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whytimes.newsroom@gmail.com
5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발언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을 비롯한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총회 현장에서 전날 우크라이나 측이 발송한 영수 회담 제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회의장에 모인 참석자들을 향해 "어제 페스코프 대변인이 편지를 보여줬지만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라며 "오늘 아침 다시 편지를 건네받아 잠깐 훑어봤고, 어쨌든 확인했다"라고 발언의 물꼬를 텄다. 뒤이어 해당 문서의 성격을 규정하며 "이 편지에는 분명히 무례한 요소가 담겨 있었다"라고 직접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러시아 수뇌부는 우크라이나 측의 이번 서한이 진정성 있는 평화 협상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푸틴 대통령은 공식 연설을 통해 "이 편지는 개인적 만남과 협상을 여건을 조성하려는 의도인가, 아니면 개인적 만남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려는 것인가"라고 청중에게 반문한 뒤, 본인은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후자라고 생각한다"라고 확언했다. 상대측의 태도를 문제 삼은 그는 현 단계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마주 앉는 행동을 두고 "아무 의미가 없다"라며 "아직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라고 선을 그었다. 나아가 해당 메시지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을 대신해 전선의 러시아군 장병들을 향해 "형제들이여, 계속 힘내라"라고 강조하며 침공 작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크렘린궁이 이처럼 격앙된 반응을 보인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한에 적시한 인신공격성 문구가 자리 잡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달된 문서에 "(집권) 26년이 지나자 노화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이가 들수록 피로감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상대의 나이를 정조준했다. 현재 푸틴 대통령은 74세이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48세로 두 정상은 약 26년의 연배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편지를 보낸 이가 내 나이를 언급했다"라며 일흔이 넘은 고령의 정치인들도 각자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아울러 "내 또래의 많은 정치인도 각자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다"라며 "나이도 중요하지만 효율성과 업무윤리도 중요하다"라고 맞받아쳤다.
러시아는 전쟁 발발 이후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권의 정통성 결여 문제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2019년 5월 임기를 시작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본래대로라면 2024년 5월에 퇴임해야 했으나, 전시 계엄령을 근거로 대선을 무기한 연기한 채 권좌를 유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주목하기도 했는데, 물론 이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뒤이어 헌법 정신을 위배한 통치 행위는 권력 찬탈이자 형사범죄에 준한다고 규정하며,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향해 "두려워하지 말고 선거에 출마하라"라고 강도 높게 꼬집었다.
미국 정계와의 연대감을 과시하는 대목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과거 일화를 인용해 조롱의 수위를 높였다. 푸틴 대통령은 작년 2월 백악관 초청 당시 군복 스타일의 복장으로 지적을 받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하며 "예의범절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고에 감사하다"라고 비꼬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복기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 편지의 작성자를 질책하며 드레스코드를 요구하고 훈계하는 모습을 우리가 모두 지켜봤다"라며 "계속해서 '람보'를 보여주는 것이 모든 곳에서 적절하지는 않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더불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억울하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이번 우크라이나 유혈 사태 자체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임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기자회견 말미에 러시아 대통령은 장기화하고 있는 동유럽 분쟁의 종식 조건에 대해 자국의 군사적 목표 달성이 선행되어야 함을 명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향후 전황 전망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군사작전이 끝나리라고 예상한다"라며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면 작전이 끝난다"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강경 노선을 고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