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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칼럼] 평범한 청년들이 홈리스가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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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칼럼] 평범한 청년들이 홈리스가 된 이야기 무분별한 청년지원, 오히려 홈리스로 만들 수도 있다! 2019-01-20
옥승철 arttowerq@hotmail.com


▲ 홈리스가 된 청년들 [Wikimedia]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 동기 중 한명이 동티모르 출신이었다. 돈이 별로 없었던 이 친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부자 동네에 있으면서도 렌트비가 매우 저렴한 곳을 발견했다.


곧바로 집 주인에게 전화를 해 그 집 주인을 만났다. 그 집은 1800년대 빅토리안 시대에 지어진 집으로 그 시대에 지어진 집들은 벽돌로 지어져 튼튼하고 예술성을 가미하였기 때문에 현제 시세로 몇 십 억이 넘을 정도로 상류층들이 거주할만한 집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집의 방을 구하려면 한 달에 몇 백 만원을 내야 하지만 집주인은 의외로 그 친구에게 40만원 정도의 그야말로 헐값을 제안하였다.


깜짝놀란 이 친구가 ‘왜 이렇게 가격이 저렴하냐’고 물었더니 집주인은 그 친구를 자기 방에 데려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사방의 벽에 붙은 신문과 종이 그리고 법에 관련된 책들이 빼곡히 붙어 있는 집 주인의 방에서 이 청년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70대인 집주인은 옥스퍼드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젊었을 때부터 그 건물에 살면서 집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그 집의 원래 주인은 나이지리아의 어느 부족장이었는데 그 집주인이 나이지리아로 돌아가더니 몇 십년 넘게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몇 십년간 집 주인을 대신해 집을 관리하고 세입자들에게 렌트비를 받아 정부에 세금을 냈다. 그러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인이 없는 집에 대한 소유권을 청구할 수 있는 영국 법을 활용해 집 주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는 엄밀히 따지자면 집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와 같은 위치였다.


▲ 옥스퍼드의 부유한 동네에 있는 빅토리안 시대의 집 [옥승철]


문제는 직장을 갖고 살던 세입자들이 이 집이 법적인 소유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유주가 없기 때문에 세를 내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세를 낼 필요가 없어진 이들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마저 때려 치우더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은 홈리스(노숙인)으로 변해갔다는 것이었다.


집세가 비싼 영국에서는 집값을 내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돈을 벌 필요가 없어지자 직장을 그만두더니 급기야는 여기저기 돈과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원래 이 집의 방은 6개였는데 그 중에서 4개의 방에 거주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홈리스로 변하였지만 집 주인 노릇을 하는 이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합법적으로 쫓아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홈리스가 된 그 세입자들은 전혀 돈도 내지 않고 십년이 넘게 살고 있었고 그 집 주인은 재판을 통해 법적인 소유주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왜 평범했던 세입자들이 갑자기 홈리스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한 가지 가설은 이것이었다. 평범했던 세입자들이 갑자기 홈리스가 되었던 이유는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였다. 열심히 일해서 살 곳을 구해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할 동기가 빠르게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옥스퍼드에서는 구걸을 해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전문 홈리스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 집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장애인 및 노약자 등 스스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지원 정책을 펼 때 정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특히 지원정책은 사람의 일할 동기를 빼앗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을 더 할 수 있게끔 만드는 지원정책이어야 하고, 또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 한정해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라고 해서 무조건적 지원은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청년들에게 지원이란 그들이 더 노력할 수 있게끔, 노력하지만 일어설 수 없을 때 그들을 세워주는 역할에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서울시를 비롯하여 성남시 등의 지자체들이 청년수당을 주고 있다. 하지만 청년이라고 해서 이렇게 무조건적 지원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일하고 노력할 동기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차라리 청년들에게 인생의 사각지대라고 여겨지는 졸업 후 취업까지의 기간 동안 취업과 창업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지원해주거나 적은 임금을 받으며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에게 지원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옥스퍼드에서 듣고 본 홈리스 이야기처럼 청년들에 대한 포풀리즘적 지원은 대한민국 젊은 청년들을 한순간에 도태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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