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GCC 긴급회의 (로이터=연합뉴스)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오른쪽)이 2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아라비아 반도 6개국으로 구성) 긴급 회의에서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알나하얀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맞이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걸프 지역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8일(현지시간)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전격 발표하며 국제 에너지 시장과 중동 정세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표면적으로는 원유 증산을 통한 시장 안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국제 유가를 조절하며 아랍권의 맹주 역할을 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제에서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발표는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긴급회의 도중 사전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이루어져 사우디 측에 상당한 외교적 결례와 충격을 안겼다.
이번 탈퇴의 배경에는 원유 생산 전략을 둘러싼 양국의 고질적인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UAE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이 가속화되기 전에 보유한 원유를 최대한 생산·판매하여 자산을 현금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사우디는 공급량을 조절해 고유가를 유지하는 기조를 고수해 왔다. UAE 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ADNOC)는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하며 현재 하루 340만 배럴 수준인 생산량을 2027년까지 500만 배럴로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사우디 주도의 감축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UAE가 증산을 통해 가격 조정 효과를 상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번 결정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 국면에서 드러난 걸프 지역 동맹의 취약성에 기인한 '각자도생'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UAE는 전쟁 중 2,200여 차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을 받는 등 실질적인 안보 위협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포함한 GCC 차원의 공동 대응이 무산되자 큰 실망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안와르 가르가시 UAE 대통령 고문은 "이번 전쟁에서 GCC의 결속력은 역사상 가장 취약했다"고 비판하며, 지역 연대보다는 미국의 방어 체계와 정치·경제적 지원에 기대는 것이 자국 안보에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비쳤다.
역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양국의 충돌은 경제와 대리전 양상으로도 번지고 있다. UAE는 2조 달러 규모의 국부 펀드를 동원해 이란에 우호적인 파키스탄으로부터 예치금을 회수하는 등 외교적 보복을 단행했고, 사우디는 즉각 파키스탄 지원에 나서며 맞불을 놓았다. 뿐만 아니라 예멘과 수단 내전에서도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며 대립해 왔으며, 작년 말에는 사우디가 UAE 무기 운송 차량을 폭격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갈등의 기저에 사우디를 '맏형'으로, UAE를 '반항적인 동생'으로 보는 해묵은 자존심 싸움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UAE의 OPEC 탈퇴는 단순히 석유 정책의 변화를 넘어, 사우디 중심의 다자 기구체제에서 이탈해 미국과 밀착하며 독자적인 글로벌 파워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적 선언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향후 GCC나 아랍연맹 등 다른 역내 기구에서도 UAE의 추가 탈퇴나 영향력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비록 UAE 정부가 사우디와의 형제적 관계를 강조하며 수위 조절에 나서고 있으나,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양국 간의 균열은 중동의 지정학적 지도를 재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