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중국을 '교역 상대' 아닌 '경제안보 리스크'로 보기 시작한 EU]
EU의 브뤼셀이 마침내 ‘10월’이라는 시간표를 꺼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에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시한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말만 던진 것이 아니었다. 협상이 끝난 지 불과 사흘 만에 중국발 초저가 직구 상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를 시행하며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동안 대화를 우선시하던 유럽이 이제는 협상과 압박을 동시에 추진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통상 마찰이 아니다. 오랫동안 중국을 거대한 시장이자 중요한 생산기지로 바라보던 유럽이 이제는 중국을 공급망과 산업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위험'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훨씬 크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30일 “29일 브뤼셀에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하루 종일 협상을 진행한 끝에 양측이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면서 “양측은 무역·투자, 수출통제, 지식재산권, WTO 개혁 등을 논의할 4개 실무작업반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겉으로 보면 성과를 거둔 정상적인 협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진짜 핵심은 공동성명이 아니었다. EU가 중국에 '10월까지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오라'는 명확한 시한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협상 도중 기자들에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고 모든 것이 고쳐지지도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금부터 10월까지는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충분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외교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하필 '10월'이냐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EU 회원국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셰프초비치는 “열흘 전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3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국 통상정책만을 논의했다”며 “회원국들이 요구한 것은 더 이상 원론적인 대화가 아니라 신속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브뤼셀 내부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유럽은 중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경제협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의 과잉생산과 보조금 정책이 유럽 제조업을 위협하고, 희토류와 핵심 원자재 공급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까지 나타나면서 중국을 단순한 교역 상대가 아니라 경제안보의 변수로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하루 10억 유로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며 “중국은 지금까지 실질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수치 역시 유럽의 불만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난해 EU의 대중국 상품 무역적자는 약 3,600억 유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더욱 상징적인 것은 EU 27개 회원국 모두가 처음으로 중국과의 상품 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유럽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경제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브뤼셀은 적자의 규모보다 그 구조를 더욱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반도체 원료와 희토류, 배터리 핵심 소재 등 전략산업에 필요한 공급망 상당 부분이 중국에 집중되면서, 중국이 이를 언제든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를 통해 공급망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이미 여러 차례 보여줬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 가장 눈길을 끈 합의 가운데 하나가 '무역흐름 공동 모니터링 체계'였다. 양측이 동일한 무역 데이터를 공유하고 특정 품목의 수입이 사전에 설정한 위험 수준, 이른바 '레드존'에 진입하면 즉시 정치적 협의를 시작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단순한 통계 공유가 아니라, 분쟁이 커지기 전에 조기 경보를 울리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의미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이런 체계 자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베이징은 서방이 제기한 생산과잉이나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정치적 공격이라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어도 문제를 함께 관리하는 틀에는 동의한 것이다. 물론 이것이 중국의 입장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실제로 협상을 앞두고 중국 관영매체와 연계된 소셜미디어 계정 '위안탄톈샤'는 “중국은 경제·무역 관계가 더 악화하는 상황도 감당할 수 있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경고했다. 협상장 밖에서는 이미 양측의 치열한 기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사흘 만에 행동으로 옮긴 EU…첫 타깃은 중국발 초저가 직구]
브뤼셀이 던진 '10월 시한'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협상 직후 곧바로 확인됐다. 협상이 끝난 지 사흘 뒤인 지난 1일, EU는 중국발 초저가 전자상거래를 겨냥한 새로운 관세를 시행하며 첫 번째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협상에서는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실제 정책은 즉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대중 전략이 '대화는 하되 행동은 늦추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EU는 7월 1일부터 150유로 이하 전자상거래 물품에도 품목 분류 기준으로 3유로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면서 “지금까지는 대부분 무관세로 유럽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되던 중국발 저가 소포가 처음으로 사실상 새로운 비용 부담을 안게 된 것”이라고 짚었다. 제도적으로는 임시 조치에 불과하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EU가 노린 것은 세수 확대가 아니다. 진짜 목표는 중국 플랫폼의 사업모델이다. 쉬인(Shein), 테무(Temu),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같은 중국 플랫폼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보내는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관세가 시행되면 그 경쟁력은 이전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가격이 조금만 올라가도 소비자 선택이 달라질 수 있는 초저가 시장에서는 작은 비용 증가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실제로 유럽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발 저가 직구가 자국 시장 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판단해 왔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유럽으로 들어온 150유로 이하 저가 소포는 약 58억 개에 달했다”며 “2022년 14억 개와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4배 이상 급증한 수치이고,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1,600만 개 가까운 소포가 유럽 세관을 통과한 셈”이라고 짚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러한 물량 증가는 세관 업무를 마비시켰을 뿐 아니라, 유럽 중소 유통업체들이 가격 경쟁에서 버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꼬집었다.
유럽의회에서 관세 개혁을 주도해 온 디르크 호팅크 의원은 “관세 면제 제도는 산업적 규모로 악용됐고, 중국 플랫폼들이 유럽 기업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의 발언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세제 개편이 아니라, 시장 경쟁의 규칙 자체를 다시 쓰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10월이 중요한 이유…세 개의 시계가 동시에 움직인다]
브뤼셀이 10월을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월은 단순히 '몇 달 뒤'가 아니라, 중국을 둘러싼 세 개의 중요한 일정이 한꺼번에 만나는 전략적 시점이다.
첫 번째는 희토류다. 중국은 지난해 희토류 수출통제를 확대했지만, 미·중 합의에 따라 일부 조치를 올해 11월까지 유예한 상태다. EU가 10월을 협상 시한으로 잡은 것은 유예 종료 직전 중국의 태도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를 다시 압박 카드로 활용한다면, EU 역시 더 강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미·중 관계다. 오는 9월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은 미·중 관계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만약 미·중 관계가 다시 경색된다면, EU 역시 대중 전략을 한층 강경하게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일정 수준의 관계 개선이 이뤄진다면 브뤼셀 역시 협상의 폭을 넓힐 여지가 생긴다.
세 번째는 EU 내부의 정치 일정이다. 10월은 올해 하반기 대중 통상정책을 재평가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브뤼셀은 중국이 그때까지 실제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면 추가 제재와 시장 접근 제한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Why Times Insight-이번 싸움은 무역이 아니라 경제안보다]
이번 브뤼셀 협상을 단순한 무역 협상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진짜 변화는 EU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중국을 '협력해야 할 거대한 시장'으로 인식했다. 갈등이 생겨도 대화를 통해 풀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금 브뤼셀은 중국의 과잉생산, 공급망 지배력, 희토류 통제, 초저가 플랫폼의 시장 잠식 등을 하나의 경제안보 문제로 묶어 접근하기 시작했다.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산업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 큰 목표가 된 것이다.
이 점에서 EU의 전략은 미국이 추진해 온 '디리스킹(De-risking)'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완전한 디커플링(Decoupling)은 아니지만, 전략산업과 핵심 공급망만큼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방향은 사실상 동일하다. 이번 직구 관세는 그 변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앞으로 정부조달 제한, 중국산 태양광과 통신장비 규제, 핵심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 등 후속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10월은 단순한 협상 시한이 아니다. 중국이 유럽 시장을 기존 방식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 아니면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경제안보 전선'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될지를 가르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브뤼셀이 던진 시계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제 시간을 의식해야 하는 쪽은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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