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32기 중 12기만 안정적 운용고도…2차분 16기는 전부 실패]
한때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고 유리 가가린을 인류 최초로 우주에 보냈던 러시아의 우주산업이 심상치 않다. 러시아가 스타링크에 맞서 야심차게 추진해 온 저궤도 위성통신망 ‘라스벳(Rassvet)’이 본격적인 배치 단계부터 심각한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32기를 쏘아 올렸지만 안정적인 운용고도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되는 위성은 12기에 불과할 정도로 성적이 초라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7월 발사된 2차분 16기의 상태다. 한 기도 기대했던 고도까지 올라가지 못했고, 일부는 다시 지구 쪽으로 고도가 떨어지고 있다. 스타링크를 대체해 러시아군의 통신과 무인전력을 뒷받침하려던 푸틴의 계획이 출발 단계부터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기술, 금융, 혁신 트렌드를 다루는 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디지털 경제 전문 매체인 Ars Technica(아르스 테크니카)는 2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스타링크 경쟁자는 실패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라스벳의 이상 징후를 집중 분석했다. Ars Technica는 이날 “두 차례 발사를 통해 32기의 실전급 위성을 우주에 올렸지만 최소 3기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추정되며 더 많은 위성이 문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라스벳 개발사 ‘부로 1440’은 내년 말까지 약 300기를 배치하고 2035년에는 924기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지만, 현재 올라간 32기는 300기 목표의 10% 남짓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디지털 경제 전문 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도 2일, “7월 19일 발사된 라스벳 위성 16기가 한 기도 예정된 운용고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 “현재 300~400km 정도의 낮은 고도를 돌고 있는 위성이 많아 장기간 정상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정반대였다는 점이다. 로이터는 지난 8월 10일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을 인용해 “러시아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라스벳 위성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계획은 웅장했지만, 불과 몇 주 만에 러시아의 '빠른 추격'을 경고하던 상황에서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위성들'을 걱정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16기 한꺼번에 올렸는데…한 기도 기대했던 고도 못 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은 8월 31일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분석이었다. ISW는 공개 위성추적 자료 분석을 통해 “7월 19일 발사된 라스벳 2차분 16기는 8월 말 현재 한 기도 예상했던 550km 고도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상당수는 300~400km에 머물고 있으며 일부는 고도가 다시 낮아지고 있고 최소 2기는 대기권 재진입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여기서 550km와 최종 운용고도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Ars Technica에 따르면 라스벳은 로켓에서 분리된 뒤 자체 추진장치를 이용해 수개월에 걸쳐 고도를 높이도록 설계됐으며, 최종적으로 약 800km급 궤도에서 운용될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 상태만으로 2차분 16기 모두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일부 위성이 상승하기는커녕 고도를 잃고 있다는 사실은 정상적인 배치 과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낮은 고도에 계속 머물 경우 문제는 더욱 커진다. 지구 상층 대기의 저항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아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추진체를 더 사용해야 하고, 결국 위성의 기대수명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장 모든 위성이 통신 불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가 계획했던 장기 운용 위성망을 만드는 데 상당한 장애가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32기 쐈는데 안정적 고도에 자리 잡은 것은 12기]
더 큰 문제는 첫 번째 발사 역시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ISW는 “지난 3월 24일 발사된 1차분 16기 가운데 12기만 550km 고도까지 올라갔고, 8월 말까지 그 고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 12기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 측에 하루 두 차례, 최대 1시간30분 정도의 제한적인 통신 가능시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ISW에 따르면 결국 지금까지 발사된 32기 가운데 장기간 유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고도에 올라간 것은 12기, 37.5%에 불과하다. 반대로 말하면 62.5%가 아직 안정적인 운용고도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스타링크와 같은 저궤도 위성통신망의 핵심은 위성 한두 기의 성능이 아니다. 수백~수천 기의 위성이 끊임없이 지상 단말기 위를 지나가면서 통신을 넘겨받아야 상시 연결망을 만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국방기술 자문관 세르히 베스크레스트노우는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안정적인 24시간 연결을 제공하려면 라스벳 위성이 적어도 200~300기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는 이제 겨우 32기를 쏘아 올렸다. 그중 안정적인 고도에 올라간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12기다. 단순히 갈 길이 먼 정도가 아니라 현재와 같은 발사속도와 위성의 궤도상태가 계속된다면 스타링크와 비슷한 상시 통신망을 단기간에 구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라스벳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 연결된다. 러시아군은 그동안 비공식 경로로 확보한 Starlink 공식 사이트 단말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용해 왔지만, 올해 2월 1일 러시아 측의 미승인 스타링크 접속이 차단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ISW는 스타링크 접근권 상실이 러시아가 라스벳 구축 일정을 앞당기게 만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위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로켓’]
러시아가 직면한 더 큰 병목은 발사 능력이다. ISW는 “라스벳은 현재 소유즈-2.1b 로켓에 의존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침공 이후 이 로켓을 국가·상업 임무를 통틀어 6~8차례 정도밖에 발사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향후 4년간 올릴 수 있는 라스벳은 최대 128기 수준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라스벳의 진짜 문제는 위성 16기의 그 자체가 아니다. 러시아에 과연 수백 기의 위성을 빠르게 생산하고, 반복적으로 발사하고, 정상적인 궤도에 안착시킨 뒤 지속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산업적 역량이 남아 있느냐는 문제다. 이 부분에서 러시아와 스타링크 사이에는 여전히 거대한 격차가 존재한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우주공장’까지 노린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우주산업의 생산·발사기반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ISW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8월 중순 소유즈 계열 로켓을 생산하는 프로그레스 우주로켓센터를 공격했고, 8월 23일에는 라스벳 위성이 발사됐던 플레세츠크 우주기지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이 공격들이 이미 7월 발사된 라스벳 위성들의 궤도 이상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러시아가 라스벳을 완성하려면 앞으로도 수십 차례 위성을 생산하고 발사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는 이제 바로 그 생산시설과 발사기반까지 공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 러시아군의 병력과 전차뿐 아니라 전략산업의 기반까지 소모시키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의 나라, 왜 여기까지 왔나]
바로 이 지점에서 라스벳 사태의 의미는 훨씬 커진다.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을 인류 최초로 우주에 보냈던 소련은 한때 미국과 세계 우주개발을 양분했다. 러시아는 그 막대한 기술과 산업적 유산을 물려받은 국가다.
그러나 지금의 우주경쟁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과거 우주강국의 상징이 거대한 로켓과 유인우주선이었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천 기의 저궤도 위성과 지상단말기를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이를 실제 전장에서 끊김 없이 운용하는 능력이 새로운 전략자산이 됐음을 보여줬다. 러시아가 라스벳을 서둘러 구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새로운 우주경쟁에서 러시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라스벳 사태 하나만으로 러시아 우주기술 전체의 몰락을 선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성의 대량생산, 신뢰성 높은 추진체, 충분한 발사빈도, 대규모 위성군 운용이라는 21세기 우주산업의 핵심 경쟁력에서 러시아가 얼마나 힘겨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지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Why Times Insight]
라스벳 2차분의 이상만으로 러시아 우주기술 전체가 붕괴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장이다. 실제로 일부 위성은 제한적인 통신능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자체 위성통신망 구축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필요한 것은 위성 몇 기가 아니라 수백 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발사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운용할 능력이다. 그런데 첫 32기 가운데 안정적인 고도에 오른 것은 12기뿐이고, 발사체 공급과 생산기반마저 전쟁의 압박을 받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푸틴이 시작한 전쟁이 러시아에 스타링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이를 따라잡으려는 순간 러시아 우주산업의 현실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고 가가린을 우주로 보냈던 나라가 이제 전장에서 필요한 위성 인터넷망 구축을 놓고 힘겨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라스벳 사태는 러시아 우주강국 신화의 종말을 선언하는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그러나 소련의 유산을 하나씩 소진하고 있는 푸틴 시대 러시아가 어디까지 내려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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