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남부 인프라 붕괴에 민심도 흔들…'전쟁을 부른 책임자' 향한 역풍 거세져]
미국의 대이란 공습이 8일째 이어지면서 전쟁의 양상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혁명수비대(IRGC)의 군사시설과 미사일 기지에 집중됐던 공격이 이제는 교량과 철도, 전력시설, 담수화시설 등 국가 기능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까지 확대되면서 이란 남부가 사실상 마비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단순히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수준을 넘어 국민들의 일상과 산업 기반까지 직접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주목해야 할 변화는 전장이 아니라 테헤란 내부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강경 대응을 주장해 온 혁명수비대와 초강경 세력을 향해 "전쟁을 자초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비판이 전직 국가안보위원장과 정치권 인사들의 입을 통해 잇따라 나오고 있다는 점은 이란 내부 권력지형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란 전문매체 이란인터내셔널(Iran International)은 18일 “미국의 공습이 8일째 계속되는 가운데 이란 온건파·실용 세력이 강경파를 향한 비판 수위를 크게 높이고 있다”면서 “강경파가 외교를 가로막아 결국 전쟁을 불러왔다는 책임론이 정치권 안팎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특히 두 편의 기고문에 주목했다. 하나는 전직 국회의원이자 국가안보위원장을 지낸 헤슈마톨라 팔라핫피셰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평론가 압돌라흐만 파톨라히의 칼럼이다. 두 사람 모두 표현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지금의 전쟁은 미국 때문만이 아니라 수년 동안 협상을 거부하며 강경노선을 밀어붙인 이란 내부 정치세력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온건파의 정치공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습이 계속되면서 그동안 혁명수비대가 국민들에게 내세워 온 '강한 안보가 국가를 지킨다'는 논리가 현실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경노선이 국가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군사시설이 아니라 '국가 기능'이다]
이번 미국의 군사작전은 시간이 갈수록 목표가 분명해지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혁명수비대 기지와 미사일 시설, 방공망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8일째에 접어든 지금은 공격 대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반다르아바스로 연결되는 핵심 교량들이 잇따라 파괴됐고, 자스크 인근 담수화시설은 취수장과 변전시설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란 정부도 전력 인프라가 타격받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며 남부 주민들에게 절전을 요청했다. 걸프 연안에서 650㎞ 떨어진 중부 야즈드까지 전투기가 투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특정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단계를 넘어, 이란이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국가 운영 능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전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부 지역은 단순한 지방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되는 이란 최대의 에너지·물류 거점이며, 원유 수출과 해상 교통, 군수 보급이 집중된 전략적 요충지다. 이 지역이 흔들리면 혁명수비대의 군사작전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가 직접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미국 역시 이런 효과를 충분히 계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핵시설 몇 곳을 파괴하는 것보다 국민들이 전쟁의 비용을 피부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훨씬 큰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 보건부는 지난 6일 이후 이어진 공습으로 최소 50명이 숨지고 5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다. 숫자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생활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과 전기 공급이 흔들리고 교통망이 끊기면서 전쟁은 더 이상 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생존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교를 막은 사람들이 전쟁을 불렀다”...강경파를 향한 책임론 확산]
바로 이 지점에서 이란 내부의 정치적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란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을 주장하거나 혁명수비대의 강경노선을 비판하는 것은 사실상 정치적 금기에 가까웠다.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가 국가안보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공습이 장기화되고 국민들의 피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그 금기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인물은 전직 국가안보위원장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헤슈마톨라 팔라핫피셰였다. 그는 개혁 성향 일간지 토세에 이라니 기고문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종교를 왜곡해 외교를 좌절시켰고, 결국 이란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게 됐다”고 직격했다. 특히 그는 2021~2022년 추진됐던 핵협상과 대미 협상이 강경파의 반대로 무산된 점을 거론하며 “더 좋은 합의를 만들겠다던 사람들이 결국 아무런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국민들에게는 전쟁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외교를 방해해 국가를 전쟁으로 몰아간 사람들에게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다. 과거 같으면 이런 발언 자체가 '반혁명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주요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 가장 큰 차이다.
정치평론가 압돌라흐만 파톨라히의 비판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그는 “수도 테헤란의 안전한 곳에서 전쟁을 외치는 사람들은 실제 전쟁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며 “폭격을 맞고 있는 남부 주민들이 그 비용을 대신 감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협상을 거부하는 구호가 아니라 국가적 손실을 줄이기 위한 외교적 해법”이라며 “모든 전문성과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 두 사람의 주장을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라, 곰(Qom) 신학교를 중심으로 미국과의 협상 중단과 장기전을 주장해 온 초강경 세력에 대한 공개적인 정치적 도전으로 해석했다.
[말이 아니라 실제 권력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가 단순한 여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권력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에서는 강경 성향 인사들이 핵심 보직에서 잇따라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한 실용파와 온건파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갈리바프 역시 과거에는 혁명수비대 출신 강경 인사로 분류됐지만, 최근에는 “국가의 힘은 필요하지만 외교 역시 국가안보의 중요한 축”이라는 현실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던진 “외교는 신뢰할 수 있는 힘으로 뒷받침돼야 하지만, 힘만으로 국가를 지킬 수는 없다”는 메시지는 지금의 이란 정치권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강경파는 거칠게 반발하고 있다. 강경 성향 의원 카므란 가잔파리는 “최고국가안보회의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며 “의회와 최고지도자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갈리바프 의장을 향해 “사실상 쿠데타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일부 초강경 인사들은 “이미 세 번째 전쟁은 시작됐다”거나 “이제 협상은 끝났고 적을 완전히 섬멸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내놓고 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자문역인 모센 레자이는 “미국이 며칠 더 공격을 이어가면 적에 대한 전면 섬멸 단계로 들어갈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오히려 강경파의 자신감을 보여준다기보다,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혁명수비대가 강경 발언을 하면 정치권 전체가 이를 따라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온건파가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강경파가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무엇보다 최고지도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강경파에게는 치명적인 변수다. 알리 하메네이 사망 이후 권력 승계 과정에서 지도부의 구심력이 약화됐고, 혁명수비대 역시 잇따른 군사적 손실로 절대적 권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수 성향 매체들조차 최근에는 “방위력을 다시 재건해야 한다”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강경노선이 더 이상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부인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흔든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혁명수비대의 정치적 정당성']
이번 전쟁을 바라보면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군이 무엇을 파괴했느냐보다 무엇을 흔들고 있느냐이다. 표면적으로는 교량이 무너지고, 전력망이 끊기고, 담수화시설이 파괴됐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미국이 진짜 흔들고 있는 것은 혁명수비대(IRGC)가 수십 년 동안 구축해온 '강경노선만이 이란을 지킬 수 있다'는 정치적 신화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줄곧 같은 논리를 내세워 왔다. 미국과 타협하면 국가가 무너지고, 강한 군사력과 강경한 대외노선만이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 중동 전역의 친이란 무장세력 지원까지 모두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그 논리를 정면으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미사일 전력과 방공망은 미국의 연속 공습 앞에서 기대만큼의 억지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남부 전략 거점은 잇따라 타격을 받았고, 항만과 교량, 전력망까지 흔들리면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전쟁의 비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강경노선을 선택한 결과가 결국 지금의 현실 아닌가?” 바로 이 질문이 강경파에게는 가장 치명적이다.
[이란의 대응도 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이를 두고 강경파의 몰락을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혁명수비대는 여전히 이란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조직이며, 정보기관과 경제조직, 국영방송(IRIB), 사법부 등 핵심 권력기구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이드 잘릴리를 비롯한 초강경 정치세력 역시 적지 않은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정치의 중심은 군사력이 아니라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 전쟁 비용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번 책임론이 이전과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국민들이 오히려 체제 결집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부 지역의 생활기반이 무너지고, 물과 전기 공급이 흔들리며, 물류망까지 마비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부담이 국민들의 일상으로 직접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계속 싸워야 한다”는 강경파의 논리는 이전만큼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갈리바프를 비롯한 실용파가 “힘은 필요하지만 결국 외교가 해답”이라는 메시지를 내놓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평화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한 현실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Why Times Insight]
이번 미국의 8일간 공습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파괴된 시설의 숫자가 아니다. 이란 내부에서 강경노선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략도 단순히 혁명수비대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남부의 교통망과 에너지 인프라, 물류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함으로써 전쟁의 부담을 국민들이 직접 체감하도록 만들고, 그 결과 강경노선의 정치적 정당성까지 흔드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금 이란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순한 온건파와 강경파의 말싸움이 아니다. 전쟁이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외교적 출구를 모색할 것인지를 둘러싼 국가 전략의 재편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히 강경파가 최근 들어 "쿠데타", "전면 섬멸",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과격한 표현을 연이어 내놓는 것도 역설적으로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기보다 기존의 정치적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의 공습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느냐가 아니다. 이란 내부에서 '강경노선으로는 더 이상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이 어디까지 확산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란의 대미 전략도 지금까지의 군사적 맞대응 중심에서 제한적 협상과 현실적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혁명수비대가 정치적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대외 군사도발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 역시 남아 있다.
결국 이번 전쟁은 미군과 이란군이 맞서는 전장에서만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진짜 전장은 테헤란 권력 내부이며, 미국은 바로 그 권력의 균형을 흔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번 8일간의 공습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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