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중국 자동차 수출 제한 합의 직후 나온 추가 압박 선언]
유럽연합(EU)이 중국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수준을 넘어, 중국에 집중된 공급망을 분산하고 필요하면 유럽 시장 접근을 신속하게 제한하고 차단하는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대중 강경책에 제동을 걸어온 독일까지 프랑스와 함께 새로운 통상 무기를 요구하면서 변화에 힘이 실렸다. 중국과의 거래 확대에 무게를 뒀던 유럽이 이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유럽이 그동안의 친중적 태도에 대해 각성하면서 완전히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17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브뤼셀 정상회의 직후 중국산 자동차를 넘어 추가 수입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면서 “중국과의 하루 10억 유로가 넘는 상품무역 적자를 자동차 분야의 합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인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화학제품·플라스틱·합금철 등에 대한 조치를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자동차 협상을 타결한 직후, 다른 산업에서도 대응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미 압박 대상은 넓어지고 있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14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자동차에 이어 다른 분야에서도 무역 재균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협상 관계자들이 거론한 업종에는 화학·가구·산업기계·철강·풍력발전 부품이 포함됐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유입을 특정 기업의 경쟁력 문제로 다루던 유럽이 제조업 기반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단일 공급자 의존 끝낸다”…구매 구조부터 바꾼다]
변화의 중심에는 ‘디버시파이 EU(Diversify EU)’가 있다. EFE통신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은 16일 단일 공급자 의존을 줄이기 위한 이 구상을 12월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기업들이 공급망 위험을 더 신속히 낮추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검토 중인 방안은 핵심 산업 기업들이 여러 국가에 걸쳐 최소 세 곳의 공급업체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9월 말 “이러한 다변화 수단이 준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종 요건은 후속 제안을 확인해야 하지만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중국산이 싸다는 이유로 핵심 조달을 한곳에 집중하는 기업의 구매 결정에 경제안보 기준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화학업계는 이미 생존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솔베이 측은 중국의 구조적 공급과잉이 유럽 생산업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 2022년 이후 유럽 화학 생산능력의 거의 10%에 해당하는 폐쇄 계획이 발표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모두 폐쇄됐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산업 기반이 약해지는 속도를 보여주는 경고다.
그렇다고 중국산을 급히 줄이기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솔베이는 제품별 특성과 하류 사용자의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산 원료를 제한하면 이를 사용하는 유럽 제조업체의 생산비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과제는 수입 제한과 함께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급업체 숫자를 늘려도 그 업체들이 같은 중국산 원료에 의존한다면 실질적인 위험은 남는다.
[중국 지키던 독일, 시장 차단 요구하는 쪽으로]
이번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수는 독일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독일은 2024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EU 추가관세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독일 자동차업계는 통상 갈등이 중국 사업에 미칠 피해를 우려하며 타협을 요구했다.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매출과 이익을 지키려는 이해관계가 유럽의 대중 강경 대응을 제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메르츠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월 5일 보낸 공동서한은 달랐다. SCMP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심각한 시장 왜곡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필요하면 단일시장 접근을 즉시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을 요구했다. 이른바 ‘킬 스위치’다. 중국과의 통상 충돌을 막는 데 무게를 뒀던 독일이 이제 유럽 시장을 방어할 강력한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세 가지 정책은 구분해야 한다. 디버시파이 EU는 공급망 의존을 낮추는 수단이며, 신속한 시장 접근 제한은 심각한 왜곡에 대응하는 별도 구상이다. 여기에 역외 강압이나 보복을 받는 회원국·산업을 지원할 연대 메커니즘도 추진된다. 구매 구조를 바꾸고, 시장을 방어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복에 공동 대응하는 체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제한도 시작일 뿐이다]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제한은 이미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났다. 로이터는 12일 첫해 물량을 연간 35만 대로 제한하고 이후 매년 6%씩 늘리는 4년간의 조치를 보도했다. 올해 중국산 수입 예상치 약 80만 대와 비교하면 상당한 감축이다. 다만 당시 보도에서 시행 시점은 이르면 12월로 설명됐다.
이 조치는 기존 관세의 빈틈을 좁히는 의미도 있다. 중국 업체들은 2024년 순수 전기차에 추가관세가 부과되자 관세 대상에서 빠진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으로 수출을 확대했다. 동시에 유럽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의 통상 논쟁은 완성차 수입량에서 현지 생산의 조건과 부품 공급망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기업도 생산지를 옮기는 것만으로 모든 규제를 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유럽은 역외 파트너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려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와 독일이 영국 자동차산업을 ‘메이드 인 유럽’ 공공조달 체계에 포함하는 조건으로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EU 관세와의 정렬을 요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 영국의 참여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 시장의 혜택과 대중 통상정책을 연결하려는 구상 자체가 중국에는 부담이다.
[Why Times Insight | 중국이 기대했던 유럽이 달라졌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유럽이 중국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꾸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중국에 얼마나 많이 팔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이제는 중국에 얼마나 의존하며, 그 의존이 유럽의 생산과 고용을 얼마나 위협하는지도 따진다. 값싼 수입품이 소비자에게 주는 이익과 유럽 공장이 사라질 때 발생하는 손실을 함께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독일의 선회는 중국에 뼈아프다. 독일이 중국 사업을 이유로 강경책을 견제하면 EU의 공동 대응은 어려워졌다. 그 독일이 프랑스와 함께 시장 차단 수단을 요구하면 중국이 활용할 정치적 공간도 좁아진다. 독일 산업계 전체가 중국과의 관계 축소에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강경 대응을 가로막던 가장 큰 제약 하나가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는 크다.
공급망 다변화와 연대 메커니즘의 결합도 중요하다. 개별 기업은 공급 중단을 두려워하고, 개별 국가는 중국의 보복을 걱정한다. 중국 의존을 줄이라는 정치적 요구만으로 행동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다. EU가 대체 조달을 지원하면서 보복 피해까지 공동으로 감당한다면, 중국에 맞서는 비용을 개별 국가와 기업이 홀로 떠안는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발표 이후에 결정된다. 공급처를 바꾸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유럽 내 생산을 어떻게 늘릴지, 회원국 간 이해 충돌을 어떻게 조정할지가 남아 있다. 장벽을 높이는 동안 유럽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소비자와 기업의 부담만 커질 수 있다. 중국 의존 축소가 산업 재건으로 이어져야 이번 전환도 지속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자동으로 수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대체할 공급처로 선택받을 기회가 열리는 동시에, 유럽이 요구하는 공급망 투명성과 현지 조달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부담도 생길 수 있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중국산을 대신 공급할 능력과 함께 핵심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공급의 안정성을 입증할 준비다.
중국이 주목해야 할 사실은 유럽의 문제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유럽은 중국과 거래를 계속하면서도 중국에 덜 의존하는 구조를 만들려 한다. 중국이 기대했던 거대한 수출 시장이 이제 중국 의존을 줄이는 규칙을 준비하고 있다. 믿었던 유럽의 문이 더 이상 조건 없이 열려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베이징이 직면한 가장 무거운 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