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리알 268만8000…이란 경제에 ‘바닥’이 사라졌다]
이란을 떠받쳐온 경제와 권력의 두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리알화는 달러당 268만8천리알까지 추락했고, 미국은 해상봉쇄에 이어 자동차·철도와 제재회피망까지 조이며 테헤란의 돈줄을 말리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 균열이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가 아니라 체제를 지탱해온 강경파 내부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협상을 원하는 이란에 미국은 문턱을 낮추기는커녕 출국명령을 따르지 않은 대표단원들을 결국 미국에서 강제로 추방시켰고, 거의 동시에 캠프데이비드에서는 최고위 외교안보 수뇌부가 이란 전쟁의 다음 단계를 논의했다. 이란이 버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이제 질문은 ‘굴복할 것인가’보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고 있다.

로이터는 4일, “이란 경제의 추락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면서 “이란 리알화가 암시장에서 달러당 약 268만8000리알까지 떨어지며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는데, 이는 전날 263만2000리알에서 하루 만에 또 떨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리알화 가치는 절반 이상 사라졌다. 인플레이션도 70%를 넘어섰다. 이란 인터내셔널이 불과 며칠 전 달러당 250만리알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법정 최저 월급 1억6600만리알의 가치는 약 66달러였다. 현재 환율을 적용하면 62달러 안팎까지 떨어진다. 한 달을 일하고도 100달러는커녕 60달러 남짓을 손에 쥐는 경제가 된 것이다.
[“달걀값을 보라”…공포로도 배고픔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이란의 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숫자는 어쩌면 환율도, GDP도 아니다. 시장에서 파는 달걀 가격일지 모른다. 영국 언론인 겸 작가 데이비드 파트리카라코스는 이란 인터내셔널의 ‘Eye for Iran’에서 자신이 지금 주목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이란의 달걀 가격이라고 말했다. 전쟁 중 이란 내부 사람들과 대화하면 이야기가 결국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간단하다. 정권은 시위대를 체포할 수 있고 공포를 통해 사람들을 거리에서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먹을 것을 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억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이란 당국 역시 이를 의식하고 있다. 개전 이후 대규모 체포가 이어졌고 당국은 경제난이 다시 대규모 거리 시위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분석가 캄란 보카리는 억압은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규모 탄압이 계속될 경우 어느 순간 정권을 지탱하는 보안군 내부에서도 의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지금 이란이 경제 침체와 탄압 심화, 강경파 내부 균열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slow meltdown’, 즉 ‘서서히 진행되는 붕괴’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 ‘온건파 대 강경파’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이란 위기에서 경제 붕괴보다 더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다. 체제 내부의 균열선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란 정치의 갈등은 개혁·온건파와 보수·강경파 사이의 충돌로 설명됐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는 분열은 다르다.
이란 문제 전문가들은 이제 강경파 진영 내부에서도 체제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미국과 타협하면 혁명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타협하지 않으면 경제가 더 무너진다. 전쟁을 확대하면 미국의 군사개입 위험이 커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리알과 민생이 먼저 무너진다. 결국 이란 지도부가 마주한 질문은 ‘어떻게 미국을 이길 것인가’에서 ‘어떻게 체제를 살릴 것인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보카리는 “특히 정권 내부의 의견 차이가 더 이상 밀실에서 봉합되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체제 내부의 권력투쟁이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정권 통제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화’냐 ‘후티화’냐…버터가 사라지고 총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란 정권이 당장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어떤 국가가 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바로 ‘북한화’ 또는 ‘후티화’다. 경제와 제도는 쇠락하고 국민은 가난해지지만, 정권은 국내에서는 탄압을 강화하고 해외에서는 미사일과 무장세력을 통한 군사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는 국가로 변하는 것이다.
이란 문제 전문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이를 ‘총과 버터’의 비유로 설명했다. 이슬람공화국이 원했던 것은 원래 총만 가진 국가가 아니었다. 해외에서는 혁명적 군사력을 과시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중산층과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제 ‘버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언론인인 파트리카라코스는 이것이 이란 사회의 자의식과도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국제사회와 연결되기를 원하는 상당수 이란인들에게 북한식 고립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미래이기 때문이다. 보카리 역시 “그들은 북한의 길을 걷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제 그 길을 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이란 지도부에서 “체제 생존이 그 어느 때보다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협상 원하는 이란에 미국의 대답은 “나가라”]
그래서 최근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 계속 매달리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압박을 견디며 시간을 끄는 것보다 어떻게든 미국과 협상을 통해 체면을 지키면서 출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반응은 오히려 더 냉혹해지고 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유엔총회가 끝난 뒤 미국에 머물던 이란 대표단에 즉각 출국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직후였다. 그런데 대표단 가운데 2명이 출국 요구를 따르지 않고 뉴욕에 계속 남았다. 미국은 다시 즉각적인 출국을 요구했고 결국 한 명은 금요일 밤, 다른 한 명은 토요일 아침 미국을 떠났다. 미 당국자는 이들을 아예 ‘쫓아냈다’고 표현했다. 외교적으로 상당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보여주는 현재 미·이란 협상의 힘의 관계다. 워싱턴은 이제 ‘이란을 어떻게 협상장으로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이란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협상장을 열어줄 것인가를 따지는 단계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이란이 외교적 출구를 찾고 있지만 미국은 오히려 그 출구의 가격을 계속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캠프데이비드 회의가 열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나왔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최고위 인사들이 2일 캠프데이비드에 극비리에 모여 수시간 동안 이란 전쟁의 다음 단계와 예멘 후티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회의는 JD 밴스 부통령이 주재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스티브 윗코프 대통령 특사, 존 랫클리프 CIA 국장, 댄 케인 합참의장 등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회의 일정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례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캠프데이비드 국가안보 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2025년 6월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에 돌입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이런 점에서 악시오스는 “외교적 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전투 재개 가능성을 검토하는 가운데 이번 회의가 열렸다”고 전했다.
[Why Times Insight] 이란에 남은 선택지가 사라지고 있다
이란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단순히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테헤란이 선택할 수 있는 길 자체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바닷길이 막히자 육상운송으로 버티려 했지만 미국은 자동차와 철도 산업까지 제재했다. 원유 수출과 외화 조달 통로가 좁아지면서 리알은 달러당 268만8000리알까지 추락했고, 결국 중앙은행은 최대 20억달러를 풀어 환율 방어에 나서야 했다. 경제적 불만을 탄압으로 눌러보지만 이번에는 민심과 보안군의 충성도, 그리고 강경파 내부 균열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외교도 좀처럼 출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협상의 끈을 붙잡으려 하지만 미국은 출구의 가격을 낮춰주지 않고 있다. 유엔총회가 끝난 뒤 미국의 출국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이란 대표단원 2명은 결국 미국을 떠났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미국 외교·안보 수뇌부는 캠프데이비드에 모여 이란 전쟁의 다음 단계를 논의했다. 결국 테헤란 앞에는 갈수록 잔혹한 선택지만 남는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미국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이슬람공화국의 혁명적 정당성이 흔들린다.
반대로 끝까지 버티면 경제와 중산층이 먼저 무너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고 다시 전면전으로 돌아가면 미국의 대규모 군사작전 재개라는 훨씬 더 위험한 선택지와 맞닥뜨려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단순한 경기침체라고 봐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가 민생위기로, 민생위기가 체제위기로, 그리고 체제위기가 권력 내부의 균열로 번지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은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 이슬람공화국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테헤란이 버티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버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이 노리는 것도 어쩌면 공식적인 항복문서가 아닐 것이다. 핵과 호르무즈, 지역 무장세력, 제재 해제라는 카드를 테헤란이 하나씩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란을 향한 질문도 이제 달라진다. “이란이 미국에 굴복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란은 굴복하지 않고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 리알의 추락과 강경파 내부의 균열, 그리고 굳게 닫힌 캠프데이비드의 문은 그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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