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정부의 통제를 받는 국영 여론조사기관이 최고 권력자에게 불리한 여론 지표를 고의로 은폐하려 한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10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브치옴(VCIOM)이 응답자에게 신뢰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직접 기입하도록 요구하는 개방형 신뢰도 조사의 결과 공개를 최근 들어 전면 중단했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조치는 질문 방식에 따라 푸틴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극명하게 갈리는 현상이 깊어졌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주관식 형태로 진행된 3월 집계이자 4월 초에 공개된 개방형 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이 얻은 지지율은 29.5%에 그쳤다. 이 수치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래 가장 바닥을 친 수치다. 반면에 설문자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신뢰 여부를 칭호와 함께 직접적으로 되묻는 폐쇄형 방식에서는 73.8%라는 압도적인 수치가 도출됐다. 러시아 대중이 자발적으로 정치인을 떠올릴 때는 푸틴 대통령을 선택하는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올해 들어 더욱 뚜렷하게 관측되고 있었다. 개방형 신뢰도 지표는 올해 초와 비교했을 때 불과 몇 달 사이에 5.5%포인트(p)나 주저앉았으며, 정점을 찍었던 2024년 3월의 기록과 비교하면 무려 19.5%p나 폭락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브치옴은 매달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개방형 조사 결과의 외부 발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인 일정대로라면 4월 말이나 5월 초에 발표되었어야 할 4월 데이터는 물론이고, 뒤이어 취합된 5월 데이터까지 현재까지 철저히 비공개 상태로 묶여 있다.
더욱이 브치옴이 산출하는 주간 단위의 지지율 역시 하락 기조를 방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5월 31일을 기준으로 산정된 푸틴 대통령의 주간 지지율은 66.6%를 기록하며 연초 대비 거의 10%p 가까이 증발했다. 조사 기관 측이 수치를 방어하기 위해 기존의 전화 인터뷰 형식을 버리고 면접원이 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조사 방식으로 전환하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2주 연속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르파리지앵은 이처럼 브치옴이 개방형 지지율의 수치를 감추기 시작한 행태 자체가 크렘린궁이 마주한 가혹하고 불편한 현실을 고스란히 방증한다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러시아 내부에서 감지되는 수령에 대한 민심 이반은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솟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거듭되는 경제 위기,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장기화 속에서 피로감이 극도에 달한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크렘린궁 역시 이러한 민심의 동요를 강력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위기 돌파를 위해 푸틴 대통령을 인자하고 친근한 지도자로 포장하는 이미지 쇄신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푸틴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올림픽 예비 선수 양성 학교를 시찰하던 중, 한 학생에게 다가가 이마에 입을 맞춘 돌발 행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 기이한 스킨십이 지지율 폭락에 직면한 독재자의 초조함에서 비롯된 정치적 쇼라고 진단한다. 러시아 독립 언론 '블라스트'의 창립자이자 정치 분석가인 파리다 루스타모바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과거 2006년에도 푸틴 대통령이 유사한 행동을 감행했던 전례를 언급하며 "그가 지지율 하락을 우려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는 그가 공개적으로 다시 아이들에게 입맞춤한다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꼬집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