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합의는 됐지만 승인 안 했다”…트럼프의 마지막 계산]
미국과 이란이 60일 휴전 연장과 핵 협상 개시를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에 사실상 실무 합의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유보하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협상 막판에도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미군 공습과 이란의 보복 공격이 이어졌고, 양측은 핵 문제와 해협 통제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며칠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이번 합의가 역사적 종전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시간벌기용 휴전’에 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29일 복수의 미국 정부 관리와 중재 과정에 관여한 역내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 협상단이 60일간의 양해각서(MOU)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번 MOU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을 ‘아무런 제한 없이(unrestricted)’ 개방하고, 이란이 30일 이내에 해협 내 모든 기뢰를 제거하는 데 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를 해제하고 일부 제재 면제를 발동해 이란의 원유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미국은 이란 동결 자산 일부 해제와 인도적 지원 메커니즘 논의에도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레바논 전선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을 종료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는 것이 악시오스의 설명이다.
핵 문제 역시 이번 MOU에 포함됐다. 악시오스는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포함됐으며, 향후 60일 협상 기간 동안 고농축 우라늄(HEU) 처리와 우라늄 농축 문제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미국 측은 이란의 핵 양보가 아직은 ‘구두 약속’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실제 이행 여부는 협상 테이블에서 검증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 협상안의 세부 내용을 보고받은 뒤 즉각 승인하지 않았으며, 중재자들에게 며칠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란 역시 공식적인 수락 여부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의 승인 보류…협상 흔드는 ‘벼랑끝 전술’]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미룬 배경에는 단순한 신중론 이상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 강경파와 이스라엘 측의 반발을 관리하는 동시에, 핵 문제에서 이란의 추가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기간 내내 강경 메시지와 협상 신호를 교차적으로 발신했다. 그는 주말 동안 언론 인터뷰와 SNS를 통해 “합의와 공습 재개 가능성은 50대50”이라고 말했다가, 몇 시간 뒤에는 “곧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긴박감을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도 “합의가 안 되면 그냥 일을 끝내야 할 것(finish the job)”이라고 발언하며 군사 옵션 가능성을 다시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같은 날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역시 이란 페르시아만해협청(PGSA)과 관련 기관·개인을 추가 제재 대상(SDN)에 올리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협상과 군사·경제 압박을 동시에 병행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최대 압박 협상’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공화당 내부 강경파들조차 “60일 휴전은 재앙”이라며 반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시절과는 다른 제대로 된 합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졸속 합의 우려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같은 MOU, 전혀 다른 해석 내놓는 미국과 이란]
문제는 미국과 이란이 같은 MOU를 서로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CNBC는 “합의안을 둘러싼 양측의 시각 차이가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란 파르스(Fars) 통신은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관리 아래 유지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완전 개방’ 표현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로이터 역시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 처분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핵 문제는 이번 예비 합의의 핵심 조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 측은 이란이 이미 핵 관련 양보 의사를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이란이 더 많이 양보할수록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라며 향후 협상이 철저한 ‘주고받기’ 방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란 측은 오히려 안보 보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파르스 통신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란 및 동맹 세력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그 대가로 이란도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선제 공격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은 ‘핵 제한과 해협 개방’을 중심으로 읽고 있고, 이란은 ‘안보 보장과 제재 완화’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합의 직전에도 호르무즈선 총성이 울렸다]
더 위험한 부분은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군사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CNN은 미군이 지난 25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이란 남부에서 미사일 발사 기지와 기뢰 부설 선박을 공습했다고 보도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미군 병력과 상업 선박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란 외무부는 “파키스탄의 중재로 외교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이 공격을 감행했다”며 “미국의 기만과 배신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충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7일에는 미군이 이란 군사시설을 추가 타격하고, 호르무즈 인근에서 이란군 드론 여러 대를 요격했다.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쿠웨이트 내 미군 기지를 향해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쿠웨이트 군도 “방공망이 적대적 미사일 및 드론 공격에 대응 중”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를 “명백한 휴전 위반(egregious ceasefire violation)”이라고 규정했고, IRGC는 “미국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고 맞섰다.
즉, 협상은 진행되는데 전장은 멈추지 않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60일 평화인가, 더 큰 충돌 전 ‘위험한 유예’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MOU가 설령 체결되더라도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핵 문제와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변수, 그리고 이스라엘의 강경 입장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합의는 ‘종전 협정’이라기보다 전면전을 피하기 위한 임시 안전핀에 가깝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로 양측은 60일 기한이 만료될 즈음 상호 합의 아래 협상 기간을 계속 연장하며, 사실상의 ‘장기 잠정 휴전 상태’를 이어갈 가능성도 거론된다.
악시오스는 미국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이란 경제를 정상화할 기회가 있으며, 이란 내부에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서도 “60일 협상을 통해 그것이 진짜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승인 버튼을 누르더라도 중동의 불안이 즉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MOU는 전쟁 종료라기보다, 더 큰 충돌을 막기 위한 위험한 균형 위에 세워진 임시 휴전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불안정한 균형의 마지막 열쇠는 지금도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손 안에 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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