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오른쪽)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고인이 워싱턴DC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이 날 공표했다. 연준은 성명을 통해 고인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통화 정책과 경제학 이론 분야에서 그가 이룩한 업적은 미국 사회 전반과 경제계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전했다. 아울러 고인이 심각한 경제적 격변기와 번영기를 모두 거치는 동안 중앙은행을 안정적으로 이끌었으며,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1987년 처음 임기를 시작한 이후 2006년까지 총 19년 동안 연준의 수장 자리를 지켰다. 이는 미국 역사상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전 의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재임 기록이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를 시작으로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정권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4대 정권을 관통하며 세계 경제의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빛나는 경제적 성과와 어두운 유산이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중 가장 큰 성과로는 1991년 봄부터 10년간 이어진 미국 경제의 전례 없는 장기 호황과 증시의 가파른 상승세가 꼽힌다. 과거 세계 경제를 위협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은 그의 통제 아래 안정되었고, 실업률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4%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취임 직후 발생한 역사적인 증시 폭락 사태인 '블랙 먼데이' 당시, 신속하게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시장의 공포를 조기에 진정시킨 일화는 그의 과감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장기적인 번영을 주도하면서 고인은 시장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얻었다. 그의 언행 하나에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쳤으며, 그가 두툼한 가방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서는 모습 자체가 금리 조정을 암시한다는 '서류가방 지표'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고인은 수많은 통계 자료를 직접 정밀하게 분석하는 정력적인 업무 방식으로도 유명했다.
반면 그가 퇴임한 지 2년 뒤인 2008년에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서는 책임론을 피하지 못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자산 붕괴로 이어진 당시 위기는 고인의 재임 시절 유지된 저금리 기조와 금융 시장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신뢰한 감독 소홀이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당시 장기간 이어진 완화적 통화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키웠고, 규제 완화 흐름 속에서 금융사들이 위험성이 높은 파생상품을 무분별하게 출시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고인 역시 훗날 금융기관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명백한 오류였다고 과오를 인정했다.
그는 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극도로 모호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과거 의회 청문회에 출석했을 당시 "내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이 들은 내용이 내가 의도한 본뜻이 아닐 수 있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고인이 이끌던 연준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자금난에 봉착한 한국의 단기 채무 만기를 연장하도록 미국계 은행들을 설득하는 막후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뉴욕 출신인 고인은 어린 시절 수학에 천재적 소질을 보였고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유가족으로는 언론인 출신의 배우자 안드레아 미첼 여사가 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