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군부 이어 당 원로까지 정조준…4연임 앞둔 시진핑의 권력정리]
군부 대숙청을 이어오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에는 한때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왕치산 전 국가부주석의 정치 인맥까지 사실상 해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왕치산 본인은 공식 기소되지 않았지만 측근들은 잇따라 사형유예를 선고받거나 조사를 받고 있으며, 본인 역시 사실상의 가택연금 상태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반부패가 아니라 2027년 제21차 당대회를 앞두고 4연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권력거점을 미리 제거하는 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더디플로맷(The Diplomat)은 지난 24일, 조지타운대 미중글로벌대화구상(GU-China Global Dialogue Initiative) 고위연구원이자 조지 W. 부시 행정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Dennis Wilder)의 기고문을 통해 “시진핑이 어떤 범죄 혐의도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왕치산이 베이징에서 사실상의 가택연금 상태로 살고 있다”면서 “왕치산은 2023년 10월 이후 중국 공식 매체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더디플로맷은 “이 같은 동향이 군부 숙청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진핑이 과거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정치적 동맹의 영향력까지 제거하는 새로운 권력 재편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2018년 중난하이에서 포착된 미묘한 균열]
와일더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장면도 함께 공개했다. 그는 “2018년 왕치산이 국가부주석을 맡고 있던 시기, 브루킹스연구소 대표단의 일원으로 중난하이(中南海)를 방문해 왕치산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당시 왕치산은 평소 입던 정장이 아니라 평범한 중국 공장 노동자 같은 차림을 하고 나타났으며, 대표단에게 시진핑이 결정권자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할 필요성을 느끼는 듯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장면에서 “이미 왕치산이 시진핑과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고 밝혔다. 디플로맷은 “실제로 왕치산의 비서 4명 중 현재까지 4명의 전직 개인비서가 숙청되었거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태”라고 짚었다.
왕치산은 시진핑 집권 1기 반부패 운동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집행했던 핵심 실세였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 서기로 재직하면서 저우융캉, 보시라이 등 공산당 최고위급 인사들을 잇따라 낙마시켰고, 이후 국가부주석까지 맡으며 한동안 시진핑 체제의 핵심 권력으로 평가받았다.
[측근들은 잇따라 낙마…왕치산 정치 기반 사실상 해체]
더 디플로맷은 “왕치산의 정치적 기반이 최근 몇 년 동안 단계적으로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가장 먼저 왕치산의 핵심 측근이었던 둥훙(董宏)이 2020년 조사를 받은 뒤 2022년 사형유예를 선고받았고, 이어 중국초상은행장을 지낸 톈후이위(田惠宇) 역시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사형유예를 선고받았다.
또 중국인민은행 부총재를 지낸 판이페이(范一飛) 역시 사형유예 판결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왕치산의 개인비서로 활동했던 저우량(周良)은 올해 3월 기율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기율 책임자를 지낸 리샤오훙(李曉宏)까지 최근 조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왕치산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핵심 인맥은 사실상 대부분 해체됐다는 것이 와일더의 평가다.
현재까지 왕치산 본인에 대한 공식 수사나 기소는 없지만,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약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왜 지금인가…"21차 당대회 앞두고 잠재적 장애물 제거"]
와일더는 이번 인맥 해체 작업의 시점에 주목한다. 그는 “시진핑이 자신을 위해 반부패 사정 작업까지 수행했던 가장 신뢰할 만한 당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왕치산을 비롯한 당내 원로들이 내년 21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4연임 가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은퇴한 당 원로들이 최고지도자 선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일례로 천윈(陳雲) 전 부총리는 천안문 사태 이후 장쩌민을 차기 지도자로 선택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해석은 중국 정세를 추적하는 다른 분석가들의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독립 평론가 차이선쿤(蔡慎坤) 등은 지난 1월 “시진핑이 군 서열 2위였던 장유샤(張又俠)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낙마시킨 사건과 왕치산 인맥 해체는 같은 흐름”이라며 “시진핑은 장유샤 처리 이후 혁명원로 후손('홍색 2세대')과 군 원로 집단, 당 원로 계층 전반의 반감을 산 상태이며, 그 결과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소수의 전국급 지도자들이 연대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군부 숙청과 같은 패턴…"누구도 면제받지 못한다"]
왕치산 인맥 해체는 시진핑이 지난 2년 반 동안 진행해 온 군부 대숙청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중국파워프로젝트(ChinaPower)는 “2023년부터 시작된 2차 숙청 물결에서 웨이펑허·리상푸 전 국방부장, 허웨이둥 중앙군사위 부주석, 먀오화 정치공작부 주임, 류전리 합동참모부 참모장, 장유샤 중앙군사위 수석부주석 등 군사위원 6명이 줄줄이 낙마했다”면서 “지난 1월에는 장유샤와 류전리가 동시에 조사 대상에 오르면서 중앙군사위 지도부가 7명에서 단 3명으로 축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고 짚었다.
CSIS는 “이번 군 숙청의 특징은 시진핑이 직접 발탁하고 급속히 승진시킨 인물(허웨이둥 등)뿐 아니라, 자신 및 부친과 수십 년에 걸친 가족적 인연을 가진 인민해방군 '태자당' 인사(장유샤 등)까지 가리지 않고 숙청했다는 점에서, 인민해방군 내 누구도 면제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평가했다.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또한 “장유샤·류전리가 이끌던 '구군벌' 네트워크와 허웨이둥·먀오화가 이끌던 '푸젠파' 네트워크라는, 인민해방군 내 가장 강력했던 두 인맥 집단이 18개월 사이 모두 해체됐다”고 짚었다.
군부와 당내 사정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 전략이 단순한 반부패 차원을 넘어, 잠재적 경쟁 권력 거점을 사전에 제거하는 작업으로 확장됐음을 시사한다. 차이나리더십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or)는 2026년 1월 “장유샤·류전리 숙청을 2023년 중반부터 시작된 인민해방군 지도부 대숙청의 정점”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숙청이 오히려 2027년 건군 100주년까지 군 전투준비태세를 완비하겠다는 시진핑의 의제 자체를 후퇴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권력 집중을 위한 숙청이 역설적으로 통치 효율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절대권력일수록 충성보다 안전을 택한다"]
이번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왕치산이 단순한 전직 국가부주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시진핑 집권 초기 반부패 운동을 함께 설계하고 실행했던 핵심 인물이자, 현재 중국 권력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기반이 사실상 해체되고 있다는 관측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21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체제가 잠재적 권력 거점을 사전에 정리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일부 중국 정치 전문가들은 왕치산 본인이 형사처벌 대상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더 와이어 차이나(The Wire China)는 중국 정치 전문가들을 인용해 “왕치산에게 직접적인 비리 혐의가 제기된 적은 없으며 실제 체포 가능성에는 신중한 견해가 많다”고 전했다.
결국 현재까지 확인되는 사실은 왕치산 주변 인물들이 잇따라 조사와 처벌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배경이 단순한 반부패인지, 아니면 21차 당대회를 앞둔 권력 재편의 일환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군부에 이어 당 원로 인맥까지 흔들리는 최근의 흐름은 시진핑 체제가 잠재적인 권력 기반을 지속적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향후 중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