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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7-10 04: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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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모 방송의 궁금한 이야기란 프로에서 10년 만에 열린 타임캡슐이란 게 방영되었다. 한 작가가 인천 자유공원에 타임캡슐 조형물을 설치하고 200여명의 사연을 담아 놓았었는데 10년이 되는 날에 개봉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참석지 못한 사람들에겐 찾아가 전달하는 성의도 보였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던 젊은 남녀로부터 여든(당시 일흔하나)이 넘은 분까지 각양의 사연이 보여 지고 있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 되어 고민하다 조언을 듣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했던 사연도 있었고 4개월짜리 아이의 손을 그려 넣었던 젊은 부부는 10년이나 자라버린 아들의 손을 거기에 대보며 감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10년이 되어 여든 한 살이 된 할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직접 사연을 개봉하는데 이 편지를 읽게 될 때는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줄 모른다는 내용에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자식들과 함께 이걸 읽게 된 것이 감사하고 감격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10년의 약속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런 타임캡슐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지만 10년 전과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먼저 그 십년동안에 30여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였고, 딸과 아들은 결혼하여 셋과 둘의 자식을 거느린 부모가 되었으니 내게는 다섯 명의 손주가 생긴 것이다. 네 식구가 그새 열한 식구가 되었다. 그 십년동안 나는 십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여러 곳 내 글들이 실렸다. 아내도 삼십여 년 직장생활을 끝내고 자기 삶의 여유를 찾아 즐기고 있으며 살던 아파트도 재건축을 하여 새 아파트로 들어와 살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딸아이 부부가 남미 선교사로 나갔다가 온 것도 그렇고, 아들네 부부가 미국에서 5년을 살다가 들어온 것도 그렇다. 그만큼 지나온 삶이 복잡다단했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까. 이제 내 나이 곧 일흔이니 10년 후면 여든이 다 되는 나이다. 벌써 내가 그렇게 살아버렸다는 말이다. 평균수명이 여든이라지만 평균대로 산다는 보장은 없다. 내 초등학교 동창 중 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행히 앞으로 10년을 더 산다면 10년 동안 나는 또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인가.


10여 년 전 L교수가 차 한 잔 하자며 전화를 했었다. 정년퇴직을 했는데 20년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30년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잘못 한 거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때 웃으며 20년도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런데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30년이 맞는 거였다. 타임캡슐 속에서도 어떤 이의 글씨는 다 날아가 버려 백지만 남았다. 서로에게 쓴 편지였는데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다. 내가 지금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편지를 쓴 후 10년 되는 날 그걸 열어본다면 그땐 무엇이 어떻게 변할까. 너무나도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그래도 굳건한 믿음들이 있다. 그때도 우린 살아서 변화를 이겨내고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을 거란 믿음이다.


남북관계, 미중일 속의 우리 관계, 사회 경제의 변화, 그 속의 우리 가정과 나, 모든 게 불확실 하지만 기도처럼 소망을 열고 또 믿음을 세운다. 여든이 넘은 그분은 10년 후의 손주들 자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삶은 희망이다. 희망은 기원이고 바램이고 약속이다. 꼭 지켜지지 않더라도 꼭 지킬 수 없더라도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노년층이 급증해 버린 이때 10년 후의 약속은 얼마나 내가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 그리고 세상의 주역이 된다. 주역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뒤로 물려 있다. 퇴물인간이다. 그러나 숲에는 큰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작은 잡목들이 어우러져 있어야 숲이다. 그 속에서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새도 벌레도 함께 살고 자란다.


중요한 사람 훌륭한 사람만 세상의 주역이 아니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다만 그걸 두루 인정해 주지 못하는 이 시대 그리고 사람들의 경향이 잘못 되었을 뿐이다. 아마 그 작가는 또 다시 10년 후를 기약하며 타임캡슐을 만들 것이다. 어찌 그이 뿐이랴. 우리 모두는 희망과 소망의 계획으로 저마다 타임캡슐을 묻는다. 10년 후의 약속, 10년 후의 약속, 그렇게 소망의 씨를 심는다.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을 붙들고 사는 게 인간이다.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바라며 사는 게 인간이다. 10년 후의 약속, 나도 10년 후의 나와 약속을 한다. 내용은 비밀이다. 그때 가보면 알 것이다. 10년 후 그날, 그렇게 우린 소망의 씨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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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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