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왼쪽)과 만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오른쪽) 이란 국왕 [DPA=연합뉴스 자료사진]신정일치 체제의 공포 정리에 신음하는 이란 거리에서 45년 전 사라진 '왕조'를 그리워하는 구호가 울려 퍼지며 이란 정국이 묘한 기류에 휩싸였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란 전역을 휩쓴 반정부 시위는 과거 '히잡 반대 시위'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주요 외신은 시위대 사이에서 "팔레비가 돌아올 것이다", "레자 샤를 축복하길" 등 옛 왕조를 찬양하는 구호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팔레비 가문이 오랫동안 혐오와 청산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파격적인 변화다. 미국에 거주하며 망명 생활을 이어온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65)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 체제에 반대하는 상징적 인물로 재소환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팔레비 열풍'을 왕정복고에 대한 진지한 열망이라기보다, 현 이슬람 공화국의 무능과 경제적 고립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란 국민들이 레자 팔레비를 연호하는 이유는 그가 대표하는 '친서방·세속주의·경제적 풍요'가 현재의 궁핍한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즉, 그를 지지한다기보다 현 정권이 아닌 '다른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레자 팔레비는 SNS를 통해 시위 참여를 독려하면서도, 스스로 국왕이 되기보다는 세속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레자 팔레비가 이란 야권의 실질적인 통합 리더가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980년 부친 사망 후 스스로 국왕임을 선언했던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반정부 세력을 하나로 묶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오랜 타국 생활로 인해 이란 내부에 뿌리 깊은 조직 기반이 전무한 상태인 데다, 왕정 체제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민주화 세력도 여전히 두텁다. 특히 이란 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소수 민족들은 과거 팔레비 왕조의 중앙집권적 억압 정치를 기억하고 있어 그의 부상을 경계하는 눈초리가 매섭다.
결국 레자 팔레비의 등장은 이란인들의 생각이 '체제 전복'이라는 거대한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다. 아라시 아지지 등 전문가들은 그가 야권의 선두 주자로 올라선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유산이 가진 분열적 요소 탓에 전국적인 통합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진단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상과 응징' 논리가 이란의 신정 체제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왕세자의 귀환'이라는 고전적인 서사가 이란의 미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국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