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러시아, 더 공개하라”…美, 결국 공식 외교압박 준비]
러시아 시베리아의 페스트 연구기관에서 28세 여성 연구원이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숨진 사건이 단순한 지역 감염병 사고를 넘어 미·러 간 생물안보 현안으로 번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까지 추가 감염 징후가 없으며 국제적 확산 위험도 매우 낮다고 평가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정보 공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세계에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미국이 상황을 ‘시간 단위’로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사건의 핵심은 ‘페스트가 확산되고 있는가’보다 ‘28세 연구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러시아는 왜 그 사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6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연구원 사망 사건에 관한 추가 정보를 요구하는 공식 외교 데마르슈(démarche)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차원을 넘어 미국 정부가 러시아에 공식 설명을 요구하는 외교 현안으로 격상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이번 사건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의 정보 공개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국제보건규칙(IHR)에 따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보건 사태에 대해 신속한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국무부, 보건 관련 기관들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메시지도 하루 만에 강해졌다. 루비오는 5일만 해도 “불안해할 사안은 아니지만 계속 주시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6일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러시아가 세계와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러시아의 투명성 문제를 정면으로 꺼냈다. 특히 루비오는 “상황이 현재 알려진 것보다 심각할 경우에 대비한 대응책이 이미 마련돼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사태를 시간 단위로 매우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별일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 루비오의 설명이다.
[트럼프도 움직였다…“푸틴과 통화 예정”]
백악관도 움직이고 있다. A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통화가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당국 역시 사건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으며, 트럼프는 조만간 추가 내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압박과 지원이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필요하다면 미국이 러시아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즉 지금 워싱턴의 우선순위는 러시아를 곧바로 ‘생물무기 사고’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WHO는 “페스트 환자 없다”…그럼에도 결정적 질문 하나]
여기서 이번 사건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WHO에 이르쿠츠크에서 확인된 페스트 환자는 없으며, 숨진 연구원과 접촉한 사람들에게서도 위험한 감염병 병원체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통보했다. WHO 역시 “현재 일반 대중의 위험은 낮다”고 평가했다. AP가 전한 WHO의 초기 위험평가는 이르쿠츠크 지역은 중간~낮음, 러시아 전체는 낮음, WHO 유럽지역은 ‘매우 낮음’이다. WHO 발표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러시아에서 흑사병이 확산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숨진 28세 연구원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하는 점이다.
로이터는 이 대목에서 의미 있는 단서를 하나 짚었다. “접촉자들에게서 위험 병원체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됐지만, 정작 숨진 연구원 본인이 페스트 검사를 받았는지, 또는 페스트가 사망 원인에서 완전히 배제됐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28세 연구원은 왜 갑자기 숨졌나?]
사망자는 이르쿠츠크 페스트연구소에서 근무하던 28세 여성 다리야 시필로바다. 로이터에 따르면 시필로바는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된 뒤 ‘원인 불명의 폐렴’ 진단을 받고 숨졌다. 그녀가 근무했던 곳은 시베리아·극동 지역의 페스트를 비롯한 고위험 감염병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사망 직후 러시아 당국의 움직임은 빨랐다. 약 200명에 이르는 접촉자가 추적·의료관찰 대상이 됐고, 시필로바가 치료받았던 셸레호프 병원의 일부가 격리됐다. 러시아 소비자권리보호·복지감독청 수장 안나 포포바도 직접 시베리아로 이동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시험관을 깨뜨렸다”…그러나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자극적으로 퍼진 주장은 시필로바가 페스트 병원체가 든 시험관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실험실 사고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러시아 보건당국은 위험 미생물과 관련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시필로바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서도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페스트균 시험관을 깨뜨려 감염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실험실 사고도 아니고, 업무상 취급하던 병원체와도 무관하며, 접촉자에게서 위험 병원체도 나오지 않았다면 건강한 28세 연구원은 왜 갑자기 원인 불명의 중증 폐렴으로 숨졌을까? 바로 이 정보 공백 때문에 워싱턴의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 사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페스트라는 병명 때문만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CDC·국무부·보건당국과 국가안보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고위 보건·안보 관계자들의 회의까지 열렸다. 미 당국이 궁금해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시필로바가 무엇에 노출됐는가, 그리고 그 연구소에서는 정확히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는가”하는 점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 문서를 열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미국이 러시아를 쉽게 믿지 못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 국무부의 2024년 군비통제 준수보고서는 러시아의 생물무기 문제에 대해 상당히 강한 평가를 내렸다. 미국은 러시아가 소련으로부터 과거 공격용 생물학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물려받았으며, 생물무기협약(BWC)이 금지하는 활동을 모두 종료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는 더욱 강한 표현이 등장한다. 소련의 프로그램이 러시아연방에 의해 “해체된 것이 아니라 흡수됐다(absorbed, not dismantled)”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또 관련 프로그램이 러시아연방 아래에서 계속 진화했으며, 과거 소련의 공격용 생물무기 프로그램에 관여했던 군 연구시설 일부가 현대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47년 전에도 러시아는 처음엔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이 러시아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정적인 역사적 이유가 있다. 1979년 스베르들롭스크 탄저균 유출사고다. 당시 소련 스베르들롭스크, 지금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탄저병이 발생해 최소 64명이 사망했다. 소련은 오랫동안 오염된 고기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군사 생물학 시설에서 탄저균 포자가 공기 중으로 유출된 사고였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진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1992년이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군사시설 사고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소련이 사건의 실제 원인을 인정하기까지 13년이 걸린 셈이다. CDC 역시 스베르들롭스크 군사시설 사고로 최소 66명이 흡입 탄저병으로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소련이 1975년 생물무기협약 당사국이 된 뒤에도 공격용 프로그램을 계속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워싱턴의 시각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러시아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사건”으로 끝내기 어려운 것이다.
[‘생물무기 사고’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의문도 계속 남는다]
결국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첫째, 러시아에서 페스트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WHO도 국제적 확산 위험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 둘째, 이번 사망이 생물무기 연구와 관련됐다는 증거 역시 없다. 시험관 파손설도 러시아 정부가 부인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 셋째, 숨진 연구원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여전히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이 움직이고 있다. 루비오는 러시아에 추가 정보 공개를 요구했고, 트럼프는 푸틴과의 통화를 예고했다. 그리고 WP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러시아에 정보를 요구하는 공식 외교 데마르슈까지 준비하고 있다.
[Why Times Insight | 문제는 ‘흑사병’보다 ‘러시아를 믿을 수 있느냐’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공포의 과장이다.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폐렴형 페스트가 퍼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오히려 러시아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왜일까? 러시아가 가장 중요한 질문에 아직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8세의 감염병 연구원은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 정말 실험실 사고는 없었는가? 그녀가 취급하던 병원체와 사망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가? 그리고 로이터가 지적했듯 정작 사망자 본인에게 페스트 검사가 실시됐는지, 페스트가 완전히 배제됐는지는 왜 명확하지 않은가?
이 질문이 민감한 것은 러시아의 과거 때문이다. 1979년 소련은 군사시설에서 탄저균이 유출돼 수십 명이 숨졌는데도 오염된 고기 때문이라고 거짓주장을 했다. 진실을 인정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더구나 미국 정부는 지금도 러시아가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았다고 공식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과거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에 훨씬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해야 할 이유는 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진짜 분기점은 페스트 확진자가 추가로 나오는가만이 아니다. 러시아가 숨진 연구원의 검사 결과와 정확한 사인, 실험실 사고 여부, 당시 수행하던 연구의 성격을 국제사회가 검증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만약 러시아가 충분한 자료를 공개하고 WHO 등 외부 기관의 검증까지 받아들인다면 이번 사건은 한 젊은 연구원의 비극적인 죽음과 과도한 국제적 우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러시아가 끝까지 “원인 불명 폐렴이지만 위험은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그때 국제사회가 묻게 될 질문은 결국 하나일 것이다. “러시아,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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