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프랑스·스페인서 33만 명 대피…SLBM·전투기·미사일 생산기지까지 초비상]
유럽을 뒤덮은 초대형 산불이 산림과 주거지를 넘어 프랑스 핵 억지력과 방위산업의 핵심 시설까지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정점 기준 약 33만 명이 대피했고, 보르도 서쪽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투기·미사일 추진체 생산시설에는 대피령과 비상보호 조치가 내려졌다. 프랑스에서는 산불이 자체적으로 강풍과 뇌우를 만들어내는 화재적란운까지 발생해 기존 소방력만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메가 파이어’의 위력을 드러냈다. 기후재난이 마침내 유럽의 국가 전략자산과 군수 공급망을 직접 흔드는 안보 위기로 전환된 것이다.

유럽의 관점에서 국제 뉴스를 다루는 범유럽 뉴스 네트워크인 유로뉴스(Euronews)는 30일 “유럽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온이 오르는 대륙이 됐다”면서 “급격한 기온 상승이 극단적 기상 현상을 낳아 산불의 규모와 강도를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한 유럽의 평균 기온 상승폭은 약 2.5도로, 지구 평균 상승폭인 약 1.4도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문제는 불길의 방향이었다.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 지역에서 시작된 산불이 보르도 서쪽으로 확산하면서 프랑스 핵전력과 방위산업의 심장부가 한꺼번에 위협권에 들어갔다.
[불길 앞에 멈춰선 프랑스 핵전력·방산 심장부]
유럽 산불과 관련해 Defense News는 “보르도 일대에는 프랑스의 전략 핵전력과 항공·미사일 생산을 떠받치는 핵심 시설들이 밀집해 있다”면서 “아리안그룹은 프랑스 해군의 핵잠수함에 탑재되는 M51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추진체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록셀은 유럽 미사일 업체 MBDA에 공급되는 고체로켓 모터를 생산하는데, 다쏘항공의 라팔 전투기 최종 조립시설도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Defense News는 이어 “산불이 접근하자 아리안그룹은 영향권에 있는 인력을 전원 대피시키고 시설 보호 조치에 들어갔다”면서 “다쏘항공과 록셀 관련 시설에도 비상대응 조치가 내려졌는데, 프랑스가 자랑해 온 핵 억지력과 전투기·미사일 공급망이 적의 공격이 아닌 산불 때문에 동시에 흔들리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짚었다.
Defense News는 “인근에는 프랑스 원자력·대체에너지청(CEA)이 운영하는 군사 핵 연구시설도 있다”면서 “이곳에는 핵폭발 때 발생하는 극한의 물리현상을 모의하는 대형 실험장비 ’레이저 메가줄’이 설치돼 있는데, CEA는 시설 안에 핵물질이 없어 방사능 유출 위험은 없다고 밝혔지만, 직원들을 대피시키고 시설을 전면 폐쇄했다”고 전했다.
이는 원자력발전소나 핵무기 저장시설에서 방사능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핵무기의 성능과 신뢰성을 유지하는 연구시설이 산불로 가동을 멈췄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재난의 전략적 의미는 작지 않다.
이와 관련해 유로뉴스는 “지롱드 소방당국은 인명 구조에 이어 전략시설 보호를 최우선 임무로 설정했다”면서 “소방대원들은 시설 주변의 식생을 제거하고 대형 방화선을 구축했으며, 프랑스군도 전문가와 장비를 투입했다”고 밝혔다. 유로뉴스는 또한 “보르도·지롱드 지역에는 약 300개의 방산업체가 밀집해 있어 불길이 더 확산할 경우 피해가 개별 공장의 일시적 폐쇄를 넘어 프랑스 전체 군수 생산망의 차질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파리 네 배 숲 태우고 22만 명 대피시킨 지롱드 산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7일 지롱드 위기대응센터를 찾아 “이번 산불은 ‘완전히 전례 없는 화재’”로 규정하면서는 “진화대원들에게 반드시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며 파괴된 숲을 다시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AP는 “지롱드 지역에서만 약 4만2000헥타르의 숲이 불탔다”면서 “이는 파리 행정구역 면적의 약 네 배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짚었다. AP는 “주택 240여 채가 파괴됐고 프랑스에서만 약 22만 명이 대피했다”면서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피 인원을 합치면 정점 기준 약 33만 명에 이르는데, 다만 30일부터는 프랑스 대피 주민 가운데 일부가 귀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화재가 더욱 두려운 이유는 단순히 피해 면적이 넓기 때문만은 아니다. CNN은 “겨울철 폭우로 무성해진 초목이 여름철 폭염과 가뭄을 거치면서 바싹 말라 대량의 화재 연료로 바뀌는 이른바 ’채찍 효과(Whiplash Effect)’가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은 “이렇게 축적된 연료에 불이 붙으면 강력한 상승기류와 돌풍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다시 불길을 확산시키는 화재폭풍이 발생한다”면서 “지롱드 산불 현장에서는 거대한 열기둥이 대기 상층까지 치솟아 구름과 번개, 강풍을 만들어내는 화재적란운도 관측됐다”고 밝혔다. 불이 스스로 날씨를 만들고 그 날씨가 다시 불을 키우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산불 전문가들이 “한 번 붙으면 끌 수 없는 화재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방력을 아무리 증강해도 화재폭풍이 형성되면 정면 진압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주민을 먼저 대피시키고 불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전략시설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페인·그리스·튀르키예로 번진 불길]
산불은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올해 들어 17만 헥타르가 넘는 면적이 불탔고, 마드리드와 아빌라 지역을 중심으로 약 10만 명이 대피하거나 대피 명령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도 연초 이후 11만6000헥타르 이상이 소실됐다.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두 나라에서만 약 29만 헥타르가 불탄 셈이다.
불길은 그리스와 튀르키예로도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 크레타섬에서는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을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목숨을 잃었고, 파로스와 레스보스섬 등에서도 추가 화재가 보고됐다. 튀르키예 에게해 연안에서도 산불이 번지면서 유럽 남부와 지중해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화재 전선으로 연결되는 양상이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EU 당국은 올해 산불 피해가 지난해의 기록적인 수준에 다시 접근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분명한 것은 이번 산불이 ’최악의 시즌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11월까지 이어질 산불 장기전]
더 큰 문제는 8월 성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피해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고온과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경우 산불 위험은 11월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유럽 각국이 남은 여름과 가을 내내 소방 인력과 군 병력, 항공기와 중장비를 동원해야 하는 장기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히 숲과 주택을 복구하는 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산불 대응에 군 병력과 수송기, 헬기, 재정이 장기간 투입되면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자체 방위력 증강에 사용할 자원에도 부담이 생긴다. 방산시설의 가동 중단이 반복될 경우 무기 생산 확대를 추진하는 유럽의 재무장 계획에도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
[Why Times Insight]
이번 사태의 본질은 ‘기록적인 산불’ 그 자체가 아니다. 기후재난이 프랑스의 핵 억지력과 전투기·미사일 생산망을 직접 위협하는 국가안보 위기로 전이됐다는 데 핵심이 있다.
프랑스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핵·항공우주·미사일 관련 기업과 연구시설을 보르도 일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극한 기후가 일상화되면서 이러한 산업 집중 구조가 오히려 하나의 산불로 다수의 전략시설이 동시에 멈출 수 있는 취약점으로 변했다. 적국이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하지 않아도 자연재난이 핵전력과 군수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유럽은 이제 산불을 환경·소방 정책의 영역에만 둘 수 없게 됐다. 전략시설의 입지, 방화구역, 비상전력과 대체 생산망까지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을 서두르는 유럽에 기후재난이라는 또 하나의 전선이 열린 셈이다.
불길은 언젠가 잡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산불이 드러낸 프랑스와 유럽의 전략적 취약성은 불이 꺼진 뒤에도 오랫동안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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