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먼저 풀어라”…7일 제안의 핵심]
이란이 전쟁을 끝내겠다며 미국에 이른바 ‘7일 로드맵’을 내놨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문제는 제안의 순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부터 여는 대신 미국이 먼저 해상봉쇄와 원유 제재를 풀어주면 그 뒤 해협을 개방하고 핵협상에 들어가겠다고 요구했다. 그런데 동시에 이란 고위 당국자는 핵 프로그램에서는 양보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이 핵심 압박수단부터 내려놓고 이란의 후속 이행을 기다려야 하는 구조인 만큼 워싱턴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7일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참모들에게는 11월 중간선거가 끝난 뒤 이란 폭격을 재개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란이 내놓은 방안은 단순히 “7일 뒤 호르무즈를 열겠다”는 제안이 아니다.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미국이 필요한 조건을 받아들이면 다음 날부터 7일간의 이행 절차가 시작되고 마지막 날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설명했다. 이란 측 구상에는 미국의 해상봉쇄 해제와 원유 제재 완화, 동결자산 문제 등이 포함되며 핵 프로그램에 대한 본격 협상은 호르무즈 개방 이후로 넘어가는 구조다.
[미국 입장에서는 ‘지렛대를 먼저 내려놓으라’는 요구]
바로 이 순서가 협상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현재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다. 그런데 이란 제안대로라면 워싱턴은 이 압박수단을 먼저 완화한 뒤 테헤란이 일주일 뒤 호르무즈를 개방할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야 한다. 반면 미국은 핵 문제까지 포함한 핵심 현안을 처음부터 함께 논의하기를 원하고 있다. 결국 양측의 교착은 단순한 ‘휴전 찬반’보다 누가 먼저 핵심 카드를 내려놓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미국이 서둘러 양보할 이유가 줄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해상봉쇄와 경제제재가 이란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이란을 경제적으로 더욱 고립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 입장에서 현재의 압박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굳이 먼저 봉쇄를 풀어 협상력을 낮출 이유가 없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결정적인 한마디…“핵에서는 양보 없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테헤란에서 나온 핵 관련 발언이다. 로이터는 25일 이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호르무즈 재개방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란은 핵 프로그램에서 유연성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호르무즈 역시 미국이 이란의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전까지 폐쇄된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핵심 이유를 보여준다. 트럼프가 이번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내세운 최우선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 차단이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에 봉쇄와 제재부터 풀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워싱턴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핵 문제에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의 핵심 지렛대를 먼저 내려놓은 뒤 가장 어려운 협상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트럼프는 이미 이란의 이행 가능성을 의심한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결국 합의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테헤란이 자신의 요구를 실제로 충족할 것인지에 회의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유엔총회에서도 이란 문제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중간선거 때문이 아니라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이란과 합의를 통해 재건의 길을 열 것인지, 아니면 훨씬 강력한 군사적 선택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극단적인 선택지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바다만 막힌 게 아니다…이번에는 하늘길]
그런데 협상이 교착되는 사이 미국의 압박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8일 ‘경제적 왕따작전(Operation Economic Outcast)’ 아래 이란 항공산업을 지원한 36개 대상에 제재를 부과했다. 재무부는 이란 항공망이 무기와 인력, 불법 화물 수송에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외국의 중개회사와 우회 조달망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이란 항공사들의 국제노선도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WSJ은 “아제르바이잔·이라크·조지아·튀르키예·오만 등에서 이란 항공편 취소와 급유·지상서비스 제한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이란 항공편을 받아들이고 있어 완전한 고립은 아니지만, 미국이 해상에 이어 항공망까지 동시에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란 경제에 새로운 부담이다.
[UAE까지 이란 항공편 차단]
특히 UAE가 움직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알자지라는 “UAE 민간항공 당국은 미국의 새 제재를 근거로 이란 항공사가 운항하는 UAE 출·도착 항공편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면서 “UAE는 오랫동안 이란이 국제경제와 연결되는 핵심 관문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항공편 감축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튀르키예에서도 금융 연결망에 변화가 나타났다. 튀르키예 은행감독당국은 이란 멜라트은행 이스탄불 지점의 영업허가를 취소했다. 로이터는 해당 결정문 자체에는 미국의 압박이 이유라고 명시돼 있지 않다고 전했지만, 조치가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 대이란 경제 압박 강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WSJ “미국, 이란을 세계에서 떼어내는 압박 캠페인”]
그리고 26일 WSJ은 한 단계 더 나아간 단독보도를 내놨다. “미국 재무부 당국자가 중동과 유럽을 순방하면서 각국에 이란 항공편과 금융 연결을 끊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란을 국제 금융·교통망에서 고립시키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이 같은 압박으로 여러 지역 정부가 테헤란과의 항공·금융 관계를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이란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변화다. 지금까지 이란은 장기간의 서방 제재에도 중국·러시아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육상·항공·금융망을 활용해 외부와의 연결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해상봉쇄에 이어 항공과 금융 통로까지 동시에 좁아질 경우 제재를 우회할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 “세계와 완전히 단절됐다”고 표현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란을 외부 경제망에서 단계적으로 떼어내려는 미국의 전략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테헤란의 대답은 “핵 양보 없다”]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 테헤란에서 나오는 메시지다. 한쪽에서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미국 중간선거 이전 합의를 희망하며 외교적 출구를 찾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핵 프로그램에 대한 양보는 없다는 강경론이 나온다. 로이터가 인용한 이란 고위 관리는 “미국이 호르무즈 제안을 받아들여도 핵 문제에서는 유연성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런 입장이 유지된다면 미국이 이란의 7일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게 된다. 워싱턴이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를 먼저 풀어준 뒤 호르무즈 개방을 기다리고, 그 이후 다시 핵 문제를 처음부터 협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 강경파의 핵 문제 고수는 그야말로 지신들이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대단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고, 미국의 공격 명분만 만들어주는 꼴이라 할 것이다.
[이제 시선은 11월 3일 이후로 향한다]
그래서 앞으로 가장 주목되는 시점은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11월 3일이다. WSJ이 인용한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참모들에게 선거 이후 이란 폭격을 다시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이란 입장에서 시간이 반드시 자신들의 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해상봉쇄가 계속되는 가운데 항공·금융망까지 압박받고 있고, 미국은 이란이 핵 문제에서 더 큰 양보를 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이란은 호르무즈라는 마지막 대형 지렛대를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앞으로 한 달여 동안 테헤란이 먼저 실질적인 카드를 내놓느냐, 아니면 경제적 고립을 감수하면서 11월 이후 다시 군사적 충돌 위험을 맞느냐가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Why Times Insight]
이번 협상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7일’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순서와 신뢰다. 이란은 미국이 먼저 해상봉쇄와 경제제재 등 핵심 압박수단을 완화하면 호르무즈를 개방하고 그 이후 핵협상으로 넘어가겠다고 제안했다. 반대로 미국은 핵 문제까지 포함한 핵심 현안을 처음부터 함께 다루기를 원한다. 그리고 가장 문제는 미국은 이란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이란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현재 효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는 압박수단을 먼저 내려놓고 이란의 후속 이행을 기다리는 선택이 된다. 더구나 이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제안을 수용하더라도 핵 문제에서는 양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놓고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조건 그대로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
더구나 미국은 협상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압박을 계속 강화할 수 있다. 해상에서 시작된 압박은 항공과 금융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UAE와 튀르키예 등 이란과 경제적으로 연결돼 있던 국가들에서도 실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라는 통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정확한 표현은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고립망이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테헤란이 직면한 선택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호르무즈를 먼저 열고 핵 문제에서 협상의 공간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선제적 압박 완화를 요구하면서 버틸 것인지가 핵심이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해상에 이어 항공·금융으로 확대되는 압박을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협상파가 강경파를 제압하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가가 앞으로 이란의 미래를 결정짓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11월 3일까지 남은 시간은 미국만의 정치적 시계가 아니라 이란에도 협상과 장기 대치 가운데 선택을 요구하는 시계가 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