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대통령, “우리가 이겼으니 끝내자”…역설적 승리 선언]
이란 대통령이 사실상 항복에 가까운 종전 신호를 보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를 ‘승리’이자 ‘명예로운 종전’으로 포장했지만, “힘과 존엄을 유지하고 있을 때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발언의 속뜻은 분명하다. 미국의 해상봉쇄와 초강력 제재로 이란 경제가 더 무너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전쟁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전날 테헤란에서 열린 의료계 행사에서 ‘우리가 힘과 존엄의 위치에 있는 지금 전쟁을 끝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면서 “그는 ‘전 세계가 우리의 승리를 인정하고 있다’며 미국이 학교와 병원, 기반시설을 공격해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으로는 승전 선언이지만, 발언의 결론은 전쟁 지속이 아니라 즉각적인 종전이었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과 체결한 잠정 양해각서에 대해서도 ‘명예롭고 가치 있는 합의’라고 옹호했다”면서 “그는 ‘합의문 어디에서도 이란의 항복을 의미하는 조항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모든 의무는 오히려 미국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고 짚었다. 이는 종전을 추진하면서도 국내 강경파가 제기하는 ‘굴욕 협상’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방어 논리로 볼 수 있다.
FT는 “그러나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면서 “실제로 전쟁을 계속해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서둘러 종전을 호소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결국 ‘힘과 존엄’이라는 표현은 승리의 증거라기보다 미국의 추가 압박이 시작되기 전에 체면을 지키며 빠져나갈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짚었다. 이는 공식적인 항복 선언은 아니지만, 경제적 현실에 떠밀린 사실상의 출구 요청으로 읽힐 수 있다.
[원유 수출 급감…이란의 생명줄이 막혔다]
페제시키안의 종전 호소 뒤에는 급격히 악화된 이란 경제가 있다. 켈러 집계를 인용한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의 8월 원유 선적량은 하루 약 53만4000배럴로, 2025년 평균 140만배럴보다 60% 이상 감소했다. 미국이 7월 13일 해상봉쇄를 다시 강화한 뒤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이란산 원유 수출은 사실상 멈췄으며, 중국 정유업체에 제시되는 9월과 10월 인도분 물량도 급감했다.
집계 방식에 따라 감소 폭에는 차이가 있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별도의 켈러 선적 자료를 인용해 “이달 일부 집계상 이란의 원유 선적량이 하루 28만7000배럴에 불과해 개전 전 약 200만배럴의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따라서 ‘7분의 1’은 모든 기관이 공유하는 단일 수치라기보다 특정 선적 기준의 집계이지만, 어느 자료를 적용하더라도 이란의 핵심 외화 수입원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국으로 향하던 이란산 원유도 빠르게 줄고 있다. 로이터는 “중국은 평상시 이란이 해상으로 수출하는 원유의 80% 이상을 사들였지만, 봉쇄 이후 산둥성의 독립계 정유업체들은 이란산 대신 브라질산과 이라크산 원유를 찾기 시작했다”면서 “과거 중국 구매자들을 끌어들였던 할인 가격도 사라지고 일부 이란산 원유가 오히려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될 만큼 공급망이 뒤틀렸다”고 밝혔다.
[“국민이 굶주리면 군사력도 소용없다”]
이란 지도부 내부에서도 경제 붕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란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란 의회의장이자 대미 협상 수석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이라크에서 기업인들을 만나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국민이 굶주리고 자금 순환과 경제성장, 국내 생산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최고위급 강경 정치인 입에서조차 ‘생존’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경제 압박이 체제 내부의 전략 판단까지 흔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고도 심각하다. AP통신은 “테헤란 상점에 물건은 진열돼 있지만 많은 가정이 식료품과 의약품을 살 돈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실업이 증가하고 화폐가치는 1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졌으며, 일부 가정은 과일과 단백질 식품, 여가생활을 차례로 포기하고 있다. 경제전망상 물가상승률은 약 70%,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대로 악화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의 해외 외환보유액 접근까지 막고 있다는 이란 당국의 설명도 나왔다. FT는 “원유 판매대금이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기존 외환마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면, 이란 정부가 필수 수입품과 연료를 확보하고 환율을 방어할 능력은 급속히 약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페제시키안이 군사적 승리를 강조하면서도 종전을 서두르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짚었다.
[베센트 “봉쇄와 제재의 원투 펀치”…24일 공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20일 CNBC 인터뷰에서 “우리에게는 봉쇄가 있고, 여기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가 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를 “원투 펀치”라고 부르면서 “이란에서 통할 것이며 우리는 이 정권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제재 내용은 24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이번 조치의 실질적인 표적은 이란뿐 아니라 이란산 원유를 사들이고 금융·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국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히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의 정유업체와 은행, 해운회사에 대한 2차 제재가 얼마나 강하게 적용되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베센트는 중국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걸프 지역에 의존하는 만큼 미국의 조치에 협조하는 것이 중국에도 이익이라고 압박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제재와 압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정치적·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이란산 원유 구매를 계속할지, 아니면 미국 금융시장과 9월 미·중 정상회담을 고려해 거래를 축소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란으로서는 중국의 외교적 반발보다 중국 정유업체들이 실제 구매를 지속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은 종전, 군 지휘부는 “파괴적 대응”]
페제시키안이 종전을 호소한 것과 달리 이란 군 지휘부는 보복 위협을 높였다. 로이터에 따르면, 알리 압돌라히 이란군 참모총장은 지상·해상·공중·방공·사이버 전 영역에서 대비 태세를 갖추고 미국의 새로운 위협에 “파괴적이고 응징적인 타격”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의 출구 모색과 대비되는 군부의 강경 노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호르무즈해협의 긴장도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는 “켈러의 초기 집계에 따르면 20일 해협을 통과한 상품 운송선은 7척으로 전날 14척의 절반에 그쳤다”면서 “이 가운데 초대형 원유운반선과 LNG선은 한 척도 없었는데, 전쟁 전 세계 원유와 LNG 교역의 약 20%가 지나던 해상 동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이란 지도부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두 갈래다. 미국의 보수성향 매체인 뉴스맥스는 “대통령과 협상 라인은 더 큰 경제적 붕괴가 닥치기 전에 ‘명예로운 종전’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군 지휘부는 협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전면 보복을 위협한다”면서 “그러나 갈리바프 의장마저 ‘국민이 굶주리면 군사력도 소용없다’고 인정한 이상, 이란의 강경 수사는 이전과 같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정권의 절박함을 감추기 위한 방어막으로 볼 여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Why Times Insight]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항복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와 전략적 현실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우리가 이겼다”면서 “지금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승전국의 자신감이라기보다, 더 무너지기 전에 승리라는 명분을 만들어 철수하려는 출구전략에 가깝다. 공식적인 항복문서에 서명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는 사실상의 백기를 내보인 셈이다.
특히 이번 발언은 미국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공개하기 불과 사흘 전에 나왔다. 원유 수출과 외화 유입이 이미 급감한 상황에서 중국 기업까지 2차 제재의 벽에 막힌다면 이란은 전쟁 수행 능력뿐 아니라 식료품·연료·의약품을 수입할 능력까지 위협받게 된다. 페제시키안이 강경파를 향해 던진 메시지는 결국 “지금 끝내지 않으면 앞으로는 존엄을 지킬 기회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마지막 경고인 것이다.
다만 이란이 당장 무조건 항복하거나 정권이 곧 붕괴한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이란은 오랜 제재 속에서 구축한 우회무역망과 강력한 국내 통제체제를 갖고 있고, 군부도 여전히 호르무즈해협과 역내 미군기지를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24일 미국이 공개할 제재가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를 실제로 차단할 수 있는지가 다음 국면의 분수령이다. 중국이라는 마지막 생명줄마저 끊어진다면, 페제시키안의 ‘명예로운 종전론’은 온건파의 주장을 넘어 이란 정권 전체가 피할 수 없는 생존전략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