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6대3 결정…트럼프 선거개혁에 일단 길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국가비상사태’라는 초강력 카드까지 꺼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이 선거제도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느냐는 권한 논쟁이지만, 트럼프가 던진 질문은 그보다 근본적이다. 우편투표와 유권자 자격 검증을 지금 시스템 그대로 두고 중간선거를 치러도 되는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지난 3월 서명한 행정명령 14399호는 연방정부가 보유한 자료를 활용해 시민권과 연방선거 투표자격을 검증하고, 우편투표의 발송과 관리 과정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연방대법원도 24일 6대3 결정으로 행정부의 일부 조치를 막았던 하급심 명령을 해제하면서 트럼프에게 일단 길을 열어줬다. 그런데도 트럼프 진영에서 ‘국가비상사태’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도대체 트럼프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미국의 CBS News는 24일,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긴급신청을 6대3으로 받아들여 매사추세츠 연방지법 인디라 탈와니 판사가 지난 6월 내렸던 금지명령을 해제했다”면서 “이에 따라 국토안보부(DHS)가 연방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주별 투표자격자 명단을 만드는 작업 등을 추진할 길이 열렸다”고 보도햇다. 백악관은 이를 “미국 선거의 안전을 위한 중대한 승리”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인을 뽑는 것은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트럼프가 문제 삼은 것은 ‘투표 이후’가 아니라 ‘투표 이전’]
그렇다면 트럼프는 무엇을 바꾸려는 것일까. CBS News는 “핵심은 사후 적발에서 사전 검증으로의 전환”이라면서 “트럼프의 3월 31일 행정명령은 미국 시민에게만 연방선거 투표권이 있다는 원칙을 앞세우면서 사회보장국(SSA) 자료와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SAVE 시스템 등을 활용해 신원과 시민권, 연방선거 투표자격 검증을 강화하도록 했다”고 짚었다. 연방법상 비시민권자가 연방선거에 투표하는 것은 이미 불법이지만, 트럼프는 각 주의 선거인 명부와 연방정부가 보유한 시민권 자료를 더욱 적극적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CBS News는 이어 “여기에 USPS(United States Postal Service, 미국 우정공사)를 통한 우편투표 관리 강화도 포함됐다”면서 “최종 USPS 규칙에는 연방선거 우편투표 봉투에 일정한 디자인과 바코드 요건을 적용하고 주 선거당국이 우편투표 대상자 관련 자료를 온라인 시스템에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겼다”고 밝혔다. “다만 USPS는 자신들이 유권자의 투표자격을 결정하거나 선거인 명부를 관리하고 개표하는 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다”면서 “결국 트럼프의 구상은 ‘문제가 생긴 투표를 선거가 끝난 뒤 찾아내는 것보다 투표용지가 움직이는 단계부터 추적성과 검증 능력을 높이자’는 방향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렇다면 실제 우편투표는 위험한가?]
여기서는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비시민권자의 투표와 우편투표 부정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 미국 선거 결과를 뒤집을 정도의 광범위한 비시민권자 투표나 우편투표 부정이 확인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부정선거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확인된 적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곧 우편투표 시스템에 위험요인이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미 사이버안보·인프라보안국(CISA)의 위험평가에서도 “우편투표 환경에서는 유권자가 현장에 없기 때문에 선거인등록 데이터가 변조되거나 삭제될 경우 현장투표보다 문제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등록정보의 무결성을 공격하는 행위는 우편투표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위험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쟁점은 “부정이 이미 대규모로 발생했느냐”와 “부정이나 오류가 발생할 구조적 가능성을 어디까지 사전에 차단할 것이냐”는 서로 다른 문제다. 트럼프가 집중하는 것은 후자에 가깝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이겼는데 왜 ‘국가비상사태’인가?]
그렇다면 트럼프는 대법원에서 이겼는데도 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일까? 바로 여기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선거 문제와 관련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오랜 참모인 스티브 배넌 역시 지난달 29일 자신의 방송에서 8월 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물론 배넌의 발언은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니며, 트럼프 역시 실제 선포 방침을 공식 발표한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는 ‘선포 임박’이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에 대해 CBS News는 “그 배경에는 시간이 있는데, 11월 3일 중간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행정명령→하급심 금지→항소→대법원 긴급신청→USPS 규칙 제정→추가 소송이라는 법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행정부 입장에서 정상적인 사법절차가 계속될 경우 자신들이 추진하는 새로운 선거보안 체제를 11월 선거 이전에 실제로 작동시키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기 떄문”이라 짚었다. 따라서 국가비상사태 카드는 법적·행정적 시간표가 중간선거 시계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거론되는 최후의 승부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법원 판결 하루 뒤 또 법원 충돌…시간은 더 촉박해졌다]
실제로 대법원 결정으로 모든 장애물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탈와니 판사는 25일 “USPS가 우편투표 관련 최종규칙을 확정한 것이 자신의 기존 전국 단위 금지명령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규칙 자체를 새로 차단하지는 않았다. 별도의 소송에서 내려진 금지명령을 둘러싼 법적 다툼도 계속되고 있어 USPS 관련 정책이 11월 중간선거에 어느 범위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 선거가 11월 3일 하루에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P는 “일부 주에서는 군인과 해외 유권자를 위한 우편투표용지가 조만간 발송되기 시작한다”면서 “선거당국 입장에서는 봉투 디자인과 데이터 시스템, 유권자 안내, 직원 교육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어려워진다”고 짚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법적 승패 못지않게 ‘언제 결정되느냐’가 중요한 상황이 됐다.
[국가비상사태 선포하면 선거제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
그렇다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선거제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1976년 제정된 국가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ies Act)은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언한다고 해서 백지수표 같은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주는 법이 아니다. 대통령은 의회가 기존 법률에 마련해둔 비상권 가운데 적용 가능한 법적 권한을 찾아 발동해야 한다. 브레넌센터가 집계한 비상사태 관련 법률상 권한은 137개에 달하지만, 비상사태 선포 자체만으로 선거를 취소하거나 다시 실시하고 대통령이 마음대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 헌법 1조 4절이다. 연방 상·하원 선거의 시기·장소·방법을 정하는 기본 권한은 주에 있고, 의회가 이를 법률로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대통령은 여기에 명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트럼프가 실제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선거보안 관련 연방권한을 확대하려 한다면 곧바로 “대통령의 비상권이 어디까지 선거행정에 미칠 수 있는가”라는 전례 없는 헌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 선거제도 전체를 흔들 논쟁으로]
따라서 국가비상사태가 실제 선포된다면 파장은 단순히 이번 중간선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 선거행정은 주와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고 연방정부가 일정한 법적 기준과 지원 역할을 담당하는 분권적 구조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추진하는 시민권 데이터 연계와 USPS의 전국적 우편투표 기준이 정착한다면 연방정부가 선거인 자격 확인과 우편투표 관리에 관여하는 범위가 지금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측에서는 이를 주마다 제각각인 선거보안 기준을 보완하고 ‘미국 시민만 미국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원칙을 강화하는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민주당 주정부와 시민단체들은 연방 행정부가 대통령에게 헌법상 주어지지 않은 선거관리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이번 충돌의 본질은 단순한 ‘트럼프 대 민주당’의 싸움이 아니다. 미국 선거의 신뢰성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검증할 것인가라는 미국 선거제도 자체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Why Times Insight]
결국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카드를 이해하려면 ‘선거를 장악하려 한다’는 주장과 ‘부정선거를 막으려 한다’는 주장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트럼프가 미국의 선거 시스템, 특히 우편투표와 유권자 자격 검증 체계가 충분히 안전한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를 11월 중간선거 전에 연방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손보려 한다는 데 있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방향은 투표가 끝난 뒤 부정 여부를 조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권 관련 연방 데이터와 선거인 명부를 대조하고 우편투표의 발송·회수 과정에 대한 추적성을 높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투표 이전 단계부터 줄이는 ‘사전 검증 체제’에 가깝다.
문제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24일 행정부에 일단 길을 열어줬지만 핵심적인 법적 분쟁은 끝나지 않았고, 25일에도 USPS 규칙을 둘러싼 법원 충돌이 이어졌다. 정상적인 사법절차가 계속된다면 트럼프가 원하는 새로운 선거보안 체제를 중간선거 이전에 완전히 가동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국가비상사태 카드가 거론되는 가장 현실적인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비상사태 선언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실제로 선포된다면 미국은 곧바로 ‘선거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비상조치인가, 아니면 헌법이 주와 의회에 부여한 선거관리 권한을 침범하는 것인가’라는 거대한 헌법적 충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느냐 여부만이 아니다. 2026년 중간선거를 계기로 미국이 ‘누가 투표할 자격을 검증하고, 누가 선거의 신뢰성을 최종 보증할 것인가’라는 선거제도의 근본 문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