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우크라 드론, 3000km 날아 러시아 최대 가스산지 첫 타격]
우크라이나가 전선 너머 수천km나 떨어진 러시아의 에너지 심장부를 전격 공습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한다는 것이 의미도 없을 뿐더러 자칫 러시아의 존망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국면으로 흐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다시 푸틴이게 더 이상 전쟁 지속은 의미가 없다면서 종전을 압박하고 나섰다. 분명한 것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가 감당해야 할 비용과 위험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순간 트럼프가 푸틴에게 협상의 문을 다시 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다”면서 “드론 공격으로 서시베리아 북부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노비우렌고이의 산업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어 “드미트리 아르튜호프 주지사도 공격 사실과 화재 발생을 확인했는데, 러시아 측은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이 공격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은 노비우렌고이는 평범한 지방도시가 아니다. 로이터는 “노비우렌고이(Novy Urengoy)는 러시아의 비공식적인 ‘가스 수도’로, 야말로네네츠 지역은 러시아 천연가스 산업의 핵심 중 핵심”이라면서 “가즈프롬이 2020년 기준 이 지역의 가스자원을 26조 5000억㎥로 추산했을 정도인데, 무엇보다 노비우렌고이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3000km나 떨어져 있어서 전쟁 초기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의 깊숙한 후방이 공격권에 들어왔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짚었다.
[중요한 것은 공장 하나가 아니라 ‘3000km’다]
로이터는 이어 “진짜 중요한 숫자는 3000km로, 러시아가 후방이라고 믿었던 서시베리아 북부 에너지 중심부까지 공격 가능성이 현실화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Ukrainska Pravda)도 “우크라이나의 이번 공격은 그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가스 생산의 대부분을 파괴했다는 의미라기 보다 러시아 경제와 에너지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후방지역까지 더 이상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안전지대라고 보기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면서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부의 더 먼 군사·에너지·산업시설을 공격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짚었다.
[남쪽에서는 노보로시스크까지 흔들렸다]
러시아가 받는 장거리 압박은 북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로이터는 9일(현지시간) “러시아 흑해 항구 노보로시스크에서도 드론 잔해가 여러 사업장과 주거건물 인근에 떨어졌고 화재가 발생했다”면서 “노보로시스크는 러시아 원유와 석유제품, 곡물 등의 핵심 수출항으로 그동안 우크라이나 드론의 주요 공격 목표가 돼 왔다”고 밝혔다.
결국 지도를 펼쳐 놓으면 이번 전쟁의 변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남쪽에서는 흑해의 수출·군사 거점이 위협받고, 북동쪽에서는 수천km 떨어진 러시아의 가스 중심부까지 공격받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후방을 공격하는 전쟁에서 러시아 자신의 후방 역시 전쟁의 영향을 직접 받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미국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이 시점에 미국의 종전외교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존 랫클리프 CIA 국장이 비공개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대외정보국장 세르게이 나리시킨과 FSB 국장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등 러시아 정보기관 수뇌부와 접촉했다. 크렘린도 랫클리프의 방문을 공식 확인했다. 다만 랫클리프가 푸틴을 직접 만난 것은 아니며 푸틴은 사후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 중요한 내용은 이후 나왔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악시오스(Axios)는 “랫클리프가 모스크바에서 트럼프·푸틴·젤렌스키 3자 정상회담 가능성을 제안했으며, 러시아 정보기관 수뇌부가 푸틴을 미국 중재 협상 재개 쪽으로 움직이도록 도울 수 있는지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CIA 수장의 방문이 단순한 정보기관 간 정례 접촉을 넘어 우크라이나 종전외교와도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CIA 다음에는 위트코프와 쿠슈너가 움직였다]
CIA 국장 방문 이후 미국의 종전외교는 공개적인 단계로 넘어갔다. 이와 관련해 AP통신은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는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수시간 회담한 뒤 키이우로 이동해 젤렌스키와 협상했다”면서 “즉 미국 특사단이 모스크바→키이우를 직접 오가며 양측의 조건을 맞춰보는 셔틀외교를 다시 가동한 것”이라고 짚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돌파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8일 미국 특사들이 제시한 종전 구상 가운데 “상당히 괜찮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우크라이나·유럽이 후속 협의를 거쳐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3자 협상 재개를 준비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쟁점은 여전히 러시아가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돈바스 지역의 처리 문제다.
[트럼프가 직접 말했다…“푸틴도 협상을 원한다”]
결정적인 발언은 9일 트럼프에게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최근 전화통화를 했다”면서 “좋은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원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위트코프와 쿠슈너가 모스크바와 키이우를 오간 직후 트럼프가 푸틴과 직접 통화한 것이다.
트럼프는 협상이 지연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푸틴과 젤렌스키 사이의 극심한 개인적 적대감까지 거론했다. 로이터는 “미국·우크라이나·유럽 정보당국 일각에서는 푸틴의 실제 종전 의지에 여전히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푸틴에게 공식적인 ‘최후통첩’을 전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CIA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트럼프·푸틴·젤렌스키 3자회담 타진→위트코프·쿠슈너의 모스크바·키이우 셔틀외교→트럼프·푸틴 직접통화라는 흐름이 불과 수 주 사이 집중적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다시 종전의 문을 열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전략적으로 해석하면 트럼프가 푸틴에게 내미는 것은 당장 ‘패배를 인정하라’는 항복문서라기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르기 전에 협상 가능한 출구를 선택하라는 압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푸틴이 ‘멈추는 결단’을 할 수 있느냐다]
결국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군사가 아니라 정치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자신의 정치적 권위와 결합돼 있다. 전쟁을 계속하는 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러시아 국민에게 설명할 만한 성과 없이 전쟁을 끝내는 것 역시 푸틴에게는 정치적 부담이다.
따라서 푸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러시아 국내에서 ‘패배’가 아니라 ‘성과를 얻고 끝낸 전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종전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토 문제와 안전보장, 향후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를 둘러싼 협상이 가장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협상의 최대 난제 역시 러시아가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돈바스 영토 문제다.
[Why Times Insight]
이번 야말 타격을 ‘가스시설 하나가 불탔다’는 뉴스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거리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3000km 떨어진 러시아의 ‘가스 수도’까지 드론 공격이 도달했다. 남쪽에서는 러시아의 핵심 흑해 수출항 노보로시스크가 계속 공격권에 놓여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쟁의 충격이 우크라이나 영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으로 역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미국은 CIA 국장과 대통령 특사, 대통령 직접통화라는 채널을 연달아 가동하고 있다. 아직 이것을 ‘최후통첩’이라고 부를 근거는 없다. 그러나 푸틴에게 전달되는 전략적 메시지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계산을 Why Times식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다. “푸틴, 지금 끝내는 것이 그나마 싸게 끝내는 길이다.”
물론 트럼프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의 군사적 상황과 미국의 연속적인 외교 행보를 토대로 한 우리 채널의 분석이다. 푸틴은 여전히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미국의 협상 중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푸틴이 이미 종전을 결심했다고 판단하는 것도 성급하다.
그러나 푸틴이 피하기 어려운 질문은 하나다. 앞으로 1년을 더 싸우면 러시아가 지금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해질 것인가? 아니면 우크라이나 드론이 닿는 러시아의 전략시설만 더 늘어날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지금 미국이 푸틴에게 열어놓으려는 것은 ‘패배의 문’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종전외교의 진짜 관전 포인트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느냐”는 전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4년 반 동안 국가를 지켜냈고, 이제 수천km 떨어진 러시아의 에너지 중심부까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또 하나의 질문은 푸틴이 언제까지 이 전쟁의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야말로네네츠까지 날아간 드론과 워싱턴에서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미국의 종전외교는 지금 동시에 그 질문을 크렘린에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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