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취미였다?”…40년 감청 전문가가 한미 군기지를 돌았다]
40년간 중국 인민해방군 감청부대에서 근무한 예비역 중령급 장교가 한국의 호텔방에 수신장비를 설치하고 한·미 전투기 교신을 13차례 엿들은 혐의가 드러났다. 같은 날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에서는 삼성전자 출신 기술진에게 18나노 D램의 핵심 ‘제조 레시피’를 가져오라고 최고경영자가 압박했다는 법정 진술까지 공개됐다. 카메라와 드론에서 감청장비로, 군 관계자 접근에서 첨단 반도체 기술로—한국이 직면한 중국발 정보수집의 범위와 수법이 어디까지 확대되고 있는지를 묻게 하는 사건들이다.

29일 조선일보가 확보한 검찰 공소장을 통해 60대 중국인 A씨의 구체적인 군 경력이 새롭게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베이징의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감청부대에서 약 40년간 복무한 중교(中校, 중령급) 출신이었다.
이 가운데 A씨가 전직 중국군 출신이며 한국에서 군 통신을 수집하다 체포됐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AP와 CNN, 미군 전문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도 지난달 보도했다. AP는 “A씨가 한·미 전투기와 관제탑 사이의 통신을 수신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한국 수사당국이 수집된 정보가 중국 당국에 전달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전북 군산과 경기 오산, 광주 공군기지, 평택 캠프 험프리스, 부산 해군기지 등을 돌며 모두 13차례 군 통신을 도청한 혐의를 받는다. 관제탑이나 활주로와 가까운 호텔 객실에 전파 수신기와 안테나를 설치한 뒤 전투기 조종사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을 녹음하는 방식이었다. 13차례 가운데 7차례가 한·미 공군이 함께 사용하는 군산공항에 집중됐다.
성조지(Stars and Stripes)는 “앞선 경찰 수사 단계에서 A씨가 군산공항 인근 호텔에 소프트웨어 정의 무선(SDR) 수신기와 안테나, 노트북을 설치해 항공교신을 수신했다”면서 “경찰은 A씨가 2024년 1월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일부 방문 시점이 한·미 연합훈련과 겹친 것으로 파악했는데, A씨는 경찰에서 군 관련 교신을 듣는 것이 개인적인 취미였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전했다. .
A씨가 확보한 것으로 조사된 녹음파일과 주파수 정보 등은 외장하드에 저장됐으며, 그 규모가 13.9TB에 달했다. A씨는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를 앞둔 8월 초 다시 한국에 들어왔고 이후 군산의 호텔에서 감청하다 체포됐다.
[이번에는 ‘사람’…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군 관계자 접근]
중국인들의 한국 기밀 훔치기는 또 있었다. AP는 “지난달 한국에서 전직 중국군 복무자 2명이 서로 별개의 사건으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CNN은 특히 “두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는 증거는 없으며 서로 다른 사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두 번째 피의자인 40대 중국 국적 B씨는 캠프 험프리스 인근에서 군장점을 운영했다. 성조지에 따르면 그는 2021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군장점을 운영하면서 기지 안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에게 접근했고, 돈과 선물을 제공하면서 한·미 훈련 등 기지 활동과 관련된 정보를 확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가 수집한 것으로 조사된 자료에는 군사훈련과 무기 이동, 미군 지휘부 관련 정보 등이 포함됐다. 성조지는 경찰 발표를 인용해 “B씨가 미군 무기 이동과 지휘소 사진, 지휘관 교체 행사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수집의 방식이다. 한 사람은 안테나로 전파를 수집했고, 다른 사람은 사람에게 접근해 정보를 확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CNN은 중국 외교부에 입장을 물었고, 중국 외교부는 해당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같은 날 터진 또 하나의 사건…“삼성 레시피 가져와”]
더욱 주목할 것은 이러한 문제가 군사 분야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9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수사기관 진술서에서는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의 데이비드 왕 전 CEO가 2016년 삼성전자 출신 한국 기술진에게 삼성전자의 PRP와 설비 정보를 가져오라고 압박했다는 진술이 공개됐다.
삼성전자 부장 출신으로 CXMT 설비투자를 담당했던 전모씨는 왕 전 CEO가 삼성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인맥까지 있다며 자신들을 압박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CXMT 경영진은 삼성전자를 ‘옐로우마운틴(黃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PRP(Process Recipe Plan)는 단순한 기술문서가 아니다. D램 제조공정 수백 단계의 순서와 장비, 조건값 등을 담은 사실상의 ‘반도체 제조 레시피’다. 문제가 된 18나노 D램 공정은 삼성전자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삼성전자에서 28년간 근무한 뒤 CXMT로 옮긴 전씨는 관련 기술을 무단 유출해 사용한 혐의로 기소돼 올해 4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8나노 못하면 투자 없다”…중국 정부는 어디까지 관여했나]
이번 보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전씨의 법정 증언이다. 전씨는 이달 법정에서 “당시 중국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18나노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CXMT가 투자비를 받기 어렵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18나노 기술을 원했던 것이냐고 묻자 전씨는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CXMT 경영진의 삼성 기술 확보 압박과 중국 정부의 투자 조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가 향후 재판에서 규명해야 할 핵심 쟁점이다.
[그리고 10년 뒤…CXMT는 세계 4위가 됐다]
그런데 이 사건을 2016년의 기술유출 사건으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10년이 지난 지금 CXMT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CXMT는 2025년 세계 D램 시장에서 약 7.7%를 차지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이어 세계 4위 업체로 올라섰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전략과 지방정부·국유자본의 지원, 거대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했다.
이렇게 보면 삼성 기술유출 사건의 의미도 달라진다. 문제는 단순히 과거에 한국인 기술자 몇 명이 기술을 빼돌렸느냐가 아니다. 한국의 핵심 기술과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해 온 중국 기업이 불과 10년 만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추격하는 세계적인 경쟁자로 성장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봐야 한다.
[간첩법은 바뀌었다…외국 위한 간첩행위도 처벌]
한국도 뒤늦게 법적 사각지대를 손봤다. 기존 형법 제98조는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중심으로 규정해 중국 등 수교국을 위한 국가기밀 수집에 간첩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올해 개정된 형법은 제98조의2에 ‘외국 등을 위한 간첩’을 신설했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사주·의사 연락 아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방조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개정법은 9월 13일부터 시행됐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이뤄진 A씨와 B씨의 혐의 행위에는 새로운 조항을 소급 적용할 수 없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방첩 시스템’이다]
문제는 법을 바꾸는 사이 정보수집 수법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 경찰로 이관됐다. 군 방첩체계 역시 올해 재편됐다. 정부는 방첩·보안·안보수사 기능을 나누면서 전문성과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이런 기능 분산 과정에서 기관 간 정보공유와 공조가 충분하지 않으면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따져야 할 것은 특정 조직 개편 자체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아니다.
중국군에서 감청 업무를 했던 인물이 호텔방에 장비를 설치하고 군 통신을 수집하는 시대에 한국의 방첩체계가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탐지하고 추적하며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Why Times Insight]
이번 사건들을 단순히 ‘중국인 몇 명의 일탈’로만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경력과 정보수집 방식 때문이다. 한 사람은 인민해방군 감청부대에서 약 40년간 근무한 것으로 검찰 공소장에 적시됐다. 또 다른 전직 중국군 복무자는 캠프 험프리스 주변에서 군 관계자에게 접근해 군사 관련 자료를 확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중국 최대 D램 기업에서는 삼성전자 출신 기술진에게 핵심 공정정보를 가져오라고 최고경영자가 압박했다는 법정 진술까지 나왔다.
물론, 지금까지 공개된 증거만으로 이 사건들을 중국 정부가 직접 지휘한 하나의 조직적 첩보작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군사시설을 카메라로 찍던 단계에서 전문 수신장비를 이용한 장기간 감청 혐의로 수법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그 배후에 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군 관계자에게 접근해 자료를 확보한 혐의도 등장했다. 산업현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기술 유출 사건이 실제 형사재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법과 조직을 다시 정비하는 바로 그 시기에 정보수집의 방식은 카메라에서 안테나로, 군사시설 외곽에서 사람으로, 다시 국가 핵심 산업기술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들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다. 우리는 아직도 ‘간첩’을 군사기지 담장을 넘거나 기밀문서를 훔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는가.
호텔방의 안테나도 정보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군 관계자와 장기간 관계를 형성해 정보를 얻는 것도 전통적인 정보수집 방식이다. 핵심 엔지니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반도체 공정기술 역시 오늘날에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자산이다.
중국을 외교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 별개로, 한국의 군사정보와 첨단산업 기술을 겨냥한 중국 국적자 및 중국 기업 관련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방첩은 상대국에 대한 호감이나 반감이 아니라 확인된 행위와 능력, 의도, 그리고 우리의 취약성을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번 사건들의 진짜 경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