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부근 지나는 화물선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원 출신의 에브라힘 카르하네이 박사는 29일(현지시간) 강경보수 성향 일간지 카이한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전쟁의 종식은 '12일 전쟁' 때와 달리 포괄적이며 억지력 있는 전제 조건에 기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일간 예디오트아흐로노트는 이 기고문을 별도로 보도하면서 카이한에 대해 "이란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해, 이번 조건 제시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카르하네이 박사가 가장 먼저 내세운 조건은 중동 지역에서의 미군 완전 철수와 서아시아 내 미군기지 해체다. 그는 이에 더해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주권 아래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경제 체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의회가 이미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선박으로부터 안전 제공을 대가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법안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 요구는 미군의 위협 없이 해협 통제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구상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카르하네이 박사가 제시한 나머지 조건들도 이란의 지역적·경제적 이해관계를 폭넓게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라크·레바논 및 '저항의 축'에 대한 불가침 원칙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고, 유엔과 미국이 이란에 부과한 제재를 공식 해제하고 동결된 이란 자산을 반환할 것도 촉구했다. 아울러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침공'을 공식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며, 아랍에미리트(UAE)가 아부무사 섬 등 3개 섬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는 성명을 내야 한다는 점도 조건에 포함시켰다. 마지막으로 '침략국들'이 전쟁과 테러를 영구히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강경한 조건 제시는 미국 측이 이란에 15개항 종전안을 전달한 상황에서 이란의 역제안이 임박한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나왔다. 알려진 미국 측 종전안에는 이란의 핵시설 해체 및 우라늄 농축 금지, 보유 농축 우라늄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관, 역내 대리세력 지원 금지, 호르무즈 해협 통행 보장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요구와 이번 이란 측 조건을 비교하면, 핵 문제와 지역 패권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