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사촌인 로무알데스 하원의장 지난 7월 28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하원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왼쪽)과 그의 사촌인 마틴 로무알데스 하원의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2025.09.17[AFP 연합뉴스 자료사진]인도네시아와 네팔 등 아시아 각국에서 반부패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필리핀에서도 정치권 비리 의혹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사촌이자 핵심 측근인 마틴 로무알데스 하원의장이 홍수 방지사업 관련 뇌물 수수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로무알데스 의장은 현지시각 17일 사임 의사를 밝히며 “조사위원회가 부당한 영향력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원 연설에서 “특정 인프라 사업을 둘러싼 문제는 개인을 넘어 기관 전체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장기화될 경우 국정 운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의혹은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상원 청문회에서 “홍수 대응 공사와 관련해 최소 17명의 하원의원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정치권 전반으로 의혹이 확산되며 상원에서도 프랜시스 에스쿠데로 상원의장이 계약업체 연루설 여파로 교체되는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3년간 약 5천450억 페소(약 13조 원)를 홍수 방지 사업에 투입했지만, 상당수 사업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 내부에서는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조 원대를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해당 의혹을 계기로 독립적인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안드레스 레예스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날부터 활동을 시작한 조사위는 청문회 개최와 소환, 형사 고발 등 강제 조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은 TV 브리핑에서 “친척과 측근이라도 수사에서 면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를 밝혔다. 이어 예정된 시민 시위에 대해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함께 거리로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하며 시민들의 분노에 공감했다.
시민단체들은 오는 21일 마닐라 리살 공원 등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이 장소는 1986년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피플 파워’ 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 이번 시위가 정권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국은 시위가 격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주요 지역에 경찰과 군 병력을 배치하며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대통령은 평화적 시위를 촉구하면서도 폭력 사태 발생 시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한편 법원은 홍수 방지 사업과 관련된 은행 계좌 135개에 대해 동결 명령을 내렸으며, 자금세탁방지위원회 요청에 따라 정부 관계자와 민간 계약자 등 26명의 자산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신임 공공사업부 장관은 “전례 없는 규모의 부패가 드러나고 있다”며 사건이 특정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