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필요 없다"던 엔비디아, 중국에서는 '없어서 못 산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봉쇄에도 불구하고 자국 기술만으로 AI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시진핑 지도부는 미국의 수출통제를 오히려 중국 기술 자립의 기회라고 강조하며, 화웨이와 SMI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굴기'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중국 시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AI 서버 가격이 불과 6개월 만에 두 배로 폭등했고, 군과 연계된 대학들까지 최신 칩 확보에 나선 사실이 확인됐다. 가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신화와 시장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 복수의 중국 칩 거래상을 인용해 “중국내에서 엔비디아 AI 칩의 암시장 가격이 최근 6개월 사이 두 배 이상 뛰었다”면서 “엔비디아의 플래그십 서버인 DGX B300의 가격은 최근 6개월간 400만 위안에서 800만 위안(약 11억 원) 이상으로 치솟았다”고 보도했다. 8개의 블랙웰(Blackwell) GPU를 탑재한 이 시스템은 미국 내 정가가 40만 달러(약 5억5000만원) 안팎인데, 중국 암시장에서는 정가의 두 배 수준에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가격이 치솟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사실상 막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해 중국 기업들은 공식 경로를 통해 최신 엔비디아 제품을 구매하기 어렵다. 그 결과 중국 시장에서는 우회 수입과 임대, 재판매 등을 통한 거대한 암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시장이 보내는 매우 분명한 신호다. 중국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미국의 규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그 절박함이 가격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AI 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 자산이 무엇인지를 시장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금지령, 군사연계 대학은 확보 경쟁]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실이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부터 자국 기업들에 엔비디아 칩 구매를 자제하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특히 정부기관과 국가안보 관련 업무에서 엔비디아 H20 사용을 사실상 금지했고, 기업들이 미국산 AI 칩을 도입하기 전에 중국산 제품을 우선 검토하도록 요구했다.
텐센트,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에게도 미국산 AI 칩 의존도를 줄이라는 압박이 가해졌다. 일부 관영 매체에서는 엔비디아 제품이 미국으로 데이터를 유출할 수 있는 '백도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달랐다. 본지가 앞서 보도한 바와 같이 블룸버그 조사 결과,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이른바 '국방 7자(國防七子)' 소속 대학들이 엔비디아 최신 H200 칩을 확보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베이항대학과 시베이공업대학 등은 이미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기관들이다.
중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엔비디아 제품 사용을 경계하는 동안, 정작 안보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군사연계 기관들은 최신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기 위해 임대 시장까지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중국 지도부 스스로도 첨단 AI 개발과 군사 연구에서 엔비디아 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개적으로는 "미국 칩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 연구 현장에서는 가장 먼저 엔비디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인텔 추월" 선전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같은 모순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이 강조해온 반도체 자립 성과 자체가 상당 부분 과장됐다는 지적이 최근 다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는 지난 17일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80 프로 맥스에 탑재된 기린 9030 칩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중국 매체들은 SMIC의 N+3 공정에서 생산된 해당 칩의 일부 수치를 근거로 "SMIC가 인텔을 추월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일부 해외 매체들 역시 이러한 주장에 주목했다.
그러나 실제 반도체 업계의 평가는 전혀 달랐다. 업계에서는 특정 배선 간격보다 칩 안에 얼마나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한 경쟁력 지표로 본다. 이 기준에서 SMIC의 N+3 공정은 사실상 TSMC의 6나노 수준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인텔 18A와 삼성전자 3나노, TSMC의 최신 3나노 및 2나노 공정은 SMIC보다 훨씬 높은 집적도를 구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MIC가 현재 세계 최상위 파운드리 기업들과 비교해 최소 4~5년 정도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 성능도 마찬가지다. 기린 9030의 최고 성능 CPU 코어는 애플이 2020년 출시한 M1 칩보다 크게 뒤처졌으며, 그래픽 처리 성능 역시 최신 퀄컴·미디어텍 제품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 역시 "SMIC의 N+3는 기존 7나노 공정의 연장선상에 가까우며 TSMC와 삼성의 첨단 공정과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결국 중국이 내세우는 '기술 추월'은 일부 지표를 선택적으로 부각한 결과에 가깝고, 실제 산업 경쟁력에서는 여전히 선두 기업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166조 원을 쏟아붓고도 남은 기술 공백]
더 큰 문제는 경제성이다. TSMC와 삼성, 인텔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지만, SMIC는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해 해당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구형 DUV 장비를 이용해 여러 차례 반복 노광을 수행하는 다중 패터닝 방식에 의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생산 비용은 크게 증가하고 수율 확보는 어려워진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DUV 기반 7나노 생산 비용이 EUV 공정보다 40~50% 이상 높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생산량은 적고 비용은 더 많이 들어가는 구조인 만큼,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 경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지난 수년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150억 달러(약 166조 원)가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중국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9.6%에서 8.6%로 하락했다.
수익성 격차도 뚜렷하다. SMIC의 순이익률은 6% 수준까지 떨어진 반면 TSMC는 40% 안팎의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막대한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은 기대만큼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암시장이 보여주는 중국 AI 산업의 현실]
종합하면 상황은 분명하다. 중국 지도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으며, 첨단 AI 산업도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은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만약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정부 선전대로 성공했다면, 엔비디아 AI 서버가 정가의 두 배 가격에 거래되는 암시장이 형성될 이유가 없다. 군사연계 대학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최신 엔비디아 칩 확보에 나설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AI 산업의 경쟁력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실제 연산 능력에서 결정된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들은 대부분 엔비디아 GPU 위에서 학습되고 있으며, 중국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산 칩이 일정 부분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엔비디아를 완전히 대체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결국 가격이 말해주는 진실은 하나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첨단 AI 반도체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엔비디아 칩 가격이 폭등하는 중국의 암시장은, 베이징이 반복해온 '반도체 자립' 선전과 실제 기술 현실 사이에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전은 국경 안에서는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선전에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중국의 암시장은 "중국은 아직 엔비디아 없이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