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율 최대 낙폭·본토 연쇄 타격·크렘린 이반설까지]
러시아인들이 ‘저주받은 달’로 부르는 8월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26년 권력체제가 심상치 않은 압박을 받고 있다. 친크렘린 여론조사에서조차 지지율이 우크라이나 전면침공 이후 가장 큰 주간 낙폭을 기록한 가운데, 정유시설과 물류망을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본토 공격은 전쟁의 비용을 러시아인의 일상으로 밀어 넣고 있다. 여기에 푸틴 측근들이 전쟁 책임을 그에게 돌리기 시작했다는 주장과 크렘린 엘리트의 체제 피로 진단까지 겹쳤다. 푸틴이 당장 무너진다는 뜻은 아니지만, 움직이지 않는 ‘녹슨 볼트’처럼 굳어진 체제의 주변부에서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경고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인들은 이미 8월을 저주받은 달이라고 부른다”면서 “이번 8월이 푸틴에게 가장 암울한 달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푸틴이 장기집권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군사적 위기를 넘겼지만, 지금처럼 지지율 하락과 연료난, 우크라이나의 본토 타격, 엘리트 사회의 불안이 한꺼번에 겹친 적은 드물다”는 것이 더타임스의 지적이다.
이런 파격적인 프레이밍의 배경에는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최근 수주 사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인된 네 갈래의 균열 징후가 있다. ▲지지율 조사에서 나타난 이례적 낙폭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기한 크렘린 내부 이반설 ▲러시아 특유의 '8월 징크스'라는 역사적 패턴 ▲크렘린 정세 전문가의 구조적 위기 진단이 그것이다. 아래에서 각 근거를 순서대로 검증한다.
[근거 ① 지지율 붕괴… "2022년 이후 최대 낙폭"]
가장 직접적인 경고음은 여론조사에서 나왔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친크렘린 성향으로 분류되는 러시아 여론재단(FOM)이 7월 10~12일 실시한 조사에서 푸틴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66%로 나타났다”면서 “일주일 전의 71%보다 5%포인트 급락한 것으로, 2022년 부분동원령 발표 이후 가장 큰 주간 낙폭”이라고 짚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국영 여론조사기관 러시아여론연구센터(VTsIOM)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됐다”면서 “푸틴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6월 중순 70.4%에서 6월 말 66.9%, 7월 첫째 주 66.0%, 둘째 주에는 65.1%까지 연속 하락했으며, 신뢰도 역시 같은 기간 76.7%에서 71.0%로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절대 수치만 보면 60%대 중반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 따라서 이를 당장 ‘정권 붕괴’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론 통제와 전쟁 반대 발언에 대한 처벌이 일상화된 러시아에서, 그것도 친정부 조사기관의 수치가 이처럼 빠르게 떨어졌다는 점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모스크바타임스는 “전국적인 연료 부족, 인터넷 통제 강화, 물가 상승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으로 전쟁의 비용이 러시아인의 일상에 직접 침투하기 시작한 점을 주요 배경으로 꼽고 있다”면서 “푸틴 체제를 떠받쳐온 ‘전쟁은 멀리 있고, 국가는 국민의 일상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짚었다.
[근거 ② 흔들리는 크렘린 내부… 측근 이반설까지]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은 이런 불안에 기름을 붓고 있다. 공격 대상은 군사기지와 정유시설을 넘어 러시아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와일드베리스의 물류창고로까지 확대됐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들 시설이 드론 부품과 항법장치 등 러시아군에 필요한 물자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물류창고 공격이 곧바로 러시아 금융 시스템을 흔든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유시설과 철도, 물류망이 동시에 공격받으면 군수품 공급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 등 실물경제 전반에 충격이 번질 수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 국민에게는 “국경 안쪽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를 심어준다.
푸틴은 오랫동안 자신을 러시아의 혼란을 끝내고 질서와 안전을 회복한 지도자로 포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시작한 전쟁 때문에 러시아의 정유시설이 불타고, 주유소에는 긴 줄이 생기며, 대형 물류창고까지 공격받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전쟁의 포성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상 가까이 접근할수록 푸틴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안정의 신화’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크렘린 내부가 흔들리고 있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적이 크렘린을 흔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7월 22일 화상연설에서 “전선 상황과 우리의 장거리·중거리 타격이 푸틴 주변에 새롭고 매우 유독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는 이어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것도 푸틴 한 사람의 책임이며, 러시아인들이 겪는 손실 역시 푸틴 한 사람의 책임”이라면서 “그의 측근들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와 우리의 파트너들에게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크렘린 내부에서 전쟁 책임을 푸틴 개인에게 돌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의미가 된다. 전쟁이 성공할 때는 승리의 공을 푸틴에게 돌리던 측근들이 상황 악화에 대비해 책임 분산과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젤렌스키는 구체적인 인물이나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다. 전쟁 당사자의 심리전 성격이 포함된 발언인 만큼 ‘크렘린 이반이 확인됐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젤렌스키가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꺼냈다는 사실 자체가 푸틴 주변의 균열설을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근거 ③ 러시아가 두려워하는 ‘검은 8월’]
세번째 근거는 역사적 패턴이다. 러시아 특유의 ‘8월 징크스’가 바로 그것이다. 더타임스는 “러시아에서 8월은 오랫동안 ‘검은 8월’ 또는 ‘저주받은 8월’로 불려왔다”면서 “1991년 8월에는 소련 강경파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2000년 8월에는 푸틴 집권 첫해에 쿠르스크 핵잠수함이 침몰했으며, 2009년 8월에는 사얀-슈센스카야 수력발전소 폭발로 75명이 숨졌고, 2024년 8월에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주로 진격해 푸틴에게 굴욕을 안겼다”고 밝혔다.
물론 특정 달에 발생한 사건들을 묶었다고 해서 2026년 8월에도 반드시 대형 위기가 터진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러시아는 이미 연료난과 본토 타격, 지지율 하락과 전쟁 장기화가 겹친 상태다.
더타임스는 “여기에 개전 이후 이어진 본토 타격 패턴이 더해진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은 정유시설을 넘어 러시아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와일드베리스의 물류창고까지 겨냥하며 금융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이 ‘매일 국경 안쪽에서 불타는 러시아’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짚었다. ‘검은 8월’이라는 역사적 기억이 러시아 사회의 불안과 결합할 경우 작은 사건도 체제 위기의 상징으로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 ④ 푸틴은 움직이지 않고, 체제가 먼저 뒤틀린다]
네 번째 근거는 크렘린 정세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망명 정치분석가 타티야나 스타노바야의 진단이다. 러시아 정치분석가 타티야나 스타노바야는 현재의 푸틴 체제는 ‘녹슨 볼트’와 같다“고 비유했다. “아무리 힘을 가해도 볼트 자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대신 주변 구조물이 하중을 떠안으면서 균열과 변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푸틴이 압박을 받는다고 해서 전쟁 방침을 바꾸거나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푸틴이 움직이지 않을수록 군부와 정보기관, 지방정부와 경제 엘리트가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되고, 엘리트들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보다, 최고 권력자가 현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푸틴 체제가 당장 붕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군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5분의 1을 장악하고 있으며,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계속할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조직화된 야권은 사실상 제거됐고, 보안기관과 관료조직도 푸틴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고 있다.
위기감이 커질수록 러시아 사회가 평화를 요구하기보다 오히려 강경 노선으로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 전면침공 이후 러시아와 점령지에 스탈린 동상과 흉상이 잇따라 들어선 현상은 이런 역설을 보여준다. 불안이 커질수록 자유와 개혁보다 강력한 통제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 이후에도 기다리는 것은 ‘푸틴의 복사본’]
더타임스는 “설령 이번 위기가 실제 권력투쟁으로 번지더라도 러시아의 민주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자유주의 야권 지도부가 대부분 사망하거나 투옥·망명한 상황에서 후계자는 군부와 정보기관, 관료집단 등 기존 권력 엘리트 내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23년 사망한 크렘린의 전 정치기획가 글렙 파블롭스키는 생전 푸틴 체제가 무너진 뒤 어떤 체제가 등장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 체제의 복사본”이라고 답했다. 푸틴 개인이 흔들리더라도 푸틴주의를 떠받치는 안보기관과 권위주의적 통치구조는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Why Times Insight]
이번 ‘저주받은 8월’의 진짜 위험은 푸틴이 갑자기 권좌에서 무너지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변화는 푸틴 체제를 떠받쳐온 ‘안정과 안전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더 이상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선에 머물지 않고 러시아인의 주유소와 인터넷, 물류창고와 도시 상공으로 들어오고 있다.
친정부 기관의 조사에서도 나타난 지지율 하락은 비교적 분명한 사실이지만, 젤렌스키가 주장한 측근 이반설은 아직 독립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검은 8월’ 역시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한 강력한 서사일 뿐,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하는 객관적 법칙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푸틴 정권 붕괴 임박’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러나 푸틴이 움직이지 않을수록 그를 떠받치는 시스템이 먼저 뒤틀릴 위험은 커진다. 체제가 균열을 막기 위해 더욱 억압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러시아의 위기는 푸틴의 몰락이 아니라 ‘더 강경한 푸틴주의’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푸틴 이후에 기다리는 것이 민주화가 아니라 또 하나의 ‘푸틴 체제 복사본’이라면, 러시아의 검은 8월은 한 달짜리 징크스가 아니라 장기적 체제 위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