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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말레이와 단교 선언한 북한, 왜 그랬을까? - 北 공작거점 말레이시아 대사관 철수, 엄청난 타격 - 동남아 공작망 노출 우려해 말레이에서 서둘러 철수 - 北 외교 고립 자초, 갈수록 입지 좁아져
  • 기사등록 2021-03-22 15:19:46
  • 수정 2021-03-23 0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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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외교관들과 그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21일 대사관에서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떠나고 있다[사진=Benar News 캡쳐]


[주 말레이 북 외교관들 전원 철수]


북한이 대북 제재 위반 혐의를 받는 북한인 사업가 문철명 씨를 미국에 넘겼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와 단교를 선언한 지 이틀 만인 21일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전원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날 동남아시아 전문 인터넷 매체인 베나르 뉴스(Benar News) 등의 현지매체는 어린이를 포함한 북한인 33명이 이날 오전 11시경 버스를 타고 대사관을 떠나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오후 4시 56분 이륙해 오후 9시 56분 중국 상하이 푸둥공항에 도착하는 상하이항공 FM886편에 탑승했다.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던 일부 북한 교민도 동승했다.


[북한 대사관은 왜 말레이에서 철수했나?]


말레이시아에서의 북한 대사관 철수는 이틀 전인 19일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의 단교 선언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들에게 48시간 이내 출국할 것을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19일 말레이시아가 북한인 사업가 문철명을 불법 자금세탁 등 혐의로 미국에 인도한 사건을 이유로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한 바 있다.


문제가 된 북한사업가 문철명은 지난 2019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요청으로 말레이시아에 체포됐는데,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문철명이 대북 제재를 위반해 술과 시계 등 사치품을 북한에 보냈고, 유령회사를 통해 돈세탁을 했다며 범죄 사실을 적시했었다.


‘MMH2비자’(Malaysia My Second Home)를 보유한 문철명은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약 10년 동안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의 한 아파트에 거주해 왔다.


문철명은 범죄 혐의를 부인했지만 말레이시아 법원은 같은 해 12월 인도를 승인했고, 지난 9일 미국 인도를 거부해달라는 문철명의 상고를 기각해 최종적으로 인도가 확정됐다.


이렇게 문철명의 미국 송환이 결정되자 북한은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외무성 명의의 성명에서 “말레이시아 당국이 17일 무고한 북한 공민을 범죄자로 매도해 끝끝내 미국에 강압적으로 인도하는 용납 못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특대형 적대행위를 감행한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은 문철명이 “다년간 싱가포르에서 합법적인 대외무역 활동에 종사해온 일꾼으로서 불법 자금세척에 관여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날조이고 모략”이라며 “말레이시아가 입증할 만한 물증을 한 번도 내놓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북한을 고립 압살하려는 미국의 적대시 책동과 말레이시아 당국의 친미 굴욕이 빚어낸 반공화국 음모 결탁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외무성은 이어 “쌍방 사이에 초래될 모든 후과에 대한 책임은 말레이시아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배후조종자이자 주범인 미국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1일 김유성 북한대사대리도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취재진에게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 사태가 앞으로 가져올 결과들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정책으로 만들어진 반북(反北) 음모의 산물이다”, “말레이시아가 미국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다”며 미국과 말레이시아 두 나라를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히사무딘 후세인(Hishammuddin Hussein) 말레이시아 외교부 장관은 21일 북한 외교관 추방에 관한 성명에서 “이는 말레이시아의 주권을 보호하고,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치”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를 통해 말레이시아는 우리 사법권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으며, 우리 정부 제도를 무시하면서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에 반함으로써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지 않겠다는 점을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 말레이시아 대사관 철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김유성 북한대사대리 [사진=Benar 캡쳐]


[북한이 말레이시아를 떠난 진짜 이유는?]


사실 북한에게 있어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공작의 거점도시였고, 북한 외화벌이를 하는 핵심지역 중의 하나였다. 그만큼 외교적으로 중요한 국가라는 의미다.


지난 1973년 북한과 수교한 말레이시아는 한 때 북한 국적자가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할 정도의 우호국이었고, 특히 양측이 강대국에 대항하는 ‘비동맹 외교’ 노선을 공유하면서 그야말로 돈독한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보니 지난 1995년 북한에 경수로를 공급하는 협정이 체결될 때도 말레이시아가 협상 무대였고, 지난 2000년엔 미국과 북한이 미사일회담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기도 했다.


그러나 양국간의 관계가 급격하게 틀어진 것은 지난 2017년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북한 요원들의 사주로 암살당하면서 부터다.


당시 김정남은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인 현광성 등에 의해 화학무기인 VX(신경성 독가스)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총책인 오종길 등은 사건 직후 평양으로 달아났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말레이시아를 분노케 한 사건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가 북한 대사관에 은신중이던 핵심용의자 현광성, 김욱일 등을 조사후 체포하자 북한은 즉각 주 북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의 외교관과 가족 9명을 억류하면서 핵심용의자 3명을 풀어주지 않으면 말레이시아 대사관 직원들을 차례로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3명의 석방과 함께 김정남의 온전한 시신 반환, 말레이시아가 사건 직후 철회한 무비자제도와 양국 외교 관계 유지 등을 요구했다.


이에 말레이시아 당국은 사건 연루 3명의 출국을 보장하면서 대사관 직원을 전원 귀환시켰고, 사망한 김정남의 시신도 화장하지 않은 채 2017년 3월 30일 북한으로 인도했다.


김정남의 시신 인도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글로벌익스프레스로부터 비즈니스제트기인 BD-700을 임차해 직접 평양으로 보냈는데 북한의 조건은 베이징을 경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김정은이 중국을 결코 믿지 못한다고 하면서 중국측이 김정남 시신을 탈취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제트기에는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이 탑승했으며 평양으로 직행한 후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측에 인계했고, 비로소 억류중이던 말레이시아 국민 9명을 송환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타이베이에서 연료를 보충한 후 말레이시아로 귀국했다. 당시 언론에 평양으로 간다면서 거론되었던 MH360은 중국을 속이기 위한 페이크였다.


이러한 앙금이 말레이시아 정부에게 남아 있었고, 특히 김정남 암살 사건 처리과정에서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을 ‘깡패국가’라는 낙인을 찍고 있었던 차라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대사관도 문을 열지 않고 방치해 둔 상태였던 것이다. 반면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의 폐쇄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일부에서는 이번 북한의 말레이시아에 대한 경고가 마치 미국의 대북제재를 향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들 해석을 하지만 실제 내막은 전혀 다르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지난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로 ‘비동맹외교’의 북한보다 이미 미국쪽에 상당히 우호적이었고 협조적으로 변했다.


닐 와츠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 위원은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말레이시아는 그동안 유엔 대북제재 이행을 계속해왔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 예로 2019년 4월 북한 선박 ‘와이즈 어니스트’호에서 옮겨 실은 북한 석탄 2만6,500톤을 실은 파나마 선적의 동탄호가 말레이시아 케마만 항으로 입항하려고 했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이 입항을 불허한 사례를 거론했다.


이후 2019년 5월 북한 석탄 불법운송 혐의로 인도네시아에 억류됐던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미국령 사모아로 보내져 압류됐다.


이미 북한과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었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요구에 말레이시아 정부가 적극 호응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말레이시아를 동남아 공작거점으로 삼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말레이시아를 사치품을 조달하는 등 국제 제재와 감시를 피하는 우회로로 많이 활용해 왔었지만 말레이시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히 문철명의 미국 송환은 북한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다 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말레이시아 등지에 페이퍼 컴퍼니 등을 이용해 자금세탁과 밀수를 하는 등 대북 제재의 ‘틈’을 활용해 왔는데 문철명의 미국 송환으로 인해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의 비밀루트가 고스란히 노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대사관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를 떠난 북한인 가운데는 현지에서 활동해온 인물들이 포함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정황을 그대로 설명해 준다.


그래서 북한이 자국민 한 명의 신병 인도를 이유로 단교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며 ‘셀프 고립’에 나선 것은 말레이시아에서 대북 제재 회피 수단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을 우려해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말레이시아 대사관 철수 이후]


북한에게 있어서 말레이시아 대사관의 철수는 그리안해도 최악의 상황으로 몰린 김정은에게는 더욱 치명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주 중요한 사치품 등의 수입이나 외화벌이 창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 우호적인 그룹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이기도 한 말레이시아와의 국교 단절로 북한의 외교적 입지는 한층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말레이시아에 대한 북한의 행동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이번 단교선언은 북한과 상대적으로 우호적(cordial) 관계의 국가들을 포함해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유엔 대북제재를 집행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이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이어 “북한 국적인이 대북제재 위반혐의로 미국에 인도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일은 대북제재 집행에서 중요한 선례(precedent)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연구기관인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제이슨 바틀렛 연구원도 1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제 3국이 자국 내 북한 범죄인을 국제법을 따라 다루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 범죄인을 미국에서 재판할 수 없는데, 이번 경우에 말레이시아는 국제법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어서 아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틀렛 연구원은 “말레이시아의 이번 조치로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에 악용되어 온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이 지역 내 북한의 불법활동 확산을 방지하는데 말레이시아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마디로 북한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인도한 북한 문철명이 미국 FBI에 구금됐다고 AP통신이 2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문철명은 재판을 받기 위해 미국에 넘겨진 첫 북한 사람이라고 AP 통신은 전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베이징의 주중 북한대사가 바뀌었다. 리룡남 신임 대사가 지난달 18일 입국한 후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격리됐다가 본격적으로 대사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임무를 마친 전임 지재룡 대사가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베이징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상하이로 떠난 말레이시아 대사관 직원들과 북한 주민들 역시 중국에 당분간 체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과연 북한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상하이에 당분간 있다가 또다른 지역으로 파견될지도 주요 관심거리다. 그들의 주 목적은 외교가 아니라 김정은에게 상납할 사치품 획득과 외화벌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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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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