 참 북한답다.


산전수전 다 겪고 살만큼 살아본 노 대표와, 언뜻 소녀처럼 가녀리고 천진스럽기조차 보이는
여성 대표는 경륜의 차이만큼이나 표정의 차이도 대조적이었다.


나이답게 담백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개막식 때
한국 대통령 뒤에 앉아 남북선수단 공동입장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고,
북측 공연단 관람 시에도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에 비해 늘 자신 있게 잔잔한 미소를 짓던 김여정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눈물은 커녕 약간 달뜬 표정이었는데, 개막식에서 펜스 미부통령과 아베 일본총리의 뒷 열에
앉아있을 때에는 미소와 냉소가 혼합된 기묘한 표정을 드러내,
두 대표의 역할분담이 뒤바뀐 건 아닌지 다소 헷갈리기도 하였다.


역할분담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과연 그 시간 그들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참 궁금하다.


김영남의 눈물은 간단치 않다. 그의 인생사 자체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1925년생으로 알려져 있다가 1928년생으로 바뀌었다니, 어쨌든 드물게 장수하면서도
무척 건강해 보인다. 그 연세에 담배도 즐긴다면 보통 건강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중국 땅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김일성대학을 나오고
모스크바대학에서 외교학을 공부했다. 김일성 연설문을 쓰던 그는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에다 일어 실력까지 두루 갖추었으리라 보인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까지 3대째 정권이 바뀌었어도 북한 최고의 외교전문 관료이자
원로 정치인으로서 그 험난한 숙청의 그물에 단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을 보면, 매우 희귀한 “처세의 달인”이라고 봐야한다.


그에 대한 평가 중에 “아부의 천재”라는 별명이 있기는 하지만,
실력 좀 있고 아부 잘 한다 해서 그것만으로 만수무강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뼈를 깎는 절제와 피나는 노력, 카멜레온의 적응기술과 천운도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살아있는 외교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오대양 육대주를 구석구석 돌았고,
세상의 유명 정치인들과 두루두루 악수하고 다녔다. 그는 세상 곳곳을 육안으로 직접 보았고,
기나긴 세월동안 역사의 변화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였다.


키가 180cm이니 동년배 평균치 보다 당당한 풍모에 지적 능력을 갖추었고
절제와 처신의 달인이었으니, 청년시절부터 남다른 포부를 가졌으리라.


그는 사상가도 아니고 빨치산 출신도 아닌, 영혼 없는 테크노크라트 이긴 하지만,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 정도는 있었으리라.


한 나라의 핵심 지도급 인사로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그 속에서 북한의 좌표가 어디쯤 주저앉아 있다는 것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30년 전에 공산주의 체제는 모두 망해버렸고, 천년만년 갈 것 같던 우방 공산국가들도
모두 바뀌었으며, 반면에 남한은 세계 10위권의 자유로운 선진국이 되어 동계올림픽까지
개최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영혼 없는 “아부의 달인”이라도 옳고 그른 것은 안다.


구순의 나이에 처음 목격하는 남한사회는 피부에 와 닿는 느낌부터 다르다.
남북한도 그렇고 동서독도 그렇고 분단국 경계선을 왕래해 보면 같은 민족 같은 산하지만
두 지역은 자연 풍경도 공기도 확연하게 서로 다르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절감하면 자유의 고마움에 가슴 뭉클한 감격을 숨길 수 없다..


우리 민족의 교육열은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높이 평가한 바 있다.
10여 년 전부터 탈북민들 중에 젊은 여성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손들에 대한 뜨거운 교육열망 때문이다. 독재도 가난도 다 이겨낼 수 있지만,
이들은 미래 없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자손들을 맡기는 것은 절망이라고 여기고 있다.


김영남위원장도 본인은 살만큼 살았고, 이제 손자 증손자가 미래를 이어갈 것이다.


장차 자손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교육받고 어떠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랄까.


그의 눈물은 언필칭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칼날위에서 “아부의 달인”으로 살아남은
자신의 한평생을 회고하고 민족분단의 현주소와 장차 대를 이어갈 자손들의 미래를 상상하며
흘린 회한의 눈물이라 보여 진다.


김정은에게 보여줄 보험용 눈물이라면 그가 일평생 쌓아온 인생이 아깝다.


김여정은 1987년생 이라고 한다.
권력자 김정일의 딸이니, 곱고 귀하게 진짜 “공주”처럼 30년을 살아왔을 것이다.


폐쇄국가의 구중궁궐에 살면서 피도 눈물도 없이 가차 없는 권력의 무자비함과
무소불위를 일상처럼 겪으며 살아왔다. 소싯적 잠시 유럽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알 필요도 없이 살고 있으리라 보인다.


대신에 권력유지를 위한 교묘한 권모술수와 여성으로서의 본능적 감각으로 새 권력자인
친오빠의 귀여운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젊은 여성 정치인은 현재 북한이 어떤 사회이고 어떤 나라인지는 인식하고 있을까.
그녀가 그리는 이상적인 국가는 어떤 나라일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통일의 길은 무엇이며, 어떤 통일국가를 상상하고 있을까.
혹시 북한으로 흡수 통일하여 오래오래 공주 노릇을 하려고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나비처럼 사뿐 날아와서 애교 넘치는 자태로 전달한 친서 한 장이 민족사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벌어질 향후의 정세변화를 그녀는 알고 있을까.


순진한 듯 여유 만만한 미소와 냉소는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신비롭게 보였다..


초초강대국 미국 부통령 바로 뒤에 앉아, 나 보란 듯 짓고 있는 냉소를 보면서
역시 주체사상과 핵무기를 가지면 여성들도 담대해지고 통이 크고 천하무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체사상도 핵무기도 통일되면 다 “우리 민족끼리”의 소유가 될 것이고,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우리 앞에 꼼짝도 못할 것이라고 그들은 정말로 굳게 믿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대축전을 세 차례나 치렀다.
그때마다 그 행사들은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어 주었다.


88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나라다운 자존감과 개혁 개방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고, 한국 산업화의 성공사례는 뜻하지 않게 소련 동구 공산제국들을
붕괴시키는 방아쇠를 당겨 주었다.


서울 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는 전 세계에 울러퍼졌고,
그 이듬해에 동베를린 시민들은 정말로 장벽을 타고 넘어버렸다.
베를린장벽 붕괴로 때마침 불온한 기운이 고조된 소련 동구 공산국들은 줄줄이
붕괴되고 말았다.


죽의 장막을 걷어 내고 세상에 눈뜨던 중국은 뭐 하나라도 배우려고 한국을 존경의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한국은 찌들은 후진국의 때를 벗고 가능성과 미래의 나라로 힘차게 도약의
발돋움을 하였다.


2002년 월드컵 행사는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계에 대축제의 무대를 제공하고, 한국은 발로 하는 축구 무림에서 천하 고수들을 젖히고
용케도 빅4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대한민국” 이라는 함성은 무서운 대중 에너지를
결집시켰고, 분에 넘치는 성적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은 바야흐로
새로운 시민사회 민주정치를 이루어내었다.


이제 평창 동계 올림픽은 우리 한반도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할까.
이제 남은 과제인 통일의 길에 어떤 획을 긋게 될 것인가.
북에서 온 노대표의 말없이 흘리는 눈물과 새봄의 나비처럼 날아온 여대표의 미소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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